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로에서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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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애국주의적 영화 해석 유감 _ 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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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 중국 교육부에서는 39차 전국초중등학생에게 추천하는 우수 영화 목록(39批向全國中小學生推薦優秀影篇篇目)’(이하 목록’)을 발표했다. ·중등학생에게 추천하는 영화, 중학생에게 추천하는 영화, 초등학생에게 추천하는 영화 등 세 부문에 총 14편의 영화가 선정됐다. 어린 학생들에게 추천하는 영화인 만큼, 감동과 교훈을 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예를 들어 엄마, 정말 대단해요(媽媽,你眞棒)는 교내 안전을 주제로 하는 캠페인성 영화이고, 열화영웅(烈火英雄)2010716일 다롄(大連)에서 일어난 송유관 폭발사고에서 활약한 소방대원을, 천모(天慕)는 칭장도로(靑藏公路) 건설의 영웅 무성중(慕生忠) 장군을 각각 소재로 하고 있다. ‘일대일로의 영향인지 서부 신장(新疆) 지역을 배경으로 한 영화도 두 편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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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중국 교육부 사이트, '제39차 전국 초중등학생에게 추천하는 우수 영화 목록'에 관한 통지 


목록에 열거된 14편의 영화 가운데 한 편이 눈길을 끄는데, 그것은 영화들 가운데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오락영화로서 흥행에 성공한 유랑지구(流浪地球). 태양계가 소멸되어가는 먼 미래, 중국의 소년, 소녀가 다른 나라 지원군과 힘을 합쳐 지구와 목성의 충돌을 막아내는 스토리로 음력 설 연휴 중국극장가를 휩쓸었다. 줄거리를 보면 학생들에게 추천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지만, 다른 영화들이 워낙 현실에 밀착된 내용이고 보니 제목에서부터 비현실적 상상력이 드러나는 SF영화 유랑지구는 모종의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

 

목록에서는 선정 영화의 제목과 제작사만 밝히고 있을 뿐, 선정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유랑지구가 목록에 포함된 이유나 배경은 알 수 없다. 다만, 영화의 성공 이후 뒤따른 다양한 반응을 통해 추측해볼 수 있을 듯하다.

 

유랑지구의 등장에 대해 중국 내에서는 중국 SF영화의 원년이 도래했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장대한 과학적 상상력을 중국적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점, 자국의 산업기반 위에서 볼 만한 시각효과를 구현해낸 점, 그리고 중국 SF영화타이틀을 달고 해외시장에서도 비교적 좋은 흥행성적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크게 고무되어 있다.

 

이러한 유랑지구의 대중적 성공 이후 나타난 또 한 가지 현상은 이 영화가 초·중등교육과정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영화 감상문을 쓰거나 관련 전문가를 초청해 과학교육을 진행하는가 하면, 중고등학교에서는 유랑지구를 이용해 대입시험 출제 포인트를 내놓고 있다. 그런데 소위 중국의 첫 하드SF영화를 놓고 중고등학교에서 실제로 출제되는 문제들을 살펴보면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예를 들어 영화 유랑지구의 가치나 의의를 묻는 문제에 제시된 모범답안이 대부분 우수한 중화 전통문화의 가치문화자신감’, ‘중화 문화의 매력등에 집중되어있다. SF영화와 중화 전통문화라니, 언뜻 보기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앞서 언급한 자유로운 상상의 힘, 개성 있는 스토리텔링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인문학적 사유,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낸 기술의 발전과 같은 가치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이것은 유랑하는 지구라는 설정에서 비롯되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유랑지구지구를 옮긴다는 설정으로부터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이러한 영화의 설정은 중국문화의 내핵이자 농경문명의 발현으로 받아들여졌다. 다시 말해 할리우드의 SF영화가 주로 지구를 버리고 우주선을 타고 떠나는 스토리라면, 중국문화는 집과 토지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온전히 가지고 떠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유랑지구가 가진 중국의 이야기’, ‘중국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중국의 농경문명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는데, 이를 위해 1980년대 제기되었던 중국의 농경문명 VS 서구의 해양문명이라는 이분법을 다시 불러냈다. 당시 개혁개방을 실시하던 중국에서 전통문화의 낙후성과 소극성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논리가 이제는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근거가 된 것이다.

 

최근 몇 년 새 중국에서 성공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강한 애국주의적 성향을 보인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유랑지구중국의 첫 하드SF 영화로서 어린 학생들이 함께 생각해볼 법한 다양한 이슈를 담고 있으면서도 이를 외면한 채 더욱 경직된 애국주의적 해석으로 귀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교육에 있어 성공한 예술작품을 이용해 자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그것이 편향적인 해석을 통해 의미가 고착될 때, 텍스트를 둘러싼 지식체계가 갖춰야 할 유연성과 포용성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영화 유랑지구의 제작과 흥행은 중국영화사에 있어 하나의 이정표가 될 만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이를 계기로 중국 영화는 다양한 장르와 주제로 확장될 것이고 이러한 시도 속에서 중국 영화산업은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해야 할 일은, 보다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관점에서 영화를 해석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사회문화적 지식체계를 풍부하게 구축해가는 일이다.


김남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상임연구원



                                            


이 글은 20191125일자 국민일보(인터넷판) 칼럼 [차이나로그인]에 실린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임.

이 글에서 사용된 이미지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 1.https://www.bilibili.com/read/cv2072839/ 

그림 2. http://www.moe.gov.cn/srcsite/A06/s3325/201909/t20190917_399487.html (목록에 포함된 영화의 제목과 제작사를 확인할 수 있음. 중국 교육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