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베트남은 근대 들어 일본과 프랑스의 식민지로 각각 전락하면서 양국 거주 화교는 식민지 정부의 통치를 받게 된다. 일본이 조선을 ‘보호국’으로 만든 을사늑약이 맺어진 것은 1905년, 한일강제병합이 이뤄진 것은 1910년이었다. 프랑스가 베트남의 코친차이나(交趾支那, 베트남 남부) 지역을 점령한 것은 1862년, 안남(安南, 베트남 중부) 지역과 통킹(東京, 베트남 북부) 지역을 점령한 것은 1883년이었다. 베트남 점령을 전후하여 프랑스는 1863년에 캄보디아(柬埔寨), 1893년에 라오스(老撾)를 각각 점령했다. 프랑스는 이들 점령지를 통합하여 인도차이나연방을 조직하여 통치를 시작한 것은 1890년대 들어서였다. 베트남이 조선보다 더 빠른 시기에 식민통치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림 1. 프랑스 통치하의 인도차이나 화교 분포도
조선총독부는 매년 12월 말 기준으로 조선인, 일본인, 중국인(화교), 서양인 등으로 구분하여 인구 조사를 기록하고 이를 『조선총독부통계연보』의 형태로 발행했다. 따라서 화교인구는 이 연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930년 10월에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국세조사』를 실시했는데, 이 조사는 화교에 대해서도 조선인, 일본인에 준하여 철저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화교의 인구와 직업 관련하여 상세한 통계 자료를 얻을 수 있다. 프랑스 인도차이나연방정부가 연방 거주 화교에 대해 처음으로 인구 조사를 실시한 것은 1921년, 코친차이나 거주 화교에 국한해서는 1889년부터 인구 조사가 이뤄졌다. 1889년 코친차이나 거주 화교인구는 56,000명이었다.
1921년의 인도차이나연방 거주 화교 인구는 293,000명, 1931년은 418,000명으로 1920년대에 43%나 급증했다. 조선화교의 인구는 1921년 24,695명에서 1930년에는 67,794명으로 175% 급증했다. 1920년대는 전세계 화교인구가 증가하는 시기이지만, 인도차이나연방과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인도차이나연방 화교의 각 지역별 분포를 1936년 통계로 살펴보자. 안남 11,000명(3.4%), 코친차이나 171,000명(52.5%), 통킹 35,000명(10.7%), 라오스 3,000명(0.9%), 캄보디아 106,000명(32.5%)이었다. 코친차이나, 안남, 통킹을 포함한 현재의 베트남 거주 화교는 217,000명으로 인도차이나연방 화교 총수의 67%를 차지했다. 그 다음은 캄보디아, 라오스 순이었다.
그리고 베트남 지역 거주 화교의 지역별 분포는 코친차이나가 전체의 79%, 통킹이 16%, 안남이 5%를 각각 차지했다. 베트남의 남부지역이라 할 수 있는 코친차이나 지역에 전체의 8할이 집중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베트남 화교인구가 베트남 지역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1%로 상당히 낮았다.
그런데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은 인도차이나연방정부는 2월호 웹진에서 다룬 명향(明鄕)을 화교와 구분하여 통계로 집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명향은 코친차이나 지역에 63,000명(85.1%), 통킹 11,000명(14.9%)으로 총 74,000명이 거주, 전체 인구의 0.4%를 차지했다. 이들을 화인으로 구분한다면 1936년 시점에서 베트남의 화교·화인 인구는 총 291,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했다. 참고로 통치자인 프랑스인을 비롯한 서양인은 39,500명으로 전체 인구의 0.2%에 불과했다.
조선화교는 1930년 10월 실시된 『국세조사』를 근거로 살펴보자. 11월경 중국으로 귀국하는 화교노동자가 통계에 포함된 결과, 『조선총독부통계연보』 보다는 많은 91,783명으로 전체 인구의 0.4%를 차지했다. 그리고 화교의 거주지는 남한지역이 전체의 약 3할, 북한지역이 전체의 약 7할을 차지했다. 베트남은 남부인 코친차이나가 전체의 8할을 차지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조선을 식민통치하는 일본인의 인구는 52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5%나 차지했다. 프랑스가 인도차이나의 광활한 지역을 간접통치한 반면, 일본은 조선을 직접통치한 것을 통치자 인구로도 파악할 수 있다.
그림 2. 1940년경 베트남 북부의 남딘시(南定市) 차이나타운
베트남과 조선의 전체 인구는 거의 비슷했다. 1936년 베트남의 인구는 약 1,897만명, 1930년 조선의 인구는 약 2,100만명이었다. 원주민인 베트남인의 인구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인구의 86.8%를 차지한 반면, 조선인의 인구는 약 2,043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97%라고 하는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베트남에는 화교·화인 이외의 소수민족이 다수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이족은 690,000명, 인도네시아족은 716,000명이 거주하여 두 민족은 전체 인구에서 9%를 차지했다. 타이족은 통킹 지역, 인도네시아족은 안남에 대부분 거주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여러 소수민족이 존재했는데 인구는 매우 적었다. 현재 베트남 정부가 공식 인정하고 있는 소수민족은 53개 민족에 달한다.
【한반도화교와 베트남화교 마주보기 2】
이정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참고문헌
朝鮮總督府(1934), 『昭和五年 朝鮮國勢調査報告 全鮮編 第一卷 結果表』, 朝鮮總督府.
逸見重雄(1941), 『佛領印度支那硏究』, 日本評論社.
太平洋協會編(1940), 『佛領印度支那:政治·經濟』, 河出書房.
이정희(2018), 『한반도화교사』, 동아시아.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 1. 太平洋協會編, 『佛領印度支那:政治·經濟』, 河出書房,1940년, 431쪽에 수록되어 있음
그림 2. 逸見重雄, 『佛領印度支那硏究』, 日本評論社, 19741년, 부록에 수록되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