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거주 중국인인 화교⸱화인에게는, 상술에 능하다든가 종족 연대(ethnic solidarity)가 강해서 잘 단합하고 중국인끼리의 거래가 우선한다는 식의 환유적 고정관념이 늘 따라붙는다. 그러나 전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해외중국인들의 실제 삶과 관계의 흐름은 각기 다른 이주 시기와 로컬의 정치경제적 흐름, 모국 ‘중국’과 정착국과의 관계 등에 따라 달리 주조된다. 역시 내부적으로 차이가 있겠지만, 화상 이미지를 주도한 동남아의 화교⸱화인, 소외되고 보이지 않는 존재였던 한국과 일본의 화교, 필요하지만 위협적인 인력으로 존재해 온 미국 내 중국인이 가진 정체성과 삶의 전망은 절대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혈통인’이라는 신화적 회귀 요소를 제외하면, 사실 동일 정착국인 한국 내, 혹은 미국 내에서도 거주 도시와 이민 세대, 가족 구성 등의 요건에 따라 해외중국인들이 마주하는 경험과 삶과 자기인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같은 맥락에서 각지의 해외중국인의 삶과 경험은 해당 지역이 가진 중국 및 중국인과의 관계의 역학을 반영한다. 이 글로 시작하는 [미국의 중국인] 제하의 글들은 중국계 미국인과 미국 거주 화교⸱화인에 대한 소록이자 그들을 통해 중국, 중국인과 미국, 미국인의 관계를 조망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
사진 1. 보난자(Bonanza) 포스터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한국에도 방영되었던 <보난자(Bonanza)>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었다. 1860년대 미국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네바다 주에서 목장을 경영하는 아버지와 세 아들의 스토리를 다룬 것으로, 미국에서 1959년부터 1973년까지 장기 방영한 걸 보아, 전원일기급의 인기를 구가하며 미국인들의 뇌리를 파고들었던 컨텐츠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한국의 50대 이상 세대라면 기억할 법한 한국 최초의 미드 중 하나이고, 당시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았던 필자조차도 지도가 불타오르는 강렬한 오프닝과 또 다른 서부개쳑시대 드라마인 <초원의 집>에서 아버지 역할을 한 배우가 아들로 등장했던 기억이 떠오를 만큼 한국인의 일상에도 오래 머물렀던 드라마이다.
사진 2. 보난자 주인공들과 합싱
보난자에는 두 명의 중국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하나는 한국계 배우인 필립 안(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아들)이 분한 중국인 주방장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족의 요리를 전담하여 어느 정도 비중이 큰 배역으로 중국계 미국인이 연기한 중국인 주방장 합싱(Hop Sing)이다. 합싱은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 집에서 부자 4명의 식사를 준비하고 이런저런 가사를 하는, 체구가 작고 길게 땋은 머리를 전형적인 중국식 모자 밑에 늘어뜨리고 나오는 캐릭터이다. 늘 웃는 얼굴을 하며 차려놓은 식탁에 식구들이 늦게 올 때에나 화를 내는 맘 좋은 이방인 정도의 감초 캐릭터이고, 이는 식당업이 해외중국인들에게 일종의 이민자 적소(niche) 직업이 됨에 따라 대수롭지 않은 설정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설정과 묘사가 의미하는 바는 초기 중국인의 미국 이민 역사 및 미국 인종차별의 구조와 맞물려 있고, 향후 서구에서 중국인 혹은 중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 남성을 인식하는 방식에 오랫동안 작동하게 된다.
중국인은 아시아인의 미국으로의 이민에 선두주자로서,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그 인구가 급증했다. 금광의 발견 이후 미국 내 백인 인구도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는데, 대평원과 록키 산맥을 넘으며 인디언이라 불린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맞닥뜨리는 골드러쉬는 교통망이 미비한 상태에서 매우 위험한 모험이었다. 서부와의 단절을 막기 위해 당시 대통령 링컨이 남북전쟁 와중에도 진행한 대륙횡단 철도 건설에, 근세의 혼란한 중국을 벗어나 삶의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온 이민자들은 처음에는 값싼 노동력으로 환영받았다. 1860년대와 1870년대 10만 명 이상의 중국인이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였고, 캘리포니아 금광의 광부로, 철길을 건설하는 노동력으로 투입되었다. 싼값에 혹독한 노동을 했고, 네바다 산맥 금광에서 폭발물인 니트로글리세린을 안전을 경시한 채 사용하여 다수의 사망자가 나오는 등 목숨마저 헐값으로 취급되었다. 캘리포니아 주 남부의 모하비 사막 지역에 있는 폐광촌 칼리코(Calico)는 유령마을이라는 관광지가 되어있는데, 금문교 건설 때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중국인 이주민들이 희생되어, 장화 언덕(Boots Hill)이라는 중국인 공동묘지에서 밤마다 귀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처럼 초기 중국인 이민자들은 처음에는 탄광업 외에도 농업, 제조업, 봉제업 등 캘리포니아의 주요 산업에 종사하며 캘리포니아 경제 발전의 밑거름 역할을 했다. 그런데, 자본가들이 환영한 그들의 값싼 노동력은 백인 노동자들에게 위협으로 받아들여졌고, 백인 노동자들의 직업을 빼앗고 임금을 저하시키며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또한 미국 사회에 절대 동화될 수 없는 이방인으로 배척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서부 개척의 무법 천지 와중에 인종 차별과 폭동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중국인 이민자들은 식당과 세탁소에 집중하게 된다. 식당과 세탁소 운영에 대해서 방해가 없었던 것은, 록키 산맥을 넘어 동부나 중서부에서 캘리포니아로 이동하는 것이 위험하여 캘리포니아에 여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빨래와 요리는 여성의 역할이라고 간주했던 당대의 정황 속에서 밥하고 빨래하는 일을 맡아 하는 것은 백인 남성의 필요 하에 용인된 것이다. 서부개척시대를 살아가는,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총질하는 미국 사나이의 이미지와 대조되어 중국 이민자 남성들은 밥하고 빨래하는 작고 왜소한 존재로 여성화되었다.
중국인들은 한동안 세탁업과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람들로 간주되었고, 미국 사회에서 중국계가 대표하는 아시아 남성은 오랫동안 가장 매력없는 남성으로 치부되었다. 이렇게 합싱은 당대의 미국 사회가 설정하고, 그 후에도 각인된 중국인 남성, 나아가 아시아 남성에 대한 재현(representation) 방식을 보여준다. 웨스턴 영화가 아니어도 헐리우드에서 아시아계 남성은 무성에 가까운 캐릭터로 표현되기 일쑤여서, 지식인 이민자들이 증가하며 모델 소수민족 이데올로기가 등장할 무렵에는 수학, 과학에 미친 괴짜라거나 너드(nerd)로 등장시키는 등 로맨스와는 거리가 먼 역할이 주를 이루었다. 1970년대 세계를 휩쓴 이소룡이 헐리우드를 거부한 것은 백인 여성과의 키스씬을 금지하는 등 아시아 남성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의식과 고정관념 때문이라 한다. 이소룡이 다수의 쿵푸 영화에서 백인 여성을 파트너로 등장시킨 것이나, 미국 리얼리티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한국계 변호사가 몸을 쓰고 네트워킹을 주도하며 애써 마지막 승자가 되고자 한 것은 그와 같은 중국과 아시아 남성의 재현 방식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보난자>는 나름 인종차별이나 외국인 혐오와 같은 사회정의 이슈를 다루기도 했다. 한 에피소드에서는 시장 후보 밑에서 일하는 폭력배들이 합싱을 구타하고 중국인들을 괴롭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외부인을 미워하자’라는 당당한 구호 아래 합싱의 친척을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과정에서 주인공들이 합싱의 편에서 싸우는 장면들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이 정치적으로 옳은(politically correct, PC) 혹은 악의없는 미디어 컨텐츠 속에서 중국인을 재현하는 방식은 PC의 외피를 쓰고 있어 오히려 더 위험하다. 오랫동안 미국의 대중문화는 세상을 보는 관점을 제시하는 헤게모니를 행사했고, 한국의 대중문화가 새로운 남성상을 제시하거나, 그보다 전에 아시아에서 일본이 문화생산자로 등장하기 전까지 미국 대중문화의 재현은 의심없이 상대를 규정해왔다. 악의없는 미국의 전원일기가 제시하는 악의없는 중국인 묘사는 중국인 초기 이민사 속에 뿌리 깊이 각인된 악의 넘치는 인종차별의 구조를 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중국인 1】
정은주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www.amazon.com
사진 2 https://truewestmagazine.com/reel-or-real-frontier-f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