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부터 새롭게 【이미지 중국】을 연재합니다. 중국과 관련된 사진이나 포스터, 만화 등 이미지를 소개하고 그 속에 담긴 현상 혹은 그 의미를 분석하고자 합니다. 사진은 주로 필자들이 직접 촬영한 것으로, 우리가 놓치기 쉬운 중국의 이모저모를 전문가의 친절한 시선으로 안내해드립니다. 중국을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중국의 구석구석을 가볍게 여행하듯이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편집자주) |
'얼런좐(二人轉)'은 중국의 만담, 노래, 기악, 춤, 묘기 등으로 구성된 종합 공연극이다. 원래 두 명의 만담꾼이 재치있게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웃음을 주는 형식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말로 하면 2인극쯤 된다. 얼런좐은 동북지역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동북지역의 발전은 얼런좐의 발전과 궤를 같이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얼런좐은 동북사회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동북지역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걸쳐 형성된 이민사회이다. 사람들의 이주는 그 이전부터 있어 왔지만, 특히 한족의 이민을 막아왔던 봉금이 해제되고 철도가 부설되면서 이민은 봇물 터지듯 밀려들었다. “관동(關東)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촹관동(闖關東)'이 동북 이민을 가리키는 말이 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동북 이민은 중국 내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산동이나 화북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지만 전국 각지에서도 몰려들었다. 철도의 부설과 이민의 증가는 동북사회를 급속하게 성장시켰다. 이는 동북사회가 중국 내지와는 다른 특유의 사회경제 구조를 형성하게 했던 이유가 되었다. 얼런좐은 바로 이러한 이민의 역사 속에서 탄생했다. 얼런좐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에 의해 각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던 각종 만담이 구전되면서 형성되었다. 따라서 그 내용은 상당히 다양하다. 동북문화의 포용성과 복합성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얼런좐의 탄생은 동북의 자연환경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동북지역의 겨울은 길고 냉혹했다. 겨울이 되면 도로도 밭도 하천도 모두 얼어버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긴 농한기에 들어가야 했다. 농민들은 길고 긴 추위를 달래기 위해 삼삼오오 군불을 지핀 따뜻한 방안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로 소일했다. 그러다 누군가 한마디 툭 던지면 다른 사람이 이를 이어받아 재담을 펼쳤던 것이 얼런좐의 시작이었다. 얼럴좐은 동북지역의 열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긴 겨울을 견디면서 나름의 해학과 풍자를 담아낸 일종의 만담 풍습이다. 얼런좐은 그렇게 약 200여 년 전 동북지역 농민들의 고단한 삶에 위안을 주었다. 말하자면 얼런좐은 이민사회 그리고 동북의 겨울이 만들어낸 북방 특유의 민간문화라고 할 수 있다.
얼런좐은 동북 민간의 가무창극예술이라는 의미에서 뻥뻥쥐(蹦蹦劇)로 불리다가, 1953년 길림성으로부터 얼런좐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현재는 노래, 기악, 춤, 묘기가 결합된 종합예술 장르로 자리 잡았다. 얼런좐을 동북의 지역 문화예술에서 전국적인 종합예술로 승화시킨 것은 자오번산(趙本山)의 공이 컸다. 지금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유명한 얼런좐 배우이다. 얼런좐을 확산시키고 대중화하는 데는 화평대극장(和平大劇院)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장춘에만도 여러 개의 얼런좐 상설 극장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화평대극장이다. 화평대극장은 1997년 창건되어 지금도 여전히 얼런좐 공연으로 사랑받고 있다. 아래 사진이 바로 화평대극장의 모습이다.
그림 1. 화평대극장의 정면
그림 2. 화평대극장의 간판
그림 3. 화평대극장 객석
얼런좐은 현재 동북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중국의 문화브랜드가 되었다. 심지어는 중국 정부가 나서서 얼런좐의 해외수출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통 만담극에서 시작해서 현재는 전국적인 민간 종합예술로서 인정받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 문화브랜드 세계화의 한 부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만담의 내용이 저속하고 외설적이며 퇴폐적으로 변질되어 관객들로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막이 오르면 남녀 각각 한 명씩 나와 연기하는 얼런좐의 일문일답 쇼에는 상스럽고 외설적인 몸 동작과 욕설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필자는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는데, 중국인들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방언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동북지역의 역사와 자연환경이 맞물려 빚어낸 얼런좐. 얼런좐이 국가의 문화브랜드로 포장되기 이전에, 200년 전 동북 이민사회의 고단함을 달래주던 농민들의 문화로서 원형 그대로 소중히 보존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 4. 얼런좐 공연 모습
그림 5. 얼런좐 공연 모습
【이미지 중국 1】
손승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 이 글에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직접 촬영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