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 사망 당시 27세의 빈세트 친. American Citizens of Justice 소장 자료
빈센트 친(Vincent Chin)은 미국 자동차 업계가 무너져가던 1980년대 초 자동차의 메카로 불렸던 디트로이트에서 두 명의 백인에게 폭행, 살해당한 이민 2세 중국계 미국인이다. 1982년 6월, 여느 미국인이 그러하듯 결혼을 앞두고 술집에서 총각파티를 하고 있던 친을 일본계로 착각한 두 백인, 크라이슬러 자동차 공장감독관 에벤스와 해고된 그의 의붓아들 니츠는 ”니놈같은 개자식들 때문에 우리가 일자리를 잃었다“고 욕설을 퍼부으며 친에게 시비를 걸었다. 일본 자동차의 침투로 인해 자신들의 삶이 엉망이 되었다는 믿음으로 분노에 차서 그들은 술집 밖에까지 쫓아가 아시아인의 얼굴을 한 친의 머리와 등에 야구방망이를 수차례 휘둘렀고, 친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목숨을 잃었다. 친을 살해한 두 명의 백인은 사전 형량 조정을 통해 2급 살인죄에서 과실치사(manslaughter)로 조정, 기소되었으며, 결국 집행유예 3년과 벌금만 무는 지나치게 가벼운 선고가 내려졌다. 이 부당한 사건과 사건처리는 미국 내 아시아계를 단결하게 한 계기가 되었고, 혐오 범죄(hate crime)에 대한 미 연방 법안을 강화해야 한다는 움직임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2020년 6월. 전염병이 지속되며 일상의 모든 것이 맥없이 낯설어진 현재, 40여년 전 빈센트 친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데이비드 하비(D. Harvey)의 표현처럼 전 지구가 하나의 마을인 양 시간과 공간을 압축시켜 온 글로벌화의 심화는 질병의 확산에도 예외없이 적용되고 있고, 2019년 말 시작된 COVID-19 바이러스는 유사 이래 전례가 없는 속도와 강도로 확산되며 전 세계인의 삶을 재조정하고 있다. 섭씨 35도에 육박하는 한여름 길거리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넘쳐나는 사소한(?) 풍경부터, 교육현장과 사업장의 작동 방식 및 사람들의 교류 방식이 달라져야 했고, 여행과 운동, 이제는 당연한 일상이 된 국경을 넘는 일이 매우 까다로워지거나 불가능한 이 낯선 환경 속에서, 누군가에게 이 불편하고 병적인 사회의 모습에 대한 책임을 덤터기 씌우고 혐오하며 혐오의 대상을 일반화하는 양상만은 슬프게도 낯설지가 않다.
그림 2. 2020년 3월 12일 보스턴 소재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 아시안 아메리칸 커뮤니티에
대한 인종주의와 공포감 조장, 그리고 잘못된 정보를 규탄하기 위해 모인
메사추세츠 아시안 아메리칸 위원회(Asian American Commission in Massachusetts) 회원들
뉴욕 데일리 타임즈(NY Daily TImes) 등 미국 내 보도에 따르면 3월까지 미국에서만 코로나 바이러스와 연관되어 당한 인종차별적 모욕과 폭력으로 접수된 건이 700여 건에 다다른다. 온라인 상에서 중국과 중국인, 나아가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발언과 공격이 이루어지는 것 뿐 아니라, 길거리나 공공시설에서 욕설을 내지르고 침을 뱉고 음료수를 던지며 때리는 등의 물리적 공격. 나아가 우버(Uber)와 리프트(Lyft) 운전자들이 탑승을 거부한다거나 마켓 계산대에서 우리 가게에서 나가라는 말을 듣는 일은 아시아스러운 외모를 지닌 이들에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비정부 기구 ‘아태정책기획위원회(Asian Pacific Policy and Planning Council)’와 ‘중국인에 대한 차별철폐(Chinese for Affirmative Action)’가 만든 온라인차별사례보고 플랫폼(#StopAAPIHate)에는 인종적 차별과 폭행 사례가 3월 초부터 일주일 만에 673건이 올라왔다. 이후 5월 13일까지 약 1,900건이 접수되었고 접수되지 않은 사례까지 감안하면 이 수치는 어마어마한 수의 아시아적 외모를 지닌 이들이 슈퍼에 갈 때나 병원이나 약국에 갈 때, 아니 단순히 동네에 산책을 나설 때에도 공포와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야 함을 말해준다.
빈센트 친의 죽음과 현재 아시아인들이 당하는 차별과 폭력의 배경은 그 구조가 매우 닮아있다. 친의 살해는 1980년대 초 자동차 산업을 비롯, 미국이 탈산업화 국면으로 가며 사상 최대의 실업률과 인플레를 해결하지 못하는 와중에 일본의 경제적 급성장과 미국의 막대한 무역 적자로 인해 경제적 패권을 일본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미국의 두려움 속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의 기업은 값싼 노동력과 낮은 세금, 기업 규제가 만만한 환경을 쫓아 제 3세계로 생산라인을 이전하는 전략을 추구함으로써 탈산업화를 진행시켰고, 그로 인해 빈센트 친 살해자들의 거주지 디트로이트를 필두로 자동차 공장 등에서는 30만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되었다. 포드, 크라이슬러, GM 등 주요 자동차 회사들은 멕시코 등지에 조립공장을 세워 미국 노동자들의 실업에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량해고의 원인은 오로지 일본 자동차의 수입 때문인 것으로, 미국 경제의 문제는 일본과의 무역 갈등 때문인 것으로 비난의 화살이 돌려졌다. 포드 회장이었던 리 아이아코카가 자서전에서 ”일본과의 무역 전쟁“을 강조한 것이나, 자동차 산업의 주요 문제는 ”저 작은 황인종들 때문“(미시건 주 민주당 연방하원의원 존 딩걸)이고, ”일본을 상대로 경제전쟁을 선포해야 한다”(오하이오 주 공화당 연방하원의원 라일 윌리엄스)는 정치인들의 발언, 맹목적 애국주의를 호소하는 ‘바이아메리카(Buy America)’ 캠페인을 노조가 제시한 것은 해고된 자동차 노동자들의 분노를 달랠 대안이 없던 미국 지도층이 어떤 사인을 보냈는지를 보여준다. 전미 자동자노조는 노조 야유회에서 1달러를 내면 일본산 자동차를 해머로 맘껏 휘두를 수 있는 행사를 후원하기도 했는데. 이와 같이 반아시아 정서로 쉽게 변질될 수 있는 위험한 언어와 캠페인으로 배태된 사회분위기 속에서 자동차 대신 일본인으로 보이는 미국인에게 몽둥이를 휘둘러댄 것은 예견했어야 하는 비극이었다.
사회불안과 그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있지 않은 혹은 대응에 서툰 국가사회가 위험과 불안에 대한 희생양을 혹은 화풀이 대상을 찾는 모양새. 여기에는 미국 사회 내 오랜 인종주의와 황색위협론(yellow peril) 또한 되풀이되고 있다. 미국에서 코로나 감염자가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는 ‘나는 중국인이 아녀요’를 외치는 문구를 적은 특이한 티셔츠가 판매되기 시작했다. “아시아인이지만 중국인은 아니다”, “난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다”, “중국인이 아니라 말레이시아인이다”(“I’m Asian but I’m not Chinese”, “I’m not Chinese, I’m Korean”, “I’m not Chinese, I’m Malaysian”) 등등, 이는 사실상 외모의 유사성을 이유로 동일시하는 데서 올 수 있는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세일즈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일본인이 아니에요, 나는 중국인이 아니에요, 라고 외치는 비동일시의 태도는 아시아인을 영원한 이방인으로 간주해온 미국 사회에서 어렵게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 이민자들에게 당연한 생존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빈센트 친이 일본인도 아닌데 왜 당해야 하느냐, 저들은 중국인도 아닌데 왜 번지수를 잘못 찾아 저들에게까지 더러운 병균이라며 공격하느냐 라는 질문은 핵심 이슈를 비켜가는 위험한 사고이다. 인종이나 민족성에 기초해서 누군가를 공격하고 혐오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괜찮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인이니까 중국인이나 찾아서 비난하라는 것은 괜찮은가? 그 공격의 대상은 언제든 일본인에서 중국인으로 또 다른 ‘이방인’에게로 전환될 수 있다.
우리는 현재 그 책임의 대상이 빈센트 친 살해사건 때보다 조금 분명해 보이는 현상과 마주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의 우한 시에서 처음 발견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질병의 발원지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비난과 혐오가 아시아인 전체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발원지론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들이 코로나를 “중국 바이러스(Chinese virus)” 혹은 중국무술 쿵푸에 빗대어 “쿵 플루(Kung Flu)”라 지칭하며 둘러대는 변명으로 쓰이면서 인종주의자들의 행동에 그럴듯한 구실을 주고 있다. 이미 WHO에서 질병을 특정 지리적 장소나 민족과 연결시켜 지칭하지 말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종주의적 프레임을 지속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중국과의 정치적 힘겨루기 속에서 질병에 대한 전면적인 중국 책임론을 주장하기 위한 것 뿐 아니라 질병의 확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트럼프 행정부의 실책에 대신 매 맞을 대상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글로벌화와 전염병의 관계는 명확하다. 세계를 무대 삼아 일하고 누리고 소통하는 방식이 빠르고 넓고 치밀해진 만큼 질병은 걸린 사람의 의도와 무관하게 넓고 깊게 퍼진다. 최초의 원인을 규명하여 차후를 대비하며, 그 진행을 통제할 적절한 대책과 시스템이 필요한데, 퍼지고 있는 질병에 대해 최초의 근원만을 따져 묻는 것은 거버넌스에 실패한 조직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라 보인다. 물론 중국 정부는 신종 전염병에 대한 합당한 경고와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과의 힘겨루기에서 코로나를 레버리지로 활용하여 ‘미국에 나아가 전 세계에 위협이 되는 중국인’ 담론을 키우는 방식은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 제노포비아를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연결된다. ‘StopAAPIHate’ 온라인 포럼에 보고된 차별 사례 중 61%는 중국계에 대한 공격이 아니었다. 미-중 정부 갈등 속에서 코로나는 또 다른 빈센트 친을 만들어내는 화살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중국문화오디세이 7】
정은주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은 2020년 6월 30일 국민일보 인터넷판 [차이나로그인]에 게재된 동명의 칼럼을 일부 수정한 것임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 1. https://www.nbcnews.com/news/asian-america/who-vincent-chin-history-relevance-1982-killing-n771291그림 2. https://theconversation.com/anti-asian-racism-during-coronavirus-how-the-language-of-disease-produces-hate-and-violence-134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