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M&A 시장에서 중국자본이 큰 손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낙후한 국내 경제상황으로 적극적 외자유치와 해외투자 억제 정책을 동시에 실시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해외진출(走出去)전략 수립과 함께 해외투자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정책기조가 변경되었다. 이후 각종 투자제도의 개선과 정부지원, 경제성장 등으로 중국의 해외투자는 2016년까지 16년 연속 증가세를 보였고, 투자지역, 대상, 규모 등도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런데 2017년 중국의 해외직접투자 증가세가 처음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그 원인으로는 대내외 경제성장 둔화, 지정학적 불확실성 증대 등이 꼽히지만, 중국이 더 우려하는 것은 중국의 최대 해외투자처인 미국과 EU의 투자 장벽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특히 EU의 경우 해외투자유입에 대해 전통적으로 ‘개방성’을 중요시 해왔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비EU 국가, 특히 중국의 EU 자산 취득 확대로 인해 국가안보 위협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미국의 외국인투자승인위원회(CFIUS)와 같은 외국인 투자심사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결국 2017년 EU 의회는 제3국의 EU 역내 전략분야로의 투자를 심사하는 ‘FDI(외국인직접투자) Screening system’ 도입안을 상정하여 2019년 4월 발효시켰고, 올해 10월 EU 전역에 걸쳐 적용될 예정이다.
EU 회원국들 사이에서 EU 차원의 FDI 규제를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바로 독일기업 KUKA가 중국기업에 인수되면서이다. 2016년 5월, 120년 역사를 가진 로봇 및 자동화, 스마트 팩토리 부분 세계 2위 업체인 독일의 KUKA가 중국 가전업체 Midea에 인수되었다. 독일에서 사상 최대의 FDI로 기록된 당해 인수건으로 Midea는 기술력과 경쟁력을 확보하여 선진국 위주의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 기술격차를 해소하고, 나아가 중국 제조업의 스마트화를 앞당겨 세계 시장에서 우위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은 당시 독일 법령에 근거하여 비EU 회원국의 에너지나 방위 산업과 같은 전략적 인프라 산업에 대한 인수를 제한할 수 있었으나 KUKA건은 이에 해당되지 않았으며, EU의 디지털 경제 및 사회 위원장인 외팅거 등이 EU기업들에게 백기사로 나서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실패하면서 KUKA는 결국 Midea품에 안기게 되었다.
독일은 KUKA사건 이후 국내법 개정을 통해 정부의 심사권한과 범위를 확대하여 2018년 8월 세계 최고 수준의 금속 성형용 기계 제조회사인 독일 Leifeld Metal Spinning에 대한 중국 Yantai Taihai Group의 인수 제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독일 정부 최초의 거부권 행사이며, 민감한 기술 분야에 대한 중국의 인수 시도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시그널이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투자의 개방성과 기업 활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정부 개입을 최소화했던 유럽국가들마저도 해외투자에 대한 정부 개입을 강화하는 추세로 돌아서면서 전 세계에 보호주의가 한 층 더 확산되는 분위기이다. UNCTAD의 보고에 따르면, 2018년도에 전 세계 55개의 국가 및 경제권이 약 112건의 외국인투자 관련 조치를 내놨고, 그 중 1/3이 새롭게 발표된 제한 또는 규제조치이며, 이는 지난 20년 이래 최대치라고 밝혔다. 해당 규제들의 대상은 주로 국가안보와 관련된 중요 인프라, 핵심기술 또는 기타 민감 자산에 대한 투자이며, 약 22건의 M&A가 이 같은 규제 또는 정치적 이유로 철회되거나 불허되었는데, 이는 전년대비 2배 증가한 수치다.
한국의 경우, 과거 경제위기 시 IMF 구제금융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그리고 미국, 유럽 등 거대 선진국들과의 FTA 체결 등으로 외국인투자정책이 자유화 방향으로 확대되어왔다. 특히 중국과는 FTA, APTA, RCEP 등 다수의 협력기제가 정부차원에서 포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분야별·사업별 협력을 추진하는 EU보다 효과적으로 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한국기업들도 중국의 기술력 상승으로 인해 협력 시너지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고, 광활한 시장과 거대자본, 국내 인수합병에 대한 규제를 회피할 수 있다는 이점, 그리고 최근에는 해외투자유입 급감으로 중국자본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지난해 국내 1위 스테인리스 파이프 제조사인 길산그룹이 중국 청산강철과 합작하여 부산에 스테인리스 냉연공장을 설립하기로 한 사례 역시 그러한 경향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투자의향서가 부산시에 제출되면서 국내 철강 업계와 금속노조 등이 국내 스테인리스강 산업을 고사시키는 무분별한 외자 유치라면서 반발했고, 그 사이 청산강철과 길산그룹이 맺은 투자 MOU 효력이 끝나면서 외견상으로는 무산된 상태이다. 그러나 합작사는 여전히 투자의지를 보이고 있어 그 결과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한국의 경우 외국인투자에 대한 개방에 정책적 우선순위를 두고 있고, 국내시장과 자원의 한계로 인해 외국인투자 제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철강산업이 국가 주요 기간산업임에도 불구하고 부산시가 투자의향서에 대해 적극적으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국가 최고의 정책목표인 국가안보의 개념이 넓어지고, 기술과 산업이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익에 위협이 되거나 유해한 외국자본의 접근에 대한 국가의 대응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물론 강대국처럼 포괄적이고 중국자본을 의식한 조치들을 포함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투자자의 적격성에 대한 심사기준을 강화하는 문제나 기반시설과 핵심기술(또는 산업) 범위 확대, 안보개념의 확장,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평가 기준 강화, 외국인투자위원회의 전문성과 독립성 강화 등에 대해 한국도 고민하고 논의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신지연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상임연구원
* 이 글은 2020년 1월21일자 『국민일보』(인터넷판) 칼럼 [차이나로그인]에 실린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임.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