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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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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대만 밀크티가 코로나 이후의 ‘경계’에 미치는 영향 _ 문경연

갑자기 웬 밀크티 이야기냐 의아해하시는 독자들이 계실지도 모른다. 두 차례의 글에서 꼭꼭 숨겨두었었지만 필자는 2018년부터 대만 밀크티(奶茶)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해오고 있다. 몇몇 지인들은 한국에서 대만의 간식이나 음료가 유행인데 그것을 연구하느냐고 되묻곤 한다. 한국에 돌아온 후 한국에서 대만 밀크티를 많이 마셨던 필자로서도 매우 관심있는 주제이긴 하지만, 이미 여러 미식전문가분들과 음료업체에서 더 멋진 평론을 쓰셨기 때문에 대만에서 먹는 밀크티가 종류도 다양하고 달지 않으며 더 싸다는 개인적 의견만을 지인들에게 전하곤 하였다.

 

밀크티란 홍차에 우유나 프림 혹은 우유가루 등을 섞은 음료를 말한다. 밀크티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영국, 인도, 중국에서 왔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음식평론가 윤덕노씨의 글 <밀크티에 숨은 별별역사>에 따르면1) 1650년대 북경에 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직원 유한 뉴호프(Nieuhof)는 만주귀족이 홍차 찻잎을 물에 넣고 끓인 후 소금 뿌린 따뜻한 우유를 채워 뜨겁게 마신다고 글을 남겼다고 한다. 이후 1670년 영국 런던의 차 무역상인 토마스 가웨이(Garway)의 책에 홍차에 우유를 섞으면 위장 장애를 막을 수 있다는 기록, 1680년 파리 사교계 마담 세비네(Sabliere)의 편지에서 마거리트 부인이 홍차에 우유를 넣어 마시니 특별한 맛이라고 했다는 기록 등 17세기 당시 유럽사람들이 홍차에 우유를 타 마셨던 이유는 홍차의 쓴맛과 떫은맛을 중화하여 부드럽게 마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는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홍차가 19세기 영국에서 대중화되면서 홍차와 우유 중 어느 것을 먼저 섞는지의 여부와 밀크티의 기원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후 영국식 밀크티는 섭씨 60도 정도 데운 우유에 홍차를 섞고 기호에 따라 설탕이나 잼 등을 넣어 마시게 되었다. 윤덕노 평론가에 따르면 귀족과 부유층은 홍차를 먼저 따른 후 우유를 조금 섞었던 반면, 서민들은 값싼 우유를 가득 채운 후 비싼 홍차를 따랐다고 한다. 반면 과학적으로는 홍차에 우유를 부으면 단백질 변성으로 특유의 냄새가 나고 홍차의 떫은 맛을 제어할 카제인이 변하면서 떫은 맛이 제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우유에 홍차를 붓는 편이 더 낫다고 한다. 우유가 먼저든 홍차가 먼저든 이 영국식 밀크티는 오후차의 습관과 함께 영연방국가와 식민지 등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 밀크티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진 홍콩식 밀크티이다. 홍콩식 밀크티는 이후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중국에서는 밀크티를 인도의 히말라야 지역, 중국의 티베트와 위구르 지역에서 제일 먼저 마신 기록이 있다고 본다2). 이들 지역에서 네팔, 부탄 등을 통해 스리랑카로, 중국 윈난, 안후이, 푸지엔 등으로 전해져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도의 남방과 북방은 차를 만드는 기술이 달랐다. 북방은 차를 "끓였고" 남방은 차를 두 컵을 번갈아 가며 "당기며" 만들어냈다. 이 인도의 남방 기법을 이용한 것이 인도식 밀크티로 널리 알려진 짜이다. 짜이는 손냄비에 찻잎과 우유, 시나몬, 카르다몸, 정향 등의 향신료인 마살라를 넣고 함께 끓인다. 이 인도의 짜이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일본이 본국으로 가지고 들어가 개량했다는 것이다. 대만의 경우 1624~1662년 네덜란드 식민지였을 때 네덜란드 사람들이 대만의 차잎을 사가면서 밀크티를 가지고 들어왔다는 설, 그리고 1895~1945년 일본 통치시기3)에 인도의 아삼티와 일본의 녹차기술이 도입되면서 차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인도의 당기는차기법은 태국과 말레이시아에도 영향을 주었다. 말레이시아에는 테 타릭(Teh Tarik)이라는 밀크티가 있다. 여기서 Teh()는 민남어로 차를 의미하며, Tarik은 말레이어로 '당기다'는 의미를 갖는다. 홍차와 연유를 주재료로 하여 유리컵과 스탠용기를 잡고 번갈아가며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며 섞는다. 지금은 말레이시아나 싱가폴의 일반 음식점에서 볼 수 있다. 태국에서는 원래 얼린 밀크티를 먹는 습관이 있었는데 아삼홍차가 인도에서 전래되며 둘을 합쳐 귤색의 태국 밀크티(차 옌)를 만들어냈다. 1910년부터 시작하여 2차대전때 유행하며 전국으로 퍼졌다. 타이 티 믹스를 사용하여 홍차를 먼저 끓여낸 다음 연유를 넣고 기호에 따라 우유나 두유, 시럽을 넣으며 차갑게 마시는 것이 특징이다.

 

홍콩에서도 영국의 오후차의 습관이 영향을 미쳤지만 바쁜 홍콩의 일정상 오후에 차를 마시는 것은 어렵게 되었다. 밀크티가 대중화가 되면서 여러 종류의 찻잎을 우려낸 후 뜨거운 찻물을 걸러내는 작업을 반복한 후 무가당 연유를 혼합해 마시는 쓰와나이차(絲襪奶茶, Silk stocking milk tea)와 밀크티와 커피를 같은 비율로 섞은 밀크티커피인 위안양(鴛鴦)이 생겼다. 이렇게 다양한 밀크티의 역사와 종류는 아래 그림에서 재밌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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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대만의 사이트 10 Seconds Class에서 표현한 세계의 밀크티 지도4)

 

1980년대 대만에서는 버블밀크티(珍珠奶茶)라는 밀크티의 새로운 종류를 발명해낸다. 이응철(2018)5) 따르면 버블밀크티는 1985 타이중의 춘수이탕(春水堂) 점원이 대만의 얼음간식에 쓰이던 타피오카를 밀크티에 넣었다는 , 1986 타이난의 찻집(翰林茶館)에서 만들어졌다는 등이 있다. 버블밀크티는 당시 유행하던 거품아이스(泡沫)방식과 결합하여 대만 특유의 밀크티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후 대중화되어 춘수이탕, 공차(貢茶), 천인명차(天仁茗茶), 이팡(一芳) 등의 대만밀크티 브랜드가 만들어졌으며 1990년대 홍콩을 시작으로 중국대륙, 일본, 한국 등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2003년에 설립된 밀크티와 솔트커피, 빵을 함께 파는 브랜드 85도씨(85C) 2018 8월까지 대만은 물론 중국, 미국, 호주, 홍콩 1092개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중국지점이 589개로 수입의 64% 차지했다. 특히 샤먼이나 취안저우 대만과 가까운 푸지엔성에서는 대만의 밀크티 브랜드들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러던 2018 8 12 대만 차이잉원 총통이 중남미 순방길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85도씨 가맹점에서 커피를 마신 것이 불씨가 되어 중국에서 85도씨 불매운동이 일어나게 되었. 며칠 85도씨는 <92공식: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각각 표현한다> 인정한다고 성명을 발표하였지만 85도씨는 <대만독립을 인정하는 기업>으로 낙인찍혔고, 매출은 시가총액 1300억원이 증발해버렸다.

 

2019년에도 중국대륙과 홍콩에서 인기있는 밀크티 브랜드 이팡(一芳) 홍콩 가맹점이 홍콩 시위를 지지하며 파업에 동참하자 중국 내에서 불매운동이 벌어. 결국 이팡은 일국양제에 지지하며 파업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냈지만 불매운동은 계속되었다. 이팡의 성명은 대만과 홍콩에서는 이팡이 굴복했다는 비난을 받았고, 중국에서도 전만큼의 인기를 회복할 수는 없었다.

 

2020중국의 대만 밀크티 브랜드들은 코로나19 인한 양안교류가 잠시 단절되면서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된다. 밀크티의 열풍은 85도씨의 상하이공장이 지난 4 23 다시 문을 열게 되면서, 그리고 밀크티동맹(#MilkTeaAlliance)이라는 온라인 운동으로 새로운 국면을 . 밀크티동맹이란 앞서 언급 밀크티를 즐겨 마시는 태국, 대만, 홍콩의 네티즌들의 연대를 의미한다. 이 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지난 3 태국의 유명모델인 위라야 수카람이 SNS에서 "우한 연구소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유출될 수도 있다" 글을 공유했고, 또한 중국 네티즌들이 과거에 수카람과 그의 연인이 대만과 홍콩을 국가로 분류한 게시물에 동조했다는 것을 찾게 되면서 수카람에 대한 비난이 거세졌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중시하는 중국 네티즌들이 수카람에게 격분한 것이다. 자국의 인기스타가 공격을 받자 태국 네티즌들도, 싸움의 소재가 대만과 홍콩 네티즌들도 연대해서 밀크티 맹을 만들었다. 홍차에 우유를 즐겨먹는 세 곳의 공통점이 있으니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 온라인 논쟁에 대해 중국과 태국의 대사관이 중재 중에 있지만 여전히 온라인의 불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반면, 코로나19가 안정된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중국은 양안관계에서도 다시 손을 내밀고 있다. 불매운동을 벌였던 85도씨도 다시 문을 열고 있으며, 샤먼에 남은 대만 상인들도 점점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423일 대만 코로나대응 정부방역대책본부는 양안직항간 항공편을 계속 중단하기로 하면서 대만으로 돌아간 대만 상인들의 발은 다시 묶였다. 429일이면 항공편이 지속되리라 생각했던 대만 상인들은 다시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중국의 대만 밀크티 브랜드의 맛은 이 기다림 속에서 대만산 재료를 기다리며 점차 대만의 맛과는 약간씩 달라지고 있었다. 이렇게 밀크티의 사례를 통해서 보듯 코로나 19는 경계를 강화하기도 하면서, 또다른 경계와 연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코로나 19의 경로를 예측하기 힘든 것처럼 이 변화의 움직임 역시 예측하기 쉽지 않다. 아마 변하지 않는 것은 밀크티를 즐겨마시는 사람들뿐이지 않을까? 그러나 그 취향도 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아시아의 보물섬, 대만 3


문경연 _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 이 글에서 사용한 출처는 다음과 같음


1) https://www.spcmagazine.com/together2_190624

2) https://zhuanlan.zhihu.com/p/28366700

3) 일본은 인도의 짜이를 변형하여 로열 밀크티라는 이름을 붙였다. 로열이라는 뜻은 일반적인 밀크티에 비해 우유가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붙여졌다. 로열밀크티는 홍차와 우유의 비율이 1:1로 홍차를 진하게 우리면서 우유를 같이 넣고 끓여 만들어낸다. 이후에는 물처럼 생겼으나 밀크티 맛을 내는 투명한 밀크티도 개발했다.

4) 그림 1 출처 : https://www.facebook.com/10secondsclass/posts/2344103005669861

5) 이응철 2018. “관광 자원이 된 제당공장”. 『아태연구』, 25(4): 255-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