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낯선 것을 접할 때 불안해한다. 거기에 그 낯선 것이 인명을 해치는 전염병인 경우 그 불안은 증폭되어 공포가 된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유행은 그러한 공포를 확산시키는 여러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언론 보도자료를 종합해 보면 중국 우한에서 최초의 환자가 확인된 것은 2019년 12월 1일 전후였다. 그러나 중국 당국의 대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당국은 이미 100여명의 환자가 발생하여 전염병 확산의 위험을 예견할 수 있는 12월 중순의 상황 속에서도 우한의 전통적인 춘절 축하행사인 “만가연(萬家宴)”을 개최하였고, 여기에는 4만여 가정이 참여하여 14,000여종에 가까운 음식을 만들고 축제를 즐겼다. 이어서 춘절 직전에는 대규모 공연행사까지 개최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를 통제하기까지 하였다. 이런 우한 시당국의 행태는 불안을 공포로 증폭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시당국의 전염병에 대한 설명이 계속 바뀌면서 당국에 대한 신뢰를 유지할 수 없게 되고, 수많은 유언비어가 중국을 휩쓸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중국 국가는 우한 시민을 통제할 수 없었다.
사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은 낯선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2002년에 발생했던 급성호흡기 증후군(SARS)이나 2009년의 신종플루, 2012년의 메르스 등의 사례에서 전염병에 대한 초기 대응의 중요성을 충분히 경험했던 바가 이미 있었으므로 중국 정부는 그에 대한 대응체제를 작동시킬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사스의 경우에서처럼 중국정부의 무능을 폭로하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었다. 우한 시장의 실토에서 나타나 있는 권력의 중앙집중과 현장에서 유리된 의사결정 시스템은 중국에서 관료화의 문제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드러낸다. 모든 것을 당이 결정하는 중국에서 우한시장은 당에 보고를 하고 공개해도 되는지 결재를 받아야 했던 현실을 기자회견에서 암시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시진핑은 지난해 말에 발표한 신년사에서 질적 성장이 안정적으로 추진되어 GDP가 1인당 1만 달러 수준에 돌입했고, 전국의 340개 빈곤지역과 1000여만 명을 빈곤에서 탈출시켰다고 보고하고 군사적 성장 그리고 당의 역사회고 등을 통하여 중국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표현했다. 미국과의 무역분쟁을 어떤 형식으로든 마무리하고, “샤오캉(小康) 사회의 전면건설”과 “전원 빈곤탈출”을 실현하는 원년으로 2020년을 장식하고자 했던 시진핑에게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는 정말 불쾌한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현실은 시진핑이 생각하는 것처럼 낙관적 전망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그림 1. Global Health Security Index.
미국의 존스홉킨스 대학이 발표하는 <세계건강안전지수Global Health Security Index>에 따르면 중국은 베트남 바로 다음인 51위에 위치하고 있었다(한국은 덴마크 다음의 9위로 아시아에서는 6위인 태국 다음의 순위). 달에 인공위성을 보내는 국가로서는 매우 이상한 위치라고 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이 화려하게 묘사하는 중국의 현실과는 달리, 의료부문 특히 기층 의료서비스 부문의 문제는 번영하는 중국의 아픈 진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난해 말, 북경의 한 병원에서 의사가 공격을 받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병원에서 의료인들을 대상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문제를 사회적 논란의 전면에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의료인들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지난 10년 동안 중국의 병원에서 환자나 환자 가족의 공격을 받아 24명의 의료인이 사망했고, 362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실 이러한 자료는 언론에 보도된 것만을 집계한 것인 만큼 알려지지 않은 것을 포함하면 더 많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료인에 대한 환자나 환자 보호자들의 폭력이 언론과 당국의 주목을 받았음에 비해 그러한 대립과 갈등을 촉발시킨 의료인들의 노동 상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실제로도 한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2013년 이래 7년 동안 의료 노동자들의 쟁의행위 117건 가운데 일터에서의 안전문제가 원인이 된 것은 6건에 불과했다. 노동쟁의가 발생한 상당수의 경우, 문제가 되었던 것은 주로 임금체불, 사회보험 등 고용주의 의무 불이행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실제 의료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당사자들에게 심각한 문제는 폭력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중국에서 지역 의료기관의 대부분이 공공기관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운영주체가 지방정부인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상황은 현상적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헤이룽장 성의 한 지역에서는 100명이 넘는 의사들이 임금체불 등을 이유로 일시에 사임함으로써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구이저우 성, 후난 성에서도 특정지역에서 각각 22명, 64명의 의사들이 한꺼번에 병원을 떠나는 등 3개의 지역에서 200여명의 의사들이 자신의 일터에서 이탈하는 일들이 발생했다. 대도시의 상급 의료체계는 어느 정도 갖추어지게 되었으나 하위 행정기관이 관리하는 기층의료체계에는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의 핵심에는 돈 문제 즉 재정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의 도입 이후, 재정이 열악한 지역에서는 보건의료부문 등 눈에 드러나지 않는 부문에 대해 지원할 수 있는 재정적 여력을 갖기 어려웠고, 그것이 심각한 의료공백 지역을 출현시키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중요하지만 평소에 주목받기 어려웠던 교육영역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발생시켰다. 2019년 5월 21일 쓰촨성의 한 지역에서는 200여명의 초중등 교사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였다. 이 경우도 기본적으로는 지방정부의 재정문제와 연관되어 있었다. 개혁개방 이후 급속하게 추진된 재정체제의 개혁과정에서 지방정부들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보건의료부분 등을 뒤에 위치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지금 그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2019년 12월 28일에 <기본 의료위생 및 건강촉진법(基本醫療衛生與健康促進法)>을 제정하여 의료부문에서의 심각한 상황전개에 대처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2020년 6월 1일부터 시행하게 된 이 법은 실질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재정을 마련하고 투입할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서 실제 성과는 두고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봉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업무량은 폭증하는 상황 속에서 환자와 의료인 사이의 갈등은 또 다른 폭력사태를 유발할 수 있을 것이며, 전염병의 확산을 1차적으로 저지해야할 최전선의 전사들을 무력화시키게 될 것이다.
외면을 장식하고, 성장의 과실을 화려하게 포장하는 것은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선호하는 일일 것이다. 또한 중국공산당이 중국의 기층의료체계가 가진 문제점을 모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시민의 안전(Human Security)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공산당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불안을 증폭시켜 공포를 조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 중국 정치체제의 위기는 더욱더 빨리 현실의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진핑의 신년사에서 사용한 표현처럼, “강물은 쉬지 않고 흐르고, 바람도 거세졌다 잠잠했다”하는 것처럼, 이번 사태도 그렇게 역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비바람도 두렵지 않고, 위기도 무섭지 않다”는 다짐이 공산당의 외로운 외침이 아니라 중국 국민이 공유하는 가치가 될 수 있기 위해서는 화려하게 외면을 장식하는 정치체제가 아니라 국민의 삶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정치체제를 만들어나가는 근본적 개혁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김태승의 六十五非 16】
김태승 _ 아주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 이 글에서 사용된 노동쟁의 사례는 中國勞工通訊(clb.org.hk)에서 인용한 것임.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 1. https://www.ghsindex.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