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다는 건 이미 자명하다. 미중 무역전쟁을 비롯해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미국은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에서 탈퇴하면서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한국을 중거리 미사일을 새로 배치할 후보지로 꼽고 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로 한일관계가 역대 최악으로 치닫고 있으며,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의 향방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이 변화가 단순한 사건들의 연쇄가 아니라, 장기간 지속될 구조 변동이라 점을 보여주는 한 가지 증거는 한반도가 포함된 유라시아의 하위 지역(subregion)을 지칭하는 단어가 국가별로 뚜렷이 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동아시아, 동북아시아가 여전히 익숙하지만, 두 단어를 정확히 정의하고 그 기원을 추적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들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동아시아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불온한 단어에서 보듯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기원한 측면이 크다. 일본은 서구 열강이 지배하고 남긴 '동아(東亞)'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기를 바랐다. 동북아의 실질적인 기원은 냉전 시기 미국이 일본과 한국을 '동북아'로 지칭하면서 시작되었다. 탈냉전과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동북아는 지금처럼 중국을 포함하여 확장되었다. 하지만 동아시아와 동북아가 과연 정확히 정의되고 구별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불명확하다.
탈냉전 이후, 동아시아와 동북아는 우리에게 더욱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소련과 동구권 붕괴, 냉전 종식에 따라 새로운 이념과 분석틀을 찾던 한국의 진보 진영과 변혁 이론은 동아시아를 하나의 '담론'으로 재창조했다. 이른바 '동아시아 담론'은 한국 진보 진영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을 통해 어느 정도 실제 정책으로 현실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담론'은 실제 동아시아로 거의 확장되지 못했고, 그저 한국만의 '담론'이었다는 냉철한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우리의 지역 개념과 지역 전략이 형편없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범주로 '유라시아'를 상정했을 뿐이다. 유라시아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인 북한 문제는 그저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는 것이었고, 휘황찬란한 선포와 달리 정책적, 재정적 뒷받침도 사실상 없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신북방 정책'에서 보듯이 과거의 족보를 답습하거나, '한반도 운전자론', '한반도 신경제지도'처럼 지역 개념을 없앤 채 안전한 명칭을 택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동북아 균형자론'의 실패에 대한 기억 때문일 수도 있고, 지역 개념이 없이 한반도에 집중하자는 선택과 집중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지역 개념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이었던 2011년 10월,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이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에 아시아 중시 정책(pivot to Asia)을 천명했던 때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 '아시아-태평양(Asia-Pacific)'이라는 평이한 단어를 사용했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 10월 발간한 『국가안보전략서(National Security Strategy)』는 지역별 전략을 새로운 장으로 편성하면서 '인도-태평양(Indo-Pacific)'을 제일 앞에 내세웠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의도는 명시적이지는 않더라도 분명하다. 2018년 5월 미군의 태평양 사령부를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조정한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구체적으로는 중국의 일대일로를 통한 유라시아에서의 영향력 확장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인도-태평양'은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 용어로서 이미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에서 지역 명칭은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동아시아, 동북아시아는 단 한 차례도 언급된 적이 없다. 다만 2017년 11월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APEC에 참가하면서 날린 트윗에서 '인도-태평양'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있다. 역설적으로 APEC이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현재 미국 외교의 수장인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트위터에는 '인도-태평양'이라는 단어가 수없이 등장한다. 대조적으로 '동아시아 정상회담' 같은 고유명사를 제외하고는 동아시아나 동북아가 언급된 적이 없다. 심지어 폼페이오는 한국,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 우리가 아시아, 동아시아로 부르는 곳을 방문해서도 '인도-태평양'을 매우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본은 지역 개념에서도 미국을 철저하게 따라가고 있다. '인도-태평양'이 공식 용어로 막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2017년 11월, 일본의 아베총리는 일본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FOIP, Free and Open Indo-Pacific Strategy)'을 미일의 공동 외교전략으로 삼는다고 발표했다. 아직 확고하게 입장을 정한 것은 아니지만, 아세안 국가들도 최근 '인도-태평양'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2019년 6월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담은 의장 성명과 함께 '아세안의 인도-태평양 전망'이라는 별도의 성명을 채택하였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는 아세안 국가들로서는 인도-태평양 개념이 자신들의 몸값을 올리기에 더욱 유리할 것이다.
우리의 입장은 아직 모호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2017년 일본 방문의 다음 행선지였던 한국에서도 한미 동맹이 인도-태평양 전략에 포함된다는 양국 정상의 발표가 있었다.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청와대는 김현철 당시 경제보좌관이 다음날 이를 부정했지만,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교부가 인도-태평양 전략을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2018년 8월에는 우리 외교부와 미국의 국무부가 한국의 신남방 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간의 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했고, 이는 2019년 6월 트럼프 대통령 방한시 양국 정상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재확인되었다. 경제 전략에 가까운 신남방 정책을 내세워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미중 대립의 안보 관련 내용을 희석하려는 포석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2018년 7월에 제정한 「아시아 재보증 법안(Asia Reassurance Act)」에는 한미 동맹이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안보 증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이미 규정되어 있다.
결국 '인도-태평양 전략'을 둘러싼 지역 개념의 분화는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문제로 귀결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문제이다. 양자택일에서 벗어나, 오히려 '동아시아 담론'이나 '동북아 균형자론'처럼 새로운 개념을 선도하거나 주체적인 입장을 내세울 수도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힘이 뒷받침되지 않거나 차가운 현실을 극복하고 주변 국가의 뜨거운 공감을 이끌어 낼 만큼 탁월한 비전이 없다면, 이는 두 개념이 그랬던 것처럼 그저 '담론'에 그치거나 실패할 뿐이다. 여전히 '동아시아 담론'은 현실에 대한 분석이나 전략과 결합되지 못한 채, 인문학의 영역에만 머물면서 담론의 계보학으로 천천히 잊혀져가는 것 같다. '한반도'에 집중하는 정책조차도 세밀하게 조정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신북방 정책의 핵심은 남북을 먼저 연결하여 유라시아로 확장하는 것이지만, 정작 북한은 과거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이 자신들을 고립하고 궤멸시키려는 술책이었다는 기억 속에서 '북방'이라는 단어를 혐오하고 있다. 불행히 학계의 논의도, 정부의 정책도 아직까지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기는 어려워 보인다.
조형진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ubasia.jpg#/media/File:Subasia.jpg
https://www.lowyinstitute.org/the-interpreter/free-and-open-indo-pacific-and-what-it-means-austra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