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2월 26일 현재, 중국의 확진자는 8만 명에 다가서고 있으며 사망자도 3천 명에 육박하고 있다. 우리도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되면서 확진자가 천 명을 넘어서고 있다. 중국에서 감염의 확산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아직 전환점에 이르렀다고 확신하기에는 이르다. 사태가 지속되면서 보도의 중점이 병리학적인 감염에서 정치적,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었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대처에 대한 비판이 들끓고, 궁극적으로 시진핑 주석의 장기 집권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도 경쟁에 내몰린 미디어들이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는 일정 정도 사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지인들이 대부분 학계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분히 편향된 샘플일 수 있지만, SNS(사회관계망 서비스) 등으로 파악되는 중국의 최근 여론은 권위주의 체제에서 이제까지 강고하게 유지되었던 선을 조금씩 넘어서고 있다. 당국이 정보를 은폐하면서 감염이 확산된 과정과 이에 대한 비판들이 거침없이 게시되고 있다. 특히 바이러스 확산을 처음으로 알렸던 의사 리원량(李文亮)이 사망하면서 이는 정보 통제에 대한 비판과 언론 자유에 대한 요구로 폭발하고 있다.
선을 넘은 사례를 하나만 살펴보자. 2월 9일, 우한시 공산당 당서기 마궈창(馬國強)이 우한시 전체 3,371개 지역에서 전체 가구의 98.6%, 전체 인구의 99%에 대한 감염 조사를 완료했으며, 8일까지 입원하지 못했던 1,499명의 환자 전부를 당일 모두 입원시켰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내가 98.6%가 아닌, 우한에 거주하는 나머지 1.4%라고 밝히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심지어 발표와 달리 자신의 부모는 중증임에도 입원하지 못했다며, 주소와 전화번호를 밝히고 당장 긴박한 요구사항까지 적은 우한 시민들도 있었다. 신분까지 밝히면서 정부의 발표가 얼마나 사실과 동떨어졌는지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이러한 모습은 이번 감염 사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유언비어(謠言)'에 대한 강력한 조치들과 정부를 비판하는 수많은 내용들이 SNS에서 순식간에 삭제되는 걸 보면, 당연히 중국 당국도 민심 이반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사회적으로 정말 중요한 것은 사실과 진실이 아닐 수 있다. 문화 비평이나 심리학은 때때로 '사실적 진실(factual truth)'과 '감정적 진실(emotional truth)'을 구분한다. 사실적 진실이 말 그대로 현실 세계에서 발생한 사실이자 진실이라면, 감정적 진실은 사람들이 믿고자 하는 바람에 가깝다. 정치적, 이념적 대결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날조하는 거짓 선동이나 소비를 위해 조장하는 산타클로스, 요정 같은 문화적 창조물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조선의 정조가 암살되었다는 주장은 사실적 진실이 되기 위한 역사적 근거가 부족할지 모르지만, 하나의 감정적 진실로서 개혁에 대한 열망과 기득권에 대한 분노가 투영된 것이다.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군산복합체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미국의 대표적인 음모론도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금권을 통제해야 한다는 보통 미국인들의 바람이 반영된 감정적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감정'과 '사실'의 조합은 앞뒤가 맞지 않는 형용 모순이다. 그러나 사소한 내용이 사실과 다르거나 심지어 사실과 정반대일지라도 이것이 그 뒤에 숨겨진 다수의 진실한 바람을 드러내거나 다수의 정치적 힘을 통해 현실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진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현재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된 중국의 여론도 시민들의 감정적 진실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사스(SARS)가 중국을 휩쓸었던 2003년과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2020년의 대응이 차이가 없다는 비판은 중국 당국에게는 사실적 진실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는 17년 전처럼 불리한 정보의 유통을 막거나 여론과 언론을 통제하지 않아야 한다는 감정적 진실이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근거가 부족해 보이는 '유언비어'는 더 많은 자유가 보장되고 정치 권력이 시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일하기를 바라는 감정적 진실일 수 있다.
감정적 진실 속에 숨겨진 바람이 현실화되거나 구체적이고 명확한 사실과 이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감정적 진실은 사라진다. 더 많은 자유와 권리가 보장된다면, 코로나 바이러스 속에 숨겨진 감정적 진실 또는 '유언비어'는 힘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사태가 수습되고 나면, 아마도 공산당의 절대적인 영도라는 사실적 진실을 더욱 밀어붙여 감정적 진실을 억누를 듯하다. 어느 쪽이든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에게 예상치 못한 커다란 도전과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조형진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은 2020년 2월 11일 국민일보 인터넷판 [차이나로그인]에 게재된 동명의 칼럼을 일부 수정한 것임.
* 이 글에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