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테마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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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이름으로 감사를 외치다: 종교와 모성으로 보는 대만 원주민 _ 문경연

음악과 드라마, 영화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매년 중화권의 여러 시상식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특히 대만의 음악 시상식 <금곡장(金曲獎, Golden Melody Awards)>과 드라마 시상식 <금종장(金鐘獎)>을 보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되었다. 올해 금곡장은 코로나19 때문에 4개월이나 연기되어 10월 초에 열렸다. 이 금곡장 시상식에서 올해의 최고 가요(年度歌曲獎)와 최고 음반(年度專輯獎)상은 모두 아바오(阿爆)에게 돌아갔다. 아바오는 파이완족(排灣族)의 전통의상을 입은 부모님과 함께 무대에 올라 수상소감으로 이 음반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원주민을 비롯한) '소수인'의 생활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고, 우리는 음악을 통해 대화를 할 수 있으며, 더 이해하고 덜 오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대체 그의 음악은 무엇을 말하길래 소수인을 언급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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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금곡장의 무대에 오른 아바오 


아바오는 1981년 대만 남동쪽에 위치한 타이동(台東)시 진펑향(金峰鄉)의 파이완족 부락에서 태어났다. 그는 2014년부터 파이완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파이완어를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후에는 이렇게 파이완어 화자가 사라지게 되면 파이완어가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파이완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바오가 받은 올해의 가요 상과 음반 상 모두 파이완어로 되어 있다.


아바오의 음악은 파이완족의 전통 리듬에 성가를 혼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의 가요 상을 받은 <Thank you 感謝>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잘 드러난다. 금종장 이후의 인터뷰1)에서 아바오는 이 곡을 만들 때 영화 시스터 액트(Sister Act)에 나오는 〈I will follow you〉등의 복음성가에서 영감을 떠올렸다고 한다. 아바오가 살던 타이동의 부락에서는 천주교와 개신교를 막론하고 일요일이면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들어 함께 노래를 불렀던 기억에 근거해 뮤직비디오도 교회에서 성가를 부르는 대형으로, 가사에도 "To all of my angels, I wanna say Thank you"라는 영어 후렴구를 넣었다.2)


필자도 아바오가 태어난 타이동의 부락을 2014년 현지조사 중 가본 적이 있다. 타이동 시내에서 남쪽으로 향하면 아바오의 고향 진펑향과 타이마리향(太麻里鄉)이 나오는데, 이 두 지역은 파이완족이 모여 사는 동네이기도 하다. 파이완족이나 아메이족(阿美族), 루카이족(魯凱族) 등의 원주민 부락에 가면 꼭 빠지지 않는 광경이 있다. 바로 부락마다 중심에 교회가 있는 것이다. 필자가 찾았던 타이동 파이완족의 S 부락에도 교회가 있었고 교회 내부는 각 부족들의 직물이나 수공예품으로 장식된 십자가가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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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파이완족 부락의 교회 내부

 

원주민들은 언제부터 기독교와 만나게 된 것일까? 그리고 원주민들은 왜 소수인이라 자신을 호명하는 것일까? 이 질문들에 답하기 전에 먼저 대만 원주민들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려 한다. 대만 원주민들은 17세기 한인(漢人)의 이주 전부터 타이완 섬에 살고 있었던 오스트로네시아족 계열의 사람들을 말한다. 일본통치시기에 와서 원주민들은 일본의 학자들에 의해 평지에 살며 한화(漢化)된 원주민들을 핑푸족(平埔族)이라, 산지에 사는 원주민들을 고산족(高山族)이라 불렸다. 후에 이 구분은 국민당 정부에 의해 여러 단계를 거쳐 현재 16개의 부족으로 분류되고 있다. 원주민의 전체 인구는 약 58만 명으로 대만 전체 인구의 3%가 채 되지 않으며, 아메이족이 약 21만 명으로 가장 많고, 그리고 이 글에서 소개할 파이완족이 약 10만 명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원주민위원회(原住民族委員會)의 통계에 따르면, 이 원주민들의 약 75% 정도가 개신교와 천주교를 포함한 기독교를 믿고 있다. 한인이 대만에 이주하기 전 네덜란드와 스페인 선교사를 원주민들이 먼저 만났다는 설, 19세기 말 일본 통치가 시작되기 전 타이베이와 타이난에 들어왔던 서양 선교사들이 포교활동을 할 때 한인들에 비해 원주민들 중 핑푸족의 선교가 더 빨랐다는 점3), 1945년 국민당 정부가 대만을 통치하기 시작했고 이전 일본통치기부터 일본의 압박으로 경제상황이 좋지 않았던 원주민 부락에게 교회들이 경제적으로 지원하면서 원주민들이 개종했다는 설도 있다. 연구자와 함께 타이동 여행을 했던 원주민 전도사는 마지막 설의 손을 들어주었다. 1950년대 전후로 각 부락마다 교당이 하나씩 생겼고, 자신의 유년시절도 '교회에 가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맛있는 것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2007년 대만의 공시(公視)에서 방영한 <무동산해적선율(舞動山海的旋律)> 다큐멘터리 시리즈 중 3-4<찬미상제산지가(讚美上帝山地歌)>를 보면 원주민의 가요가 어떻게 찬송가와 결합하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있다. 1950년대 이후 대만 본토화 선교전략을 세웠던 대만 장로교회는 각 원주민의 전통 가락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의 가사를 넣어 원주민 찬송가를, 그리고 원주민의 언어로 성경을 편찬하며 원주민 언어로 예배를 드리는 전략을 실천해왔다. 비단 원래 원주민이 가지고 있었던 관습인 풍년제와의 마찰도 있었지만, 점점 1년에 한 번인 풍년제가 매주 한 번인 미사와 예배로 변화했다. 아바오가 태어난 타이동의 부락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바오의 노래 는 바로 천주교와 개신교를 막론하고 매주 교당으로 모여 노래를 부르던 그 모습과 원주민들의 찬송가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아바오의 노래 〈Thank you〉가 수록되어 있고, 금곡장에서 올해 최고의 음반상을 받은 〈kinakaian 母親的舌頭〉의 이름도 의미심장하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어머니의 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음반의 이름에서 의미하는 바는 파이완족의 모어인 파이완어이자 어머니에서 어머니로부터 전해 내려오고 어머니로부터 모어를 다시 배운 아바오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음반의 마지막을 <모어>라는 곡으로 수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원주민 가수로 활동한 어머니 왕치우란(王秋蘭(愛靜))여사도 이 음반의 작사와 작곡에 함께 참여했다.


그렇다면 아바오는 왜 2014년부터 파이완어 음반을 내고 있을까? 그 원인은 앞서 글의 서두에서 설명한 음악을 통해 대만에서 소수인 원주민의 삶을 알리고 싶어서이다. 파이완어를 이해하지 못해도 적어도 음악을 통해서 파이완을 비롯한 원주민들의 삶을 오해가 아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 전까지 파이완어를 잘 하지 못하는 도시원주민이었던 그는 어머니와 함께 외할머니를 찾아가 파이완어와 파이완어 노래 선율에 대해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계 전승의 경험은 2017년 역시 금곡장에서 최고의 원주민 음반상을 받은 〈vavayan 女人〉으로 2020년의 〈kinakaian 母親的舌頭〉로 연결되고 있다.


파이완족이 다른 원주민부족에 비해서 모계가 강하다는 연구결과는 아직 없다. 오히려 아메이족이 모계사회라고 알려져 있다. 다만 파이완족은 귀족과 평민이 구분되는 계급사회로서, 재산상속에 있어 남녀 구분 없이 첫째가 상속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 원주민들에 대한 친족구조는 이후 축적된 연구결과일 뿐 일본 통치 시기만 해도 원주민들, 특히 파이완족의 모성은 거의 그려지지 않거나 부성에 가려 종속적인 존재로 나타났다. 예컨대, 파이완 귀족 가정생활을 그린 미야타 야타로(宮田彌太郎)<혼명(昏冥, 1938)>에서 어머니는 어두운 집의 가장자리에서 아버지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4)


그런데 대만 최초의 여류화가라고 일컬어지는 천진(陳進)은 파이완족 여성들의 삶을 직접 찾아가 그렸다. 2019년 공시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화아대만(畫我台灣)> 천진 편에 따르면, 천진은 <산지문사지녀(山地門社之女)>라는 그림에서 자신이 실제 관찰했던 뱀 무늬가 그려진 옷을 입고 있는 파이완 귀족 여성의 모성과 사회적 지위를 동시에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하고 있다. 적어도 과거의 남성 화가들과는 다르게 파이완족의 여성들이 부족 사회 내에서 상당한 지위를 갖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5) 비단 한인 화가였던 천진이 파이완족 여성들의 계급까지 생각했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파이완족 여성의 일상을 편견 없이바라보려고 노력했다는 점에 이 작품의 의의가 있다.


다시 아바오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이 파이완족의 어머니에게서 어머니로 다시 아바오에게 전해진 모어 파이완어와 파이완족의 전통 노래, 그리고 아바오가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던 파이완족의 선율이 섞인 찬송가는 다시 파이완족 아바오 노래의 정체성이 되어 아바오의 음악을 소비하는 팬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 아바오의 사례와 관련된 원주민 찬송가와 서양(교회)음악의 관계, 도시 원주민과 부락 원주민 간 세대갈등, 원주민 토착 종교와 기독교와의 관계와 개종의 역사, 원주민 부족 내부의 젠더 관계 등은 현재 대만의 신학과 역사학, 인류학계에서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주제들이다. 이제 우리도 '대만'을 이해함에 있어 이 원주민들의 삶에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시아의 보물섬, 대만 6

문경연 _ 가톨릭대 사회학과 강사




1) 인터뷰 출처: https://www.ct.org.tw/1369726

2) 아바오의 뮤직비디오는 https://youtu.be/4cAp_IdqOuM 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吳學明2007,《近代長老教會來台的西方傳教士》,台北國立編譯館

4)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은 http://ultra.ihp.sinica.edu.tw/~yency/theme04/pic-theme4/f1e28.htm 를 참조하였다.

5) 이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https://faam.city.fukuoka.lg.jp/zh/collections/6905/ 도 참조하였다.


* 위 글의 사용한 이미지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https://www.facebook.com/GMAGMF/photos/a.1461235614113582/2778158019087995/

사진 2. 필자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