태평양을 넘어서: 글로벌 시대 재미한인의 삶과 활동
정은주 엮음,
유철인·한경구·정은주·이재협·박정선·김현희·박계영·이정덕 지음.
학고방, 2020, 368쪽.
현재의 세계인들은 국민국가의 테두리에 한정되지 않는 정체성과 네트워크, 그리고 활동의 범위를 경험하고 있으며, 특히 재미한인을 포함한 국제 이주자에게 국가 간 이동의 시공간을 압축하는 기술적 진전은 국가의 영토성 규정을 점차 더 약화하거나 분산시키고 있다. 이러한 현대 이주의 환경은 재미한인을 초기 이민 정책과 연구에서 바라보듯, 정착국으로의 완벽한 동화를 지향하거나 모국에 대한 민족적 애착을 잃지 않는 단일한 범주의 공동체로 이해하는 시각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혼성적 정체성이 등장하고 삶의 초국적화가 가속화되는 것은 다문화적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글로벌 추세와 함께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1992년 LA 폭동이 촉발한 각성이라든가 글로벌 경제 재편 과정에서 한국 자본의 미국 유입, 한류의 영향 등 한인이라는 특수한 이민 집단이 겪어온 역사 속에서 추동된 모습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와 같이 재미한인을 마이너리티 혹은 이민 이론에 기반하여 적응과 동화, 한인 고유의 특성과 연대의 양상을 분석하는 데에서 더 진전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인식 하에, 2016년부터 3년간 한국학진흥사업단 한국학총서 해외한인연구 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연구에 기반하고 있다. 한국화교 연구를 시작으로 동아시아인의 이주에 대한 비교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정은주(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가 연구책임을 맡고, 김현희(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 연구교수), 박계영(UCLA 인류학과 교수), 박정선(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도밍게스 힐즈, 아시아태평양학과 교수), 유철인(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이재협(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정덕(전북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한경구(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8인의 인류학자가 2019년 여름까지 3년간 미국 내 한인 이주의 특성을 드러내는 몇 개 도시에서 현지조사를 포함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변화한 이주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재미한인의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저자들이 주목한 점은 초국가성의 확대 및 이주자로서 한인의 행위주체성(agency), 그리고 한인 내부의 다양성이다. 연구진은 이주 기원국과의 초국적 연대가 단순히 모국을 그리워하는 첫 세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보화 시대의 기술적 진전 및 21세기 글로벌 정치경제 상황이라는 시대적 조건의 진전에 의해 태평양을 넘어 한국과 미국을 넘나드는 초국가적 관계 형성과 활동이 다수의 재미한인에게 현실적으로 또는 가능성으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포착하고자 했다. 재미한인의 삶의 맥락을 하나 이상의 국가에 관여하는 초국가적 장으로 간주함으로써 그들을 이민정책, 재외동포 정책의 대상으로만 보는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그들이 어떤 삶의 선택과 실천을 하는지, 지역 거주지 내에서의 참여활동부터 초국적 목표를 지닌 활동과 정치 참여 등 재미한인이 드러내는 다양한 삶의 전략과 개별 실천들을 분석했다. 또한 재미한인 전체를 동일한 사회·정치·경제적 운명공동체로 보기보다, 한국과의 관계나 미국 사회문화적 가치의 내면화 정도, 미국 시민으로서의 정체성과 활동, 교류하는 인종 및 민족집단의 크기 등에 드러나는 차이의 스펙트럼에 주목하였고, 이를 위해 연구팀은 뉴욕, 로스앤젤레스, 피닉스, 하와이를 연구지역으로 설정하는 다지역 연구방식을 채택했다.
연구진은 모두 인류학적 현장연구 방법을 활용하여 각기 독립된 연구주제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책에 실린 총 8편의 글은 각 글에서 두드러지는 주제 영역에 따라 1부 <재미한인의 초국가적 삶>, 2부 <재미한인의 생활세계, 관계와 활동의 다양성>, 3부 <재미한인의 실천과 행위주체성>으로 구성되었으나, 각 글은 초국가성, 다양성, 행위주체성의 탐구라는 공동 아젠다를 모두 염두에 두고 작성되었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1부. 재미한인의 초국가적 삶>
유철인. 초기 재미한인 가족의 초국가적 삶: 메리 백 리의 자선전 읽기
한경구. LA 지역 재미한인의 초국가주의 정치: 상상된 영토를 위한 투쟁
<2부. 재미한인의 생활세계, 관계와 활동의 다양성>
정은주. 거주지 동화론과 미국 서부 교외의 한인 집중거주지를 통해 본 재미한인 사회
이재협. 하와이 한인 법조집단의 형성과 구조
박정선. 초국가 시대 재미한인의 한국 대중문화 소비
<3부. 재미한인의 실천과 행위주체성>
김현희. 소수민족에서 미국시민으로: 뉴욕 한인의 시민참여 활동과 시민교육
박계영. 정체성 포용하기: 사회운동이 불러온 뜻밖의 결과
이정덕. 재미한인 2세의 미국사회로의 편입과 그 성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