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 「민국시기 상거래 관행과 신뢰확보의 다양한 양태 – 신용, 계약과 담보, 보증인」, 『중국근현대사연구』 제70집, 2016.6, 89~120쪽.
본고에서는 중화민국시기 상거래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설정된 상관행의 다양한 양태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상거래의 성립과 유지의 바탕에는 신용이 있었고, 관행적으로 신용을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거래 쌍방 간에 신용이 인정되어야 함은 물론이었고, ‘중개상인’이나 ‘보증인’도 신용이 전제되어야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나아가 신용이 확실하면 여러 가지 절차나 증빙서류를 생략할 수 있었고, 매매, 취업, 임대차 등에서 구두로 계약을 맺는 관행이 상당하였다. 또한 동업질서의 制裁가 공동체 내의 신용을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신용과 동업질서의 연관성은 중국인의 사회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地緣, 業緣, 血緣이 신용 및 상거래 신뢰 확보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신용이 전제되더라도 상거래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약정의 이행을 보장할 별도의 장치가 필요했고, 계약서와 증빙서류, 계약금, 보증금, 담보물 등의 수단이 강구되었다. 우선 계약서를 작성해 거래를 확증하고, 거래가 진행되는 과정의 중요한 매듭마다 증빙서류를 배치하였다. 일반적으로 계약서는 간략하게 작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느슨하게 적용되는 경향을 보였지만, 외국상인과의 거래에서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매매거래에서는 계약금이 하나의 보증 장치로 쓰였는데, 계약금은 위약금이라는 의미보다는 계약서처럼 거래를 확증한다는 의미가 더 우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취업과 관련해서는 보증금 관행이 있었는데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다. 채권채무를 보증하기 위해 설정된 담보물은 매우 특이한 양상을 보였다. 저당을 잡자마자 아예 담보물을 자신의 명의나 소유로 이전할 수 있어서 채권자에게 매우 유리한 관행이었다.
그런데, 계약서나 상기한 담보들보다 훨씬 더 중시되었던 것이 보증인이었다. ‘보증인 관행’은 상거래의 다양한 영역에서 거의 필수적으로 나타났고, 상거래 관행에서 신뢰 확보의 핵심적 매개로 작용했다.
‘보증인 관행’은 매우 다양한 양태를 보여주었다. 첫째, 보증인은 다양한 매매거래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掮客, 莊客, 牙行, 跑街 등 ‘중개상인’은 상거래를 중개하는 역할에 더하여 보증인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중개상인’은 상거래의 안정성과 신뢰를 확보하는 하나의 중요한 방편이었다. 둘째, ‘보증인 관행’이 가장 일반적으로 관철된 것은 상점이 직원이나 徒弟를 채용할 때였다. 보증인은 반드시 신용 있는 사람이어야 했고, 피보증인이 초래한 손실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했다. 다만 여러 가지 정상은 참작되었다. 셋째, 채권채무 관계에도 ‘보증인 관행’이 매우 긴밀하게 개입되었다. 이때 보증인은 채권자에 대해 마치 채무자처럼 엄중한 책임을 져야 했고, 이는 채무자의 신용을 높여 거래를 촉진하는 작용을 했다.
이러한 보증인의 보증 책임이 갖는 사회적 의미와 위력은 실로 엄중하였다. 보증 책임이 매우 엄중했으므로, 보증인은 피보증인에 대해 항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고, 보증과 관련된 사항에 작은 변화가 생겨도 비교적 용이하게 보증을 철회하거나 책임이 소멸될 수 있었다.
‘보증인 관행’은 人保와 舖保로 나눌 수 있는데, 개인적인 보증(人保)에서는 父兄을 비롯한 친속이나 친분이 두터운 지인이 많았고, 거액이 오가는 상거래에서는 대개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유력한 상점(舖保)이 대부분이었다. 아무튼 보증 책임이 엄중했으므로 보증인과 피보증인은 사회적으로 매우 긴밀한 관계일 수밖에 없었고, 양자의 인격적 관계는 血緣, 地緣, 業緣, 學緣 등 중국인의 사회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연결망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양상들은 고정적이지 않았다. 더욱이 근대라는 풍랑에 직면하여 유동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다. 중국의 전통적 상관행이 상당 부분 지속되어서, 본고에서 다룬 민국시기의 상관행에 이르렀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이것이 전통적인 것인지, 전통과 단절된 근대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지속되는 가운데에서도 근대적 변화의 계기들은 산재해 있었고 전통적 상관행이 근대적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전통적인 상관행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고, 근대적 변화의 가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문을 통해 발표할 예정이다.
박경석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