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정권 성립 이후 9년이 지난 1958년 중국정부는 호적제도를 도입했다. 전통적 호적제도에 기반한 이 제도는 정부 복지정책, 자원분배 정책의 기초가 되며, 국내 인구이동을 통제하고 범죄를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그에 따라 모든 행정단위에서는 여행 시에 통행증 혹은 호구(戶口)를 발행하여 움직이는 모든 국민을 국가의 통제 하에 위치시켰다. 개인 호구는 대체로 농촌 호구와 도시 호구로 구분되었으며 또 세습되었다. 그래서 만약 부모가 농촌 호구를 가지고 있으면 그의 아이들도 출생지와 관계없이 농촌호구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농촌지역에서의 인구이탈을 막기 위한 전략으로서의 호구제는 중국의 농촌경제 기반의 중공업건설 정책과 관련되어 진행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농촌에서 식량생산을 통해 축적된 자본을 국가 통제 하에 공업부문으로 강제로 이전시키고자 했으므로 농업 생산의 주체인 농민의 도시 이주는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문혁 등 혼란기를 통해 인구이동이 발생하면 강제로 귀향시키는 조치들이 당 주도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동부 도시지역에서 공업이 발전하면서 대량의 저임 노동력 확보가 현안이 되고, 또 농촌경제의 위기가 진행되면서 일자리를 찾는 농민의 도시이주는 막을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특히 2003년 광둥성 광저우 시에서 발생했던 소위 <순즈강(孫志剛) 사건>은 자유로운 국내 노동이민에 가해졌던 제약을 풀 수밖에 없는 계기가 되었다. 호구를 지니지 않았다는 이유로 광저우 경찰에 체포된 순즈강은 심한 구타를 당하여 사망하는 비극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그의 사후 호적제도에 대한 항의가 지속되면서 자유로운 이주를 제한하는 제도들이 점차 수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21세기에는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진출한 농민공이 해당 도시인구를 추월하는 지역도 다수 출현하였다.
단위 : 만 명, %
표 1. 농민공의 유입과 배출의 지구별 분포
금년 4월에 발표된 2019년 농민공에 대한 중국 <국가통계국>의 조사에 따르면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농민공의 증가 추세는 2017년의 증가율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었으나 2018년에 비해서는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전년 대비 0.8% 증가한 농민공 수는 이제 2억 9077만 명으로 3억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이러한 농민공들 가운데 1억 1652만 명은 출생지에서 농민공이 된 경우(호구가 있는 향/진의 지역에서 취업한 경우)이고, 출생지를 떠난 농민공은 17,425만 명인데, 이 중 성 밖으로 이동한 농민공은 7508만 명(43.1%)이고, 성내에서 이동한 농민공은 9917만 명(56.9%)이었다. 지역별로 보면 동부지구는 성내이동(82.9%)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중부지구는 성 밖 이동이 많았다(59.2%). 서부지구는 큰 차이는 없으나 성내이동(51.6%)이 상대적으로 많았고, 동북지구 역시 성내 이동이 많았다(70.2%). 이를 농민공 지구별 분포와 관련시켜 보면 <표 1>과 같다.
위 표에 따르면 인구가 빠져 나간 비율은 서부지구와 동북지구가 높았고, 유입지에 따른 농민공 증가속도는 중부지구와 서부지구가 높았다(서부지구는 외지인의 유입을 정부가 지원한 정책과 관련). 중국 이외의 지역으로의 이주가 늘어난 것도 주목되는 사실이다. 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동부지구에서도 북경과 천진 주변지역은 유입이 증가했으나(0.9%), 상해, 강소, 절강지역에서는 유입이 감소(-1.1%)했고, 특히 주강 삼각지 지역의 농민공 유입은 2.6%나 감소했다. 서부지구는 <서부 대개발> 정책에 따른 대규모 사업발주에도 불구하고, 사람 수에서 유입 보다 배출이 더 많이 진행됨으로써 국가의지와 관계없는 인구이동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개혁 개방 이래의 농민공들의 동부해안지역으로 이주 경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농민공의 성격에도 다음의 3가지 측면에서의 변화가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 여성과 배우자가 있는 농민공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성내 이동의 경우나 성외 이동의 경우나 농민공 중 여성의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전체 농민공 가운데 미혼의 농민공은 16.7%, 기혼의 농민공은 80.2%, 기타(배우자가 사망하거나 이혼한 경우)가 3.1%로 조사되었다. 그런데 성 밖으로 진출한 농민공의 경우 배우자가 있는 사람은 68.8%였으나, 성내 농민공 중 배우자가 있는 사람은 91.3%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둘째, 50세 이상의 농민공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농민공의 평균 연령은 40.8세인데, 성내 이동 농민공의 평균연령은 45.5세, 성밖 이동 농민공의 평균연령은 36세였다. 전자의 경우 50세 이상의 농민공 비율은 35.9%였고, 후자의 경우는 13%였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중국에서도 고향에서 멀어진 곳에 나이든 사람들이 일하러 나가기에는 상대적으로 더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고학력 농민공의 비중이 다소 증가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전체 농민공 가운데 학교를 다녀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1%, 초등학교 정도 수준이 15.3%, 중학교 수준이 56%, 고등학교 문화수준이 16.6%였다. 고학력이라고 볼 수 있는 전문대 이상은 11.1%를 점하고 있었는데 이 수치는 전년도에 비해 약간 상승한 것이었다. 출신 성 지역 밖으로 유출된 농민공 가운데 전문대 이상의 고학력자 비중은 14.8%, 성내 이동 농민공의 경우는 7.6%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러한 농민공의 대량 이주는 주지하다시피 농촌의 희생 위에 산업화를 지향하면서 발생한 농촌 경제의 위기와 관련되어 있었다. 농민공의 월평균 수입은 최고 4,677위안에서 최저 3,289위안의 분포를 보인다. 교통운수업 종사자들이 가장 높았고, 숙박업소나 식당에서 일하는 서비스업의 경우 가장 낮았다. 사실상 형식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자료를 참고해 보면, 중국의 최저임금은 2018년을 기준으로 보면 상해가 최고 수준인 2,420위안이었다. 호남, 호북 그리고 동북지역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북경 사범대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중국 인구 가운데 약 6억 명은 월수입 1,090위안 이하였으며, 월수입 5,000위안 이하의 인구가 중국 전체 인구의 95%를 점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특히 농촌 주민의 75.6%가 1,090위안 이하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농민공의 도시 진출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2017년에 발표된 피케티외 2인의 연구1)에 따르면 1978년에서 2015년 사이 중국 도/농인구의 소득 격차는 200% 미만에서 350% 내외로 확대되었다. 최상위 소득층 10%의 자산 점유율이 1978년의 27%에서 2015년 41%로 급격히 상승했으나 하위 50%의 자산은 27%에서 15%로 떨어졌다.
개혁개방의 과실이 누구에게 주어졌는지, 개혁개방의 표어였던 <선부론>에서 제시한 낭만적 예측이 현실에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중국 공산당은 이제 대답은 해야 할 것이다. 신강위구르 지역에서의 민족갈등이 내몽골지역으로 확대되고, 중국 소수민족 정책의 상징이었던 민족어 교육이 말살되어 가는데 더하여, 중국 노동자들이 직면한 현실적 삶의 모습은 중국 공산당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켜가고 있다. 농민/노동자는 공산당의 식민지가 아니라 그들 권력의 원천이었음을 기억해야 할 중국 공산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의 문제를 은폐하는 애국주의라는 창의성 없는 전략을 계속 고수해 나갈 것인지 궁금하다.
【김태승의 六十五非 20】
김태승 _ 아주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1) Thomas Piketty, Li Yang, Gabriel ZucmanCapital Accumulation, Private Property and Rising Inequality in China, 1978-2015, NBER Working Paper No. 23368. Issued in April 2017, Revised in Jun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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