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세계적인 대유행은 많은 것들을 바꾸어놓고 있다. 우리가 알던 오랜 일상들이 하루아침에 엉망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한 시대에 어느 일부가 통제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는 한 이전으로의 완전한 복귀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사회와 문화도 바뀌게 될지 모른다. 결혼식 문화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나 집회 등을 회피하게 되면서 결혼식을 연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연기조차 할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에는 화상 결혼식, 야외 결혼식, 작은 결혼식 등등 다양한 방식의 결혼식이 등장하고 있다. 대체로 가까운 가족, 친지들만 모이는 소규모의 결혼식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은 예로부터 혼인을 중시하여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혼인 예식을 치러왔다. ‘예(禮)’의 범주에 속했던 결혼식은 가족과 친지들 앞에서 혼인을 인정받는 하나의 사회적 의식이었다. 현재는 혼인등기만 해도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굳이 결혼식을 치르는 것은 그 사회적 의미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습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어 결혼은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최대한 풍성하고 화려하게 치러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혼예식과 함께 결혼식의 백미로 꼽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식사와 술이 오가며 가족과 친지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는 결혼 피로연일 것이다. 중국의 결혼식은 보통 식사를 하면서 몇 시간에 걸쳐 진행되므로 여기에 드는 비용이 결혼 직접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다. 중국은 땅이 넓어 신랑 신부의 출신지역이 각각 멀리 떨어져 있다면 피로연을 두 번 치러야 할 수도 있다.
그림1. 2013년 필자가 여행지에서 우연히 본 결혼식 장면
사실 중국인들이 결혼비용으로 고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하루 이틀만의 일이 아니다. 전통 시기에도 혼인비용은 자신의 형편 이상으로 과다지출되었다. 자녀들의 혼인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부모가 대출을 받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향은 민국시기에도 마찬가지여서 혼·장례비용을 위한 대출 비중이 높았다. 통계에 의하면 1930년대 농촌의 빈곤은 일상적이었고 부채비율은 50% 전후였다. 농가의 반수 이상이 빚을 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역을 막론하는 전국적인 것이었다. 농민들은 토지, 종자, 비료, 농기구 구매 등 생산을 위한 필요에서 대출을 하기도 했지만, 지세 납부, 식량 구매, 혼·상례 비용 등 주로 소비를 위해 돈을 빌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오히려 생산을 위한 대출보다 소비를 위한 대출 비중이 현저하게 높았다.
일례로 1934-1935년에 시행된 하남성, 호북성, 안휘성, 강서성 4성의 농업 계층별 대차용도 통계에 의하면 생산대차는 8.4%. 소비대차는 91.6%를 차지했다. 농민들은 소비를 위해 더 많은 돈을 빌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농촌 대다수의 농민은 항상적인 빈곤상태였고 일상적인 지세 납부와 식량 구매를 위해서도 돈을 빌려야 할 만큼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혼·상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대출 비중이 높았다. 위 통계에서 소비대차 항목을 식비, 혼·상례, 기타로 구분했을 때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2.1%, 18.1%, 31.4%1)였다. 혼·상례가 단일 항목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농민의 평상시 수입으로는 자녀의 결혼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의 대출이 대개 고리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혼·상례 비용은 농민들에게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자녀들의 결혼비용을 위해 그것이 자신들의 일생의 의무인양 기꺼이 큰 빚을 감당했던 것이다.
사회학자 페이샤오퉁(費孝通)은 운남성 농촌을 현지조사 하면서 자녀의 혼인에 대한 농민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평상시에는 극단적으로 절약생활을 하는 한 소작농이 아들의 혼인준비를 위해서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마냥 아낌없이 지출하고, 이로 인해 많은 빚을 지게 되었는데도 얼굴은 인생의 목적을 다했다는 만족감으로 빛났다.” 이렇듯 중국의 부모들은 자녀의 혼인비용을 위해 기꺼이 빚을 졌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의 영향은 현재도 남아 부모세대는 여전히 자녀세대를 위해 결혼비용을 지불한다. 결혼비용은 차이리(彩禮), 혼수, 예물, 결혼예식, 피로연, 신혼여행 등의 직접비용과 신혼차, 신혼집, 가구, 가전, 신혼집 인테리어 등 간접비용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 차이리는 전통시기에 정혼을 하면 ‘납징(納徵)’이라 하여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혼인비용을 보내는 관습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이를 직접적으로 ‘신부대’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말로 하면 ‘예단’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차이리는 형편에 따라 다르기는 해도 그 액수가 상대적으로 큰 것이 특징이다. 이 관습은 지금도 행해지는 곳이 많고 액수도 점점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성향이 강한 농촌에서 중요한 관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차이리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동안의 신부 양육비나 노동력에 대한 보상으로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준다는 설과 부모세대가 자녀세대에게 주는 결혼 보조금이라는 설이 그것이다. 현재는 신부의 노동력을 보상한다는 전통적인 의미는 사라졌지만 부모세대가 자신의 독생자녀의 신혼가정을 위해 마련해주는 결혼 보조금의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다만 이러한 고비용의 전통시기 결혼식이 지금까지 중단없이 이어졌던 것은 아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1950년-60년대에는 사치스러운 차이리나 결혼 피로연은 봉건적인 것이라 하여 비난받았다. 사치스러운 예식도 금지되었다. 전통적인 관습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적어도 예식은 간소화되었고 신부의 혼수는 검소한 것들로 채워졌다. 중국 영화 <인생(活着)>을 보면 당시의 결혼식 장면이 등장한다. 신랑 신부는 전통 혼례복이 아닌 인민복 차림이고 가슴에 단 빨간 꽃장식과 리본만이 이들이 결혼 당사자임을 알게 한다. 여기서 클라이맥스는 가족사진을 찍는 모습이다. 그들의 손에는 작고 빨간 수첩(마오쩌둥어록)이 들려 있고, 마오쩌둥 사진을 배경으로 마치 뱃놀이라도 하듯 배 모형 앞에서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얼굴로 사진을 찍는 장면이다. 조촐한 예식이 끝나고 신랑은 신부를 자전거에 태워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이 모든 장면은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현실 비판과 풍자가 섞여 다소 우스꽝스럽게 희화화되었지만, 당시의 검소한 결혼식 모습을 꽤 인상적으로 표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풍조는 문화대혁명시기에도 여전히 유효했고 정부는 인민들에게 의례의 간소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가장 이상적인 신부의 혼수로 자전거, 시계, 재봉틀이 꼽혔으니 당시의 소박한 결혼식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림2. 영화 <인생(活着)> 중 결혼식 가족사진 촬영 장면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인민들의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자유로운 풍조가 만연되면서 결혼비용은 점차 증가했다. 이러한 경향은 도시에서부터 나타났다. 도시의 빠른 성장은 도시 청년들이 자신의 결혼에 더 많은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물질적 배경이 되었다. 더욱이 1980년대 도시에서 행해진 엄격한 한 자녀 정책 이후 각 가정은 하나뿐인 자녀를 위해 온갖 정성을 쏟고 이들이 결혼할 때가 되면 아낌없이 비용을 제공한다. 자녀들의 학력이 높아지면서 소비 수준과 능력이 높아진 것도 결혼비용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 하루가 다르게 올라버린 주택가격은 신혼집 마련을 위해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하게 한다. 이러한 경향은 도시뿐만이 아니다. 중국 농촌의 결혼비용도 점차 상승하여 가정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농촌경제의 성장에 따라 농민들도 고소비 결혼비용 지출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소비경향은 결혼 당사자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자녀의 혼인비용은 부모가 제공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관념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일부 부유층의 자식에 대한 물질적 사랑은 대륙의 스케일만큼이나 크다. 각종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남들과의 비교가 쉬워지면서 부모의 사회적 체면을 위해 결혼비용이 과다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이 결혼 준비과정에서 자신의 부를 과시할 수 있는 것으로 결혼 당일의 예식과 피로연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일반적인 결혼식도 대개 10개 이상의 테이블이 세팅되는 것이 보통이고 피로연 중에 신부는 한두 번 드레스를 갈아입는다. 전통의 꽃가마 대신 화려하게 꽃장식 된 신혼차량 렌트비용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이미 언급한 전통의 차이리 관습에다 서양으로부터 영향받은 사진 촬영, 신혼여행 등이 추가되면서 중국의 결혼비용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림3. 결혼 피로연의 테이블 세팅
한편, 과소비와 남에게 보여주기식 결혼 풍토가 만연되는 가운데 이를 반대하는 뤄훈(裸婚)족이 등장하여 눈길을 끈다. 이들은 전통적인 결혼 관념을 깨고 결혼은 물질이 아니라 서로 돕고 함께 노력하는 독립정신을 바탕으로 해야 함을 주장한다. 이들은 결혼반지만 나눠 갖거나 혼인신고만 하거나 혹은 선택적으로 혼인절차를 간소화하는 뤄훈을 선택한다. 그러나 통계에 의하면 정작 자신은 뤄훈 방식의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는 도시 청년들의 의견 또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어쩔 수 없이 뤄훈을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로 인한 상대적인 박탈감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튼 코로나19로 인해 이전과 같은 대규모 결혼식이나 피로연은 당분간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되면 중국인의 결혼비용도 다소 줄어들고 사치스러운 결혼식도 감소하지 않을까. 오히려 결혼 당사자를 중심으로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보는 자기 성찰의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중국문화오디세이 5】
손승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1) 『經濟統計』 4(1937), p.193, 嚴中平等編, 『中國近代經濟史統計資料選輯』, 科學出版社, p.344에 수록.
* 이 글은 2020년 4월 28일자 『국민일보』 (인터넷판)칼럼 [차이나 로그인]에 게재된 것을 수정한 것임.
** 이 글에서 사용한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 2는 https://youtu.be/IyzRpEMnv98 유튜브 화면에서 갈무리, 그림 1과 그림 3은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