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3일 영국 남동부 에섹스(Essex) 주의 한 산업단지 화물차 냉동 컨테이너 안에서 39구의 시신이 발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보도되었다. 그중 다수가 중국인 불법 이민자라고 추정되었던 이 비현실적이고 비극적인 사건은 결국 베트남인들의 희생인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지속되는 사건의 일면이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2000년 6월 밀입국을 시도하던 중국인 60명 중 58명이 영국 도버(Dover) 항구의 컨테이너 트럭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트럭 환기구를 막아 질식사를 초래한 과실치사 살인죄로 14년 형을 받은 네덜란드인 트럭 운전자와 그를 도왔던 영국 거주 중국인 통역인은 실은 그 전 해에도 60여명의 중국인을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경유하여 영국으로 들여온 전적이 있는 이들로 밝혀졌다. 밀입국 과정에서 살아남았던 스무 살의 푸졘(福建) 공장노동자는 그들에게 24년 동안 벌어야만 갚을 수 있는 액수를 요구받았었다고 진술하여, 이 위험천만한 불법이주의 흐름에 얼마만한 이득이 개입되고 있는지를 새삼 확인해준 바 있다. 당시 영국 가디언지의 취재 결과(The Guardian, 2000.07.05.)에 따르면, 사망한 58명의 고향인 푸졘의 마을사람들 간에는 밀입국 주선자가 누구인지 알려져 있었을 뿐 아니라, 마을 관리와 지역 공산당 서기가 연루되어 푸젠성 당국과 밀입국조직이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도버 사건 이후 밀입국 조직을 소탕하자는 캠페인이 있었지만, 관리들도 마을사람들도 밀입국 거래가 중단될 거라는 기대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러한 방식의 밀입국과 인신매매, 노동 거래는 그곳에 불법적 인력송출조직이 작동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중국 노동자의 혹은 중국인 브로커를 통한 밀입국 문제는 그 후 20여 년간 중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인해, 또 아프리카로부터 밀려드는 난민 문제로 인해 세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중국은 2002년부터 10여 년간 역사상 최대의 경제성장을 이루며 미국과 대등한 경제 강국으로 성장하였고, 이제 ‘조화로운 사회건설’의 기치, 나아가 위대한 중국민족으로 다시 서자는 중국몽(中國夢)의 주장에 환호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성장의 이면에 축적되어 온 빈부격차, 도농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 사회보장과 의료문제, 환경문제 등이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로 드러나고 있지만, G2로 발돋움한 현재, 이 비참한 사건이 가장 먼저 중국인과 연루되었고, 중국 내의 인프라와 연관되어 있으리라는 세계인의 인식이 잠재하고 있었다는 것은 중국사회에 적잖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사건은 20년 전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200년 전 중국의 빈민이 겪었던 악몽을 연상시킨다. 중국이 나라 밖으로 나가는 해외중국인을 ‘화교’라는 근사한 단어로 부르며 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무렵으로, 그 전까지 중국 왕조는 중국인이 나라 밖을 떠나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고 이를 어기는 자들은 버린 백성이라 칭했다. 명·청 시기 상품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이 금지된 무역활동에 대한 유혹이 민간인들 사이에서 점차 커지기 시작했고, 저장(浙江), 푸젠(福建), 광둥(廣東), 타이완(臺灣) 등 동남해 연안지역은 점차 밀무역의 중심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동남아 통치를 위한 중간 통치자로 중국인 이민자를 활용하고자 한 서구 식민지 정부는 이들을 카피탄(captain)으로 대우하며 나은 삶을 보장했고,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유혹은 동남연해의 중국인들에게 해외로 나가며 나라를 버렸다는 죄명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상쇄시킬 만했다.
당시에도 해외로 나가는 데에는 여러 통로가 있었는데, 절대 다수의 중국인들은 불법 조직이 운영하는 인력송출 조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푸젠, 광둥 등지에 마련된 인력송출 조직에 수수료를 지불하고 작은 배를 타고 나가 네덜란드, 영국 등 서구 식민지 정부가 뒷돈을 대고 있는 원양 선박으로 옮겨 타고 동남아로 이동했다. 한편,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개발되기 시작한 동남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식민지는 대량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되고, 전란과 반란으로 얼룩진 청나라의 혼란과 가난에서 탈피하고자 했던 수많은 중국인들이 해외의 노동시장으로 빨려 들어갔다.
19세기 외국자본가나 중국인 브로커의 모집에 응해 외국으로 송출된 노동자들은 고단한 하급노동자란 의미에서 쿨리(Coolie, 苦力 kuli)라 불렸는데, 중국인 사이에서는 돼지새끼 취급을 받으며 해외로 끌려갔다고 해서 이들을 돼지새끼(豬仔)라고 불렀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광저우(廣州), 상하이, 하이커우(海口) 등지에는 외국 인력회사가 개설한 ‘저자관(猪子館)’이 공공연히 운영되었었는데, 중국인 브로커들이 사기, 협박, 납치 등의 수단으로 쿨리를 모집했고, 쿨리는 해외의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막대한 경비와 이자에 발목이 잡혀 노예와 다를 바 없는 노동의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자발적인 밀입국이든 강제적 인신매매이든 2000년 도버와 2019년 에섹스의 비극은 19세기 해외 자본주의가 팽창하던 최전선으로 중국의 빈민이 쿨리라는 슬픈 이름으로 화물선에 짐짝처럼 실려 송출되었던 악몽을 재현하는 듯하다.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Global Times)를 통해 중국은 이번 사건에 대해 ‘영국이 불법이민자들을 다루는 방식에 심각한 차별과 비인도적 행위가 없는지를 봐야한다’고 주장하며 영국의 국가적·사회적 책임을 물었다. 실제로 유럽 각국의 밀입국 규제가 강화되면서 중국인 뿐 아니라 시리아, 쿠르드 등지로부터의 난민과 불법이주노동자 등 밀입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화물트럭에 몸을 싣는 식의 위험한 방식으로 치닫게 되는 상황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국가는 국제이주의 불법과 거기서 파생되는 폭력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묻게 된다. 현대의 국가들은 분명 과거보다 이주 통제에 분명 더 깊이 관여하며, 인신매매를 막고 난민을 구제하는 조치들을 시행하고 있기는 하다. 미국은 2000년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Trafficking Victims Protection Act, TVPA)을 제정하고 기금을 마련하여 인신매매에 대한 국제적 감시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고, 중국도 인신매매범에게 종신형이나 사형에 처하는 조치를 도입했다. 그러나 문제는 법으로 해체하기 어려운 복잡한 국제적 네트워크가 존재하고, 국제 범죄조직의 하급자를 처벌할 수는 있으나 상급자를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점이 밀입국 및 인신매매 방지 정책의 실효성을 무위로 돌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민 수용국가들이 사용자 제재(미등록 노동자를 불법적으로 채용하는 사용자에 대한 처벌) 등 다양한 합법화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음에도 이주 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여전히 뒷문을 통한 이주노동의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이른바 이주 산업의 존재와 관련이 있다. 이주의 흐름을 조직하는 서비스를 통해 이득을 얻는 이주산업의 발전은 이주 과정 중 형성되는 초국가적 네트워크의 한 단면으로서, 이주 흐름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특수한 서비스를 정부가 다 제공할 수 없어 등장하게 된다. 이주 산업의 종사자 중에는 여행사 직원, 통역사, 부동산 중개업자, 이민 변호사와 같은 이들도 있지만, 신분증과 여권을 위조하는 위조범부터 개인 밀입국업자, 최근 드러나고 있는 국제 범죄조직, 법과 규정의 허점을 알려주거나 허위문서를 발행해서 불법으로 돈을 챙기는 경찰이나 공무원도 있다.
이주산업의 브로커들은 거대하고 보이지 않는 전 지구적 노동시장을 뒷받침하는 국제적 네트워크이고, 불법이주의 규제가 벽에 부딪히는 이유 중 하나는 공식 채널을 통해 이동하기 힘든 이들에게 밀입국업자들은 종종 범죄자라기보다 의적으로, 썩었을지언정 최후의 동아줄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전쟁, 박해, 폭력, 빈곤을 피해 이주하려는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의 기회를 확보하기 위한 필사적인 몸짓으로 유일한 수단인 어둠의 경로를 통해 썩은 동아줄을 만난다. 대체로 좋은 일자리와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 인신매매업자와 밀무역 주선자에게 속아서, 때로는 인신매매업자의 도움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서라도 새로운 기회를 찾고자 한다. 세계 곳곳에서 불법 이민이 계속되는 현실은 단순히 국가의 국경 통제 실패로만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민 송출국 내부의 절박한 실정을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고 국제 이민의 흐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초국가적 권력과 국내의 이해관계가 항상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장벽이 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정은주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은 2019년11월29일자 『국민일보』(인터넷판) 칼럼 [차이나로그인]에 실린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임.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