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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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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료개혁 약가인하 정책의 아이러니: 신약과 복제약 _ 문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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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신의료개혁은 2003년 사스(SARS) 발발로 드러난 중국의 빈약한 전염병 관리와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몇 년간의 파일럿 개혁을 거쳐 2009년부터 시행되었다. 5년간 3차에 걸쳐 진행된 신의료개혁은 공립병원 개혁에 중점을 둔 마지막 3차 과정으로 올해 2020년 마무리된다. 개혁개방 이후 경제성장에 중점을 둔 정부의 정책에 따라 복지예산이 감축되고 병원에 대한 재정지원도 축소되면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의료서비스를 담당해왔던 공립병원조차 수익창출을 위한 민영화의 길에 나선다. 공립병원의 이윤추구는 의사들의 과다처방으로 손쉽게 해결되기 시작했다. ‘인민에 대한 봉사명목으로 강제되어 온 의료진의 낮은 임금은 처방 실적에 따른 보너스로 보충되었고 제약사들의 불법 리베이트가 만연했다. 이러한 제약사의 마케팅비용은 약가에 반영되어 고스란히 환자 개인의 부담으로 전가되었다.

 

2000년대 초반 의료비의 개인 지출이 50%에 육박하는 상태에 이르렀으나 개선되지 않는 의료시스템에 대한 인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3년 사스 전염병이 발발한 것이다.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수준은 아니었으나, 이후 중국 정부가 전국적인 전염병관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신의료개혁을 추진하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신의료개혁은 국가 전반적인 의료 서비스의 양적, 질적 향상과 함께 보편적 의료보장 시스템(universal healthcare system) 구축을 목적으로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에 대한 보고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의료개혁의 노력이 최근 중국의 코로나19 대응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도 분석이 필요하다.

 

20187월 개봉되어 흥행 1위를 달렸던 <나는 약의 신이 아니다(我不是药神)>라는 영화는 골수성 백혈병 복제약(generic)을 판매한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며 2000년대 초반의 암울한 중국 의료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2013년 스위스의 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Novarits)의 표적치료 항암제인 글리벡의 특허가 만료되어 복제약 생산이 허용되기 전까지 중국의 백혈병 환자들은 매달 400만원에 가까운 약값을 지불해야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급속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서민들이 이러한 금액을 지속적으로 지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며 이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주인공은 글리벡의 80분의 1에 불과한 인도산 복제약을 밀수해 수천 명의 환자들에게 공급한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불법으로 감행한 일이 많은 이들의 생명을 구하게 되고 구세주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으나 결국 불법 약품 밀수 및 판매로 구속되며 종결된다. 한국에서 글리벡 복제약의 밀수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2000년대 초반 백혈병 환자들이 생물학적 시민권(biological citizenship)을 주장하며 소위 글리벡 정체성을 형성하고 의약품 접근성 보장과 가격 인하 운동에 나서기도 했다.1)

 

의약품의 가격은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 결정된다. 판매 국가의 경제적 수준, 시장 진입의 시기 및 규모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며, 국가 간 치열한 정치적 협상의 과정이 동반되기도 한다. 보통 7~12년의 독점판매를 보장받는 신약의 경우,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천문학적인 개발비용을 보상해주는 대가로 매우 높은 가격에 책정된다. 희귀질환 환자들에게는 유일한 생명의 희망이지만 혹독한 경제적 희생을 치러야만 얻을 수 있거나 그조차도 불가능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헛된 희망인 것이다. 위 영화에서처럼 그나마 저렴한 복제약이 생명을 위한 실질적인 희망이었고, 신의료개혁에 포함된 약가인하 정책은 글로벌 제약사에게도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 의료현실을 고발하며 복제약 밀수를 다루는 이 영화가 중국에서 개봉될 수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관객들은 의약품 관리를 담당하는 국가 의료시스템 보다는 과도한 이윤을 취하며 환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글로벌 제약사를 비난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희귀질환 및 만성병 치료를 위한 신약 및 1세대 복제약을 판매하는 글로벌 제약사들은 중국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에 기본적으로 저항하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가격인하는 판매량 증가로 이어져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도 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중국 의약품 시장을 글로벌 제약사들이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다. 거대한 시장을 근거로 더욱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약가인하 정책은 결과적으로 중국 인민의 의약품 접근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높은 기술력을 지닌 글로벌 제약사의 의약품 수입을 촉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의 효과가 모든 의약품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저가의 복제약을 주로 생산하는 중국 제약사에게 약가인하 정책은 매우 심각한 생존의 문제였다. 중국 정부는 의료개혁과 함께 제약산업의 구조조정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는데, 이는 약가인하 정책과도 일정부분 연계되어 있다. , 약가인하로 인해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중소 제약사들의 도태 혹은 대규모 제약사로의 인수합병을 촉진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의약품 품질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상황에서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인증 등의 관리감독을 통해 양질의 의약품을 생산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중대형 제약사들로 산업을 재편하고 있다. 그러나 인민의 의약품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약가인하 정책은 이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했다. 그 한 사례가 2012년 중금속 크롬이 과도하게 포함된 약품 캡슐 사건이다. 당시 시장 점유율 상위의 쓔정제약그룹(修正药业集团)은 의약품 캡슐 제조를 소규모 하청업체에 위탁했고, 약가인하로 인한 수익성 악화의 부담이 의약품 제조사 뿐 아니라 부품 하청업체에까지 분배되었다. 물론 이 한 가지 원인만의 결과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결국 영세 캡슐 제조사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공업용 폐가죽을 녹여 만든 독성 젤라틴으로 의약품 캡슐을 제조, 납품한 것이다. 인민들의 건강을 위한 정책이 반대로 건강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았다.

 

의약품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경계를 오가는 독특한 상품 중에 하나이다. 때로는 생명공학의 장밋빛 희망을 내걸고 투기성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단 몇 천원의 복제약으로 일상의 통증을 다스리기도 한다. 중국 신의료개혁의 일환인 약가인하 정책은 다방면에서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성을 확대시키고 있으나, 필수의약품 리스트의 주를 이루는 복제약의 경우 제조과정 자체의 질을 하락시킬 수 있다는 문제점을 내포한다. 매우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례를 단순화시켜 기술했지만, 인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의약품 관련 정책은 매우 세밀하고 신중하게 설계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약과 독의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는 그리스어 파르마콘(pharmakon)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문우종 _ 한양대학교 간호학부 전임강사


                                                           

 

1) 강양구, 채오병 (2013). “21세기 생명정치와 시민권의 변동: 글리벡 정체성의 탄생”. 경제와 사회, 39-64.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www.51yuansu.com/bg/servjaznmf.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