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는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시기 하이퐁 화교의 피해 상황을 살펴봤다. 프랑스군과 베트민군의 군사적 충돌은 베트남 북부뿐 아니라 중부와 남부에서도 발생했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베트남화교에게 큰 피해가 초래됐다.
먼저, 프랑스군의 공격과 양측의 교전으로 베트남 북부에선 ‘난교’가 대량 발생했다. 하이퐁은 1,000명의 실업자와 파산한 ‘난교’가 발생했다. 하노이의 중화회관과 주하노이중화민국총영사관이 수용하고 있는 ‘난교’는 3,000명에 달했다. 그 이외의 랑선, 남딘, 끼엔안, 그리고 중부의 호이안(峴港) 등지에 수천 명의 ‘난교’가 발생했다. 이들 난교의 총수는 1만여 명에 달했다.
사진 1.1940년대 초반 하이퐁의 공장 지대
베트남 남부는 1946년 1월 말 프랑스군이 완전점령하면서 실질적으로 프랑스 식민당국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 하지만, 베트민군이 남부의 일부 지역을 점령하거나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에 양측간의 충돌이 자주 발생했다. 1943년 베트남화교 인구의 8할 이상이 남부에 거주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서도 사이공과 쩌런에 전체의 7할이 거주하고 있었다. 사이공과 쩌런은 베트남 최대의 화교거주지이자 화교경제의 중심지였다. 베트민군은 군수물자 보급 차원에서 화교집단거주지를 중요시, 이들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을 펼쳤다.
1946년 말 남부에서 교전이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쩌런과 그 교외를 비롯한 각 도시에서 프랑스군과 베트민군이 충돌, 프랑스군은 이르는 곳마다 베트민 유격대를 소탕했다. 프랑스군은 그 과정에서 쩌런 및 그 주변 화교 집단거주지에 공격을 가했다. 화교와 베트남인의 주택과 상점은 프랑스군에 포위되어 폭행과 겁탈, 약탈을 당했다. 쩌런의 각 지구별 피해 상황은 다음과 같다.
양측 교전 가운데 사이공과 쩌런 교외의 동북지구(東北地區)에 대화재가 발생했다. 이 대화재로 빈떠이동북지구(平泰東北地區)의 화교 주택 260칸이 소실되고, 주택 및 재산 손실은 100만 피아스터, 난교 1,200명이 발생했다. 빈떠이서북지구(平泰西北地區)는 주택 소실 465칸, 주택 및 재산손실 205만 피아스터, 난교 2,123명이 발생했다. 석자창지구(石仔廠地區)는 주택 527칸, 주택 및 재산손실 150만 피아스터, 난교 2,700명이 발생했다. 뇌낙지구(雷諾地區)는 소실 주택 25칸, 주택 및 재산손실 15만 피아스터, 난교 160명이 발생했다. 평민지구(平民地區)는 주택 소실 150칸, 주택 및 재산손실 80만 피아스터, 난교 500명이 발생했다. 지시지구(地市地區)는 주택 소실 20여칸, 주택 및 재산손실 8.5만 피아스터, 난교 500여명이 발생했다. 흥륭지구(興隆地區)의 소실 주택은 17칸, 주택 및 재산손실 2만 피아스터, 난교 30여명이 발생했다. 이상의 7개 지구 난교는 총 7천여명, 가옥 소실은 1,480칸, 재산 손실총액은 560만 피아스터에 달했다. 베트남 남부의 주요한 항구인 사이공에서 출국한 화교는 1943년 4,578명, 1944년 2,942명, 1945년 837명에서 1946년에는 1만1,512명으로 급증한 것은 남부에서 발생한 ‘난교’가 사이공을 통해 피난을 떠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진 2. 1940년대 초반 쩌런의 화상이 미곡을 운송하는 장면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으로 인한 화교의 피해가 얼마나 심각했던지 화교 사이에서는 지방 희곡의 하나인 ‘펑양화고(鳳陽花鼓)’의 장단에 맞춰 다음과 같은 가사의 노래가 크게 유행했다.
“하이퐁을 말하고 하이퐁을 말하네, 하이퐁은 원래 좋은 지방, 6년 동안 적에게 심한 손상 주었건만, 적은 가고 또 이씨 늑대가 왔네, 대식구의 집안 재산 봉쇄되고, 선량한 집안 사람 감옥에 갇혔네, 납치하고 강탈하니 실로 강도이도다, 베트남화교 많은 재앙 만났네. 하노이를 말하고 하노이를 말하네, 원래 하노이는 안락한 땅, 6년 동안 적에게 심한 손상 주었건만, 적은 가고 또 왕씨 호랑이가 왔네, 천호의 집안이 함부로 유린당하니, 한없이 깊은 원수를 어디에다 하소연 하리요, 왕 도적은 허리에 가득 찬 돈주머니만 바라보네, 그 집안의 흥망을 뒤흔드네. 중부(베트남)를 말하고 중부를 말하네, 중부는 원래 무릉도원의 땅, 5년 동안 적에게 심한 손상 주었건만, 적은 가고 또 채씨 검은 표범 왔네, 납치하고 강탈하고 또 강간하고, 망령된 한간이라 의심하니, 천만의 선량한 집안 얼마나 불쌍한지, 억울한 사정 어느 곳에 읍소할꼬.”
베트남의 북부와 중부 거주 화교의 억울하고 비참한 심정을 적나라하게 담은 노래라 할 수 있다. 상기의 곡조에 등장하는 ‘이씨 늑대’, ‘왕씨 호랑이’, ‘채씨 검은 표범’은 다시 돌아 온 프랑스 식민주의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한반도화교와 베트남화교 마주보기 7】
이정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참고문헌
井出淺龜, 『佛印硏究』, 皇國靑年敎育協會, 1941.
徐善福·林明華, 『越南華僑史』, 廣東高等敎育出版社, 2016, 265-266쪽.
「越南華僑多遭殃」, 『評論報』(第8期), 1946, 10쪽.
Shiu Wentang, “A Preliminary Inquiry into the Wartime Material Losses of Chinese in Vietnam, 1941-1947”, Sydney: Chinese Southern Diaspora Studies. Vol.4, Canberra: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2010, p.126.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사진 2 井出淺龜, 『佛印硏究』, 皇國靑年敎育協會, 1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