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석에는 견우와 직녀도 만나는데, 중국 내에는 아직도 여러 샤오밍들이 대만의 가족들을 만나러 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8월 25일 타이베이의 기자회견장)
8월 25일은 음력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七夕)이었다. 대만에서는 정이 깊었던 목동 견우와 옥황상제의 손녀딸 직녀가 1년에 한 번 만나는 날로 원소절(元宵節)과 함께 발렌타인데이(情人節)라고 부른다. 아니나 다를까 필자의 대만 친구들이 동음이의어를 사용하여 “징위엔아 칠석날에 일곱 가지 소중히 여겨야 할 일들(七惜)이 뭔지 아니? 부모님이 키워주신 은혜, 부부가 서로 의지해야 할 은혜, 한 품에서 자란 형제의 정, 너와 동고동락하는 진정한 친구, 너를 도와줄 귀인의 은혜, 어려움을 막아 준 옛사람의 은혜, 어디서 만날지 모르는 감사한 인연들 등 이 일곱 가지1)를 소중히 생각해야 해!”라고 중복된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만큼 칠석은 비단 연인들만을 위한 날이 아니라 가족과 친지, 그리고 친구와 지인들의 ‘인연’을 위한 날이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코로나19는 여러 새로운 ‘경계’를 만들며 사람들의 움직임을 제한해 오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며 으레 당연시 여겨지던 것들에 문제를 제기하는 인류학자들에게도 코로나19는 도전적인 과제이며, 경계를 넘나드며 생활해오던 사람들에게도 코로나19는 난제임이 틀림없다. 견우와 직녀는 1년에 한 번이라도 아쉽게 만날 수 있지만 코로나19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니 영원히 인류와 함께 살아갈 것이라고 예견되는 옥황상제의 벌보다 더 가혹한 것이었다. 지난 2월 코로나19가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대만은 사람들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중국에서 생활하는 대만 상인들과 중국 출신 배우자들의 자녀들이 화제가 되었다. 일명 ‘샤오밍(小明)’이라 불리는 이들은 중국에서 자랐기에 아버지의 ‘중화민국’보다는 어머니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택해 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코로나19로 가족들이 대만으로 귀환을 원하면서 바로 이들의 대만행을 허락할 것인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이다.
작금의 중국-대만 관계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비정치적’으로 시작된 사안들에도 정치적인 요소들이 가미된다. 2월 3일 후베이성 우한시의 대만 상인들을 중심으로 1차 귀환이 이뤄진 후, 대륙위원회는 인도적 차원에서 샤오밍들의 2차 귀환을 허락했지만 대만중앙유행전염병지휘센터(台灣中央流行疫情指揮中心, 이후 지휘센터)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대륙위원회가 지휘센터의 입장에 동의하며 데려오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여러 이주단체들의 원성을 샀다. 특히 지휘센터 수장이 던진 한마디 “국적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고, 당시 처음부터 대만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國籍是自己選的,當初沒有選台灣,現在就要自己承擔)” 때문에 대만 사회에 ‘누가 대만 사람의 범주에 속하는가’와 ‘전염병이라는 예외상태에 개인의 권리는 어디까지 보호되어야 하는가’라는 커다란 질문과 논란을 남겼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실랑이를 거치고 대만의 코로나19 환자가 전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적어 통제가 가능해지면서 ‘샤오밍’들에게도 제한적으로 대만에 와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8월 13일 0시부터 대만 거류증을 가진 중국 어머니들의 만 2세~만 6세 ‘샤오밍’들은 대만에 올 수 있도록 허락된 것이다. 그런데 이후 만 6세가 넘은 ‘샤오밍’들의 가족들의 항의가 있었고 8월 19일 ‘만 6세’가 넘은 학령기의 샤오밍들은 교육부의 허가 아래 대만에 들어올 수 있도록 바뀌었다.
만 18세가 넘은 큰 ‘샤오밍’들 중 소수는 대륙학생(陸生, 일부 매체에서는 중국학생의 준말인 中生이라 부른다)의 신분으로 대만에서 학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대만 교육부와 대륙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대륙 학생'들은 신입생을 포함하여 약 1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2) 대륙학생들은 1월 26일부터 시작된 대만중앙유행전염병지휘센터의 지시 하에 2월 9일부터는 대만으로 들어오는 것이 잠시 금지되었다. 3월 19일에는 거류증이 있는 해외 인사를 제외하고는 대륙, 홍콩, 마카오를 포함한 해외 인사들이 대만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대만의 코로나19 현황도 안정되면서 외국 유학생들이 대만으로 들어오는 일들이 논의되었으나 대륙 학생들은 예외였다. 중국의 코로나19 정보가 투명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7월 초부터 19개 국가의 유학생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다 여러 교수들과 학생들의 청원으로 7월 22일 대륙학생을 포함한 신입생들이, 8월 24일에야 대륙학생을 포함한 모든 학생들이 신청을 통해 대만에서 학업을 이뤄나갈 수 있게 되었다. 대만에 들어오고 난 후에는 꼭 14일 간의 자가격리를 거쳐야 한다.
‘샤오밍’들과 ‘대륙 학생’들에 대한 조치가 점점 완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석에도 여전히 만나지 못하고 있다고 읍소하는 부부들이 있다. 바로 최근 결혼한 신혼부부들이다. 최근 제3국에서 결혼하는 중국-대만 간의 부부들이 많아졌고, 이들이 대만으로 귀환하기를 원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대만에서 친지방문(團聚) 비자의 발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칠석날 곧 출산을 앞둔 9개월 임산부 대만 여성의 중국 남편이 대만에 오고 싶어하자 지휘센터의 수장은 26일 이 문제는 토론할 가치가 있긴 하지만 ‘중국으로 시집을 갔으므로, 중국으로 가서 출산을 하면 된다(她因為是嫁到大陸,事實上她也可以過去(大陸))’고 덧붙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9개월 임산부는 비행기에 탈 수 없기 때문에 대만에서 남편 없이 출산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사건들은 현재 ‘중국’이라는 요소와 함께 정치화되어 종종 토론대에 오르고 있다. “티베트나 위구르의 아이들도 고통받고 있는데 왜 우리만 샤오밍들을 챙겨야 하는 의무가 있느냐?”, “국제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샤오밍들을 데려와야 한다”, “샤오밍들 핏줄의 반은 대만 사람이 아니냐?”, “진작 중화민국(대만) 국적을 땄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대륙 학생들의 교육권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등의 논쟁이 한쪽에서 펼쳐지고 있다.3) 코로나19라는 예외의 사태에서 어떤 개인의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하는가를 생각할 수 있는 사례이다.
한때 우리는 지구화, 세계화, 초국가 등의 다양한 용어를 통해 경계가 점점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해왔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전염병의 확산은 전세계가 경계 없이 모두 ‘걸릴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여러 정부들은 각각의 방식대로 이 속도 빠른 전염병을 통제해 왔다. 대만은 사스(SARS) 등 여러 경험과 노하우로 누구보다도 이 전염병에 강력하게 성공적으로 대처해오고 있다. 이 글은 결코 대만의 방역을 폄하하는 글이 아니며 그렇게 읽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대만의 사례를 통해 남녀노소빈부격차를 고려하지 않은 채 ‘경계’ 없이 무작위로 전염되는 코로나19가 의도치 않게 새로운 ‘경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음을 알리고자 하는 글이다. ‘대륙 학생’은 언제 입학했는지에 따라, 양안결혼부부들은 언제 어디서 결혼했는지에 따라 그리고 그의 자녀들은 언제 태어났는지, 어디서 어떻게 생활할지에 따라 결코 같은 집단으로 범주화되지 않고 분화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너무 뻔한 결론이지만 결국 옥황상제의 벌만큼이나 지독한 코로나19의 전 세계 전염속도가 어느 정도 잡혀야 이 견우와 직녀 가족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오작교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아시아의 보물섬, 대만 5】
문경연 _ 가톨릭대 사회학과 강사
1) 부모님이 키워주신 은혜(一惜父母,父母养育之恩), 부부가 서로 의지해야 할 은혜(二惜夫妻,互相扶持之恩), 한 품에서 자란 형제의 정(三惜兄妹,一奶同胞之情), 동고동락하는 진정한 친구(四惜知友,相知相逾之恩), 당신을 도와줄 귀인의 은혜(五惜贵人,提携滴水之恩), 어려움을 막아 준 옛 사람의 은혜(六惜敌人,為难阻扰之恩), 어디서 만날지 모르는 감사한 인연들(七惜缘分,感恩所有遇见) 등 일곱 가지이다. 이 일곱 가지 소중히 여겨야 할 것들은 중국어를 이해하기 쉽도록 의역하였다. 지나친 의역은 필자의 잘못으로 돌리고 너그럽게 양해를 구한다.
2) 이 통계는 대학 학부에서 공부하고 있는 대륙 학생들만을 다룬 수치이고, 대학원의 석박사 학위과정에 있는 대륙 학생들까지 더하면 약 2만 5천명에 달한다. 대륙 학생들과 관련된 통계는 다음을 참고하면 된다.
(https://www.mac.gov.tw/cp.aspx?n=A3C17A7A26BAB048)
3) 2020년 8월 26일 三立新聞台의 新台灣加油 참조
(https://www.youtube.com/watch?v=KpowtG78Q6g)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 출처는 다음과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