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동하는 중국은, 번영 발전의 활력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 모두 있는 힘껏 달려가고 있고, 우리 모두는 꿈을 쫓는 사람들이다"(彭心韫, <人民网> 2019.9.2.)
2019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신년하례사에서 밝혔듯이, ‘유동중국’(流動中國)이라 칭해지는 인구, 자본, 자원의 거대한 모빌리티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부상과 번영, 발전에 가장 중요한 동력이자, 많은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의 발발과 전지구적 확산은 거대한 모빌리티에 기반하여 번영과 희망에 집중되었던 '낡은 정상'(the old normal)의 '민낯'을 드러내준다. 코로나19의 장기화가 우려되는 현 상황 속에서, '잠시 멈춤'과 '낡은 정상'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새로운 정상'(the new normal)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억명이 넘는 농촌 출신 이주노동자, 즉 '농민공'(農民工)은 바로 이런 교차로에 놓여져있다. 고향가족의 생계와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위해 고향 농촌을 떠났던 다수의 농민공은 도시의 저임금노동자이자 고향 농촌과 가족의 생계부양자로서 도시와 농촌,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고 개혁개방의 성과를 체험·전달하는 주요한 매개체였다. 하지만, 그들은 제도적 미비와 사회적 멸시·낙인 속에서 사회적 위험에 노출된 채 이동의 순간순간 가슴 시린 경험을 거듭했다. 중국 개혁개방이 2억 명 이상 농민공의 재생산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극단적으로 효율적인 체제 속에 이뤄져왔다(Pun and Chan, 2013)는 지적은 결과적 평가였다.
체제 전반의 위기가 닥치면 가장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사람들 또한 농민공이었다. 2003년 SARS와 2007-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농민공의 대량 실직을 낳았고 수천만 명은 사실상 강제 귀향되었다. 생존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 농민공의 뒤에는, 농촌이 실업 충격을 완화하는 스펀지라는 중국식 체제의 융통성을 지적하는 평가가 덧붙여졌다. 실제로, 그들은 금융위기의 충격이 가시자마자 도시로 되돌아왔고, '낡은 정상'은 금새 회복되고 더욱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다수의 농민공은 다시 한 번 발이 묶이고 일자리가 끊어졌지만, 그 맥락은 변화했다. 2020년 2월과 3월, 중국 정부는 발 빠르게 교통 및 물류의 원활한 기능 보장과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 유지 등 정상성 유지를 주요 과제로 천명했지만, 전염병에 대한 '전쟁' 선포와 바이러스 확산 우려 속에서 각 지역, 도시의 장벽은 더욱 굳건해졌고 상당수의 농민공은 낙인과 실업 속에 발이 묶였다. 샹비아오(项飙)는 중국이 하이퍼-모빌리티 사회로 되면서, 이러한 초이동성이 정부의 지역과 개인에 대한 개입을 어렵게 하고 결국 모든 움직임을 중단시키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었다는 가설을 제시한다(项飙, 2020).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조치로 인한 장기적인 사회적 결과이다. 대도시로의 인구 및 자원 집중 경향 속에서, 초이동성에 기반한 '낡은 정상'의 멈춤은 농민공 개인과 가족 수준에서 개별적인 고립 및 불평등의 심화 등 최악의 결과를 낳을 뿐만 아니라, 복귀한 자들에게도 사회적 위험을 온전히 자기 스스로 감수해야 할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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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관(东莞) 지역의 도서관에 남긴 한 농민공의 글이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
"동관에 온 지 17년 중에, 도서관에 와서 책은 본지 12년이 되었습니다. 사리를 분명히 해주고, 백익무해한 유일한 것이 책입니다. .. 공장이 문을 닫고 저는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이곳의 생활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바로 여기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이여, 모든 것이 아쉽고 모든 것이 아쉽고 생활고에 쫓기지만, 남은 생애 동안 영원히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 글이 온라인에 회자되며 농민공은 동관 현지에서 일자리를 제공받아 남아있게 되었다. 하지만, 미담의 이면에는 수많은 농민공의 가슴 시린 삶들이 누적되어왔음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17년 동안의 동관생활에서 거쳐왔던 수많은 이동의 공간 속에서 도서관이 가장 좋았다는 말은, 이주와 정착의 과정에서 중요한 화두인 각 관문과 거쳐가는 공간의 문제적 성격, 사회적 통합의 문제에 대해 되묻게 한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농민공에 대한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고향 인근 일자리 확충, 취업 소개의 원스탑 서비스 및 디지털화, 사회보호 서비스의 확대 등은 단기간의 도시 실업을 버텨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낡은 정상'으로 돌아간다면, 상황에 따른 농민공의 실업과 귀향은 반복되고 그 사회적 결과는 더욱 엄중해질 것이다.
과연 중국 사회가 코로나19의 위기를 겪으면서 '새로운 정상'으로 거듭날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2008년 대지진이 사회공작의 전국적 확산과 활성화를 낳았다면, 2020년 코로나19는 어떠한 사회적 혁신을 낳을 수 있을까. 코로나19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기술혁신과 정치체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실천과 일상생활의 변화, 나아가 사회 정의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윤종석 _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 참고문헌
彭心韫. "中国为 什么 被称为 “流动 的中国 ”?". <人民网> 2019.9.2.
http://politics.people.com.cn/n1/2019/0902/c429373-31331824.html
兵纷女声. "不走了!留言东莞图书馆的农民工有新工作了". 《澎湃新闻》 2020.6.28.
项飙. 2020. 「“流动性聚集”和“陀螺式经济”假说:通过“非典”和新冠肺炎疫情看中国社会的变化」. 『开放时代』 2020年 第3期.
Pun, Ngai and Jenny Chan. 2013. "The Spatial Politics of Labor in China: Life, Labor, and a New Generation of Migrant Workers." South Atlantic Quarterly 112(1):179-190.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 1. 澎湃新闻 (202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