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 필자가 중국 성박물관에서 사온 전족 모양 도자기
디즈니의 영화 덕분이겠지만, ‘신데렐라’ 하면 우리는 그 원작인 샤를 페로(1628-1703)의 「상드리용(Cendrillon)」에 나오는 유리구두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19세기 초에 그림 형제가 쓴 「신데렐라」의 황금 신 역시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문자로 쓰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데렐라 이야기는 9세기, 중국(당)에 등장했다. 단성식(段成式)의 『유양잡조(酉陽雜俎)』에 있는 엽한(葉限)의 이야기로, 그 줄거리는 이러하다.
마음씨 착하고 예쁜 엽한이라는 소녀는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와 그 소생 딸에게 심한 구박을 받았다. 울적할 때마다 그는 몰래 키우던 물고기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 물고기는 황금색 눈에 붉은 지느러미를 갖고 있었다. 물고기가 너무 커지자 항아리에서 연못으로 옮겨 키웠다. 그 모습을 본 계모는 엽한의 옷을 입고 물고기에게 다가가 칼로 찔러 죽인 다음 요리를 해 먹고 뼈는 퇴비에 묻어버렸다. 물고기가 나타나지 않자 상심해 우는 엽한에게 하늘에서 어떤 사람이 내려와 위로하며 물고기의 뼈에 소원을 말하면 무엇이든 들어줄거라고 했다. 덕분에 엽한은 마을 축제가 열리던 날, 계모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청녹색 옷과 황금 신을 신고 참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모와 의붓언니가 자신을 알아보는 것 같아 서둘러 귀가하다 신발 한 짝을 떨어뜨렸고 그 신발은 타한(陀汗)이라는 나라의 왕에게 전달되었다. 곡절 끝에 신발이 맞는 유일한 여자인 엽한이 왕비가 되었고 계모와 언니는 돌에 맞아 죽었다.
세부적인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중국의 엽한, 조선의 콩쥐, 유럽의 신데렐라 모두 비정상적으로 작은 발을 가진 착한 소녀에게 다가온 ‘축복’, 즉 신분상승 이야기이다. 신이 안 들어가는 친딸에게 “엄지발가락을 잘라버려라. 왕비가 되고 나면 걸어다닐 필요가 없을테니”라고 말하는 그림동화의 구절을 읽고 있노라면 혹시 중국의 전족을 아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전족이란 일종의 ‘신체 변형(Body Modification)’으로 유아기 여자아이의 발을 강제로 졸라매 10센티 이상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울부짖는 딸에게 어머니가 한 말은, “이래야 시집을 잘 가서 평생 고생하지 않는단다”였다. “작은 발을 하면 수재에게 시집가서 평생 쌀밥에 고깃국 먹고, 큰 발은 거지에게 시집간다네”라는 속담까지 있었다. 신데렐라의 계모가 한 말처럼 작은 신은 귀한 신분으로 진입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림 2. 『中国古代春宫画』 (년도미상)
전족의 기원은 보통 10세기(오대십국 시기), 한 궁중무희에게서 찾는다. 남당 이후주가 요낭에게 천으로 발을 칭칭 동여맨 뒤 금으로 만든 커다란 연꽃 위에서 춤을 추게 했는데 선녀가 하강한 듯이 아름다웠고 그 후로 다수의 궁중여성과 기녀들 사이에서 이런 ‘발묶기’ 패션이 유행했다는 것이다. 전족의 다른 이름인 ‘금련(金蓮)’도 이때부터 유행했지만, 남북조시대 남조 제나라 동혼후의 반비(潘妃)에게서 찾기도 한다. 사치로 유행했던 동혼후가 황금으로 연꽃을 조각한 뒤 반비에게 걷게 하면서 “네 걸음걸음마다 황금이 피어나는구나”라고 극찬했기 때문이다. 반비와 요낭 중간 즈음에 등장한 엽한 이야기에도 청녹색 옷과 황금 신이 나오는데 역시 금련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전족의 기원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북송말부터는 점차 상층계급 여성들 사이에도 유행했고, 화북지방을 금에게 내준 남송시대에는 전족이 한족임을 드러내는 ‘표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정절이 여성의 최고 윤리가 되면서 작은 발은 도덕적으로도 칭송받았다. 원대에는 몽골족과 식별하기 위해서라도 전족을 해야 했고 일반여성들까지 가세해 ‘전족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전족이 성행한 명대에는 소설 『금병매』의 주인공 반금련과 서문경의 정사장면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전족은 ‘제2의 성기’이자 최음기구가 되어 남자들은 전족을 한 여성이 아니면 아내나 첩으로 들이기를 꺼릴 정도가 되었다.
이처럼 남성에게 여성의 전족은 여성미의 최고 표준이며 한족의 표지였고 조신함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거창한 명분 뒤에 숨은 진짜 이유는 ‘성적 쾌락’이었다. 뒤뚱거리는 모습은 남성을 흥분시켰고 전족한 여자는 마치 처녀와 관계하는 느낌을 준다며 정보를 교환했다. 만주족이 건국한 청대 초기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 전족금지령을 내렸지만 “머리는 포기할테니 전족만을 지키게 해 달라”고 하는 한족남성들의 ‘기개’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훗날 량치차오(梁啓超)는 이런 상황에 대해 “강한 남자의 머리가 약한 여자의 발만 못했다”고 표현했다. 초기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한족남성들이 결국은 만주족의 헤어스타일인 변발을 따랐던 것에 비해 전족은 오히려 더 기승을 부렸음을 비판하며 앞으로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전족을 풀고 여성을 교육시켜 남성에 기생하는 존재 아닌 생계를 보조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해야 함을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청대에는 발이 너무 작아(7센티 정도) 업혀 다니는 여자라는 의미의 ‘포소저(抱小姐)’도 등장할 정도였다. 18~19세기에 절정에 도달한 전족은 개항 후 중국에 온 서양 선교사의 비판, 그에 감화된 일부 중국 지식인과 관리의 적극적인 반전족운동에 힘입어 20세기 초 ‘신정’시기에야 비로소 강력한 금지령이 선포되었다. 미션계는 물론 공사립 여학교에서도 전족한 학생을 받지 않았다. 1930년대가 되면 최소한 도시에서는 전족한 여성을 보기 어려워졌다.
그림3. 1900년대 초 전족을 한 타이완 여성 (그림엽서)
전족을 한 것은 여성이었다. 주로 어머니가 딸에게 했다. 고통으로 절규했던 딸은 어느덧 어머니가 되면 자신의 딸에게 전족을 해주었다. 결혼 이외에 생존 수단이 없던 상황에서 딸이 좋은 데로 시집가서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남성들이 “불효 중 으뜸은 후사가 없는 것”이라며 가능한 여러 명의 첩을 두는 상황에서 처와 첩, 첩과 첩간에 암투가 극심했고 어떻게든 남편(주인)의 사랑을 받아야 했다. 이렇게 볼 때 전족은 여성이 보다 안전한 삶을 보장받기 위한 ‘생존전략’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이 어느 정도 주동적으로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즐긴 것은 남성이었다.
중국계 미국인인 도로시 고(Dorothy Ko)와 왕핑(Ping Wang) 등은 전족을 주로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진 속박으로 보았던 전통적인 해석과 다른 수정주의적 해석을 내놓아 학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상류층 여성이 남긴 아름다운 전족신을 감상하면서, 전족을 하는 소녀들이 품었을 기쁨과 희망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전족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서구 식민주의적 시각에서 비롯되었으며, 모든 관습은 나름의 의미가 있고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면서, “전족은 여성에게 짐이 아니라 일종의 특권이었다. 여성은 전족을 통해 자존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도 했다. 그들은 1990년대 미국 역사학계를 강타한 포스트 모더니즘에 영향을 받았다.
여성을 단순한 피해자 아닌 적극적 행위자로 보고, 여성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려 애쓴 그들의 연구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한편에서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전족이 이루어지는 공간에 남성이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며 ‘여성문화’ 운운하는 것은 이런 관습을 강요한 남성의 책임을 덮어 줄 뿐이다. 100년 전, 전족을 야만적이고 비인도적인 행위라 비판하는 서양인에게, “남자에게 성적 쾌락을 제공하는 전족은 너희가 꿈꿀 수 없는 중국인만의 훌륭한 방식”이라며 맞받아친 구훙밍(辜鴻銘)이 떠오르는 것은 중화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 만났을 때 여성억압의 관습이 전통의 이름으로 되살아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19세기말, “하느님은 남과 여 모두에게 건강한 두 발을 주었다”며 전족(Foot-binding)을 풀고 천족(Heavenly Foot)을 회복하기 위한 ‘전족폐지운동’을 중국 역사상 최초로 전개한 영국의 맥고완 목사 부부와 리틀 여사의 목소리에 비록 오리엔탈리즘적 요소가 섞여 있을지라도 그 여권주의적, 인도주의적 발상은 전족 연구에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중국문화오디세이 6】
천성림 _ 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 참고문헌
사카모토 히로코 지음, 양일모․ 조경란 옮김, 『중국 민족주의의 신화』, 서울:지식의 풍경, 2006.
천성림 지음, 『근대 중국, 그 사랑과 욕망의 사회사』, 서울:소명출판사, 2016.
Ko, Dorothy, Cinderella's sisters : a revisionist history of footbinding,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7.
Wang Ping, Aching for Beauty: Footbinding in China, 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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