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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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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여름 한일관계의 풍경 _ 김태승

일본의 한 역사학자는 일본의 패전으로부터 60년이 지났지만 일본 학계에서 여전히 전쟁 책임문제를 검증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로 냉전으로의 이행으로 전쟁 책임에 대한 추급이 미루어졌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일본의 전후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거기에 덧붙여 이 학자는 태평양전쟁의 전후처리가 불충분한 형태로밖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문제도 지적한다.1) 이러한 관점을 확장시켜 보면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으로 양국 간의 과거의 역사가 정리되고 새로운 한일관계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일부의 관점이 얼마나 단순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최근 한국과 일본의 외교관계가 위기에 처해있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잘못된 전후처리의 유산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진정한 의미의 한일의 전후처리가 이제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의 국가의사표명이 특정 권력집단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 동의에 기초한 정통성을 지닌 국가의 의사표명의 형식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이제야 민주적 정통성을 지닌 한일관계가 정립될 기회를 갖게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외교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진정한 한일관계의 정립을 위해서는 이러한 대립과 갈등이 사실 한번은 반드시 겪어야 될 과정이 아닌가 싶다. 현실적으로 오늘날까지의 한/일의 외교관계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범주 안에 갇혀있었으므로, 양자간의 1:1대응과 관련된 외교적 관례가 확립된 적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사실 주체적 외교전략을 취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적이 거의 없었고, 대중국정책도 그렇지만 한국정부의 대일정책은 대부분 이상적 국제주의자들이나, 국제주의라는 외피를 가진 친일주의자들 혹은 국내정치에 활용하기 위한 전략적 친일/반일주의에 의해 요동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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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문희상 국회의장과 회담하는 아베의 의자외교.

의자의 높이 색상 등에서 차이가 있다. JTBC 뉴스화면 갈무리.


법적으로 보면 현재까지 한일관계를 국제적으로 규정해 온 것은 1965622일에 조인된 <한일기본조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조약은 격렬한 반대운동과 그에 따른 계엄령 선포 속에서야 체결할 수 있었던 것으로 조약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한 조약이었던 것이다. 일제의 한반도 침략의 불법성과 그러한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 문제 등에서 당시 군사독재정권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정권의 이해관계라는 측면에서 성급한 조약체결에 나섬으로써 이후 후속정권에서의 대일정책에 매우 복잡한 과제들을 떠넘겼던 것이다. 게다가 민주화 이후의 국내의 정치정세가 한일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쳤고, 국내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이 일본의 보수정치집단에게 잘못된 신호를 줌으로써 한일관계를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한일 관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보수세력이 문제를 만들고 진보세력이 그 문제해결에 발목이 잡히는 악순환이 한국 안에서 벌어지게 된 것이다. 2012년 이명박의 독도방문, 201510억 엔에 인간의 존엄성을 팔아넘긴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등은 21세기 한일관계를 격랑 속으로 몰아넣는 출발이 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국내 정치상황이 대일관계를 매우 복잡하게 만들어간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러한 외교문제들이 한국을 동등한 선린국가로 수용할 수 없는 일본 우파의 책동에 의해 확산되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일본의 우파는 ‘65년 체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자신들의 국내정치의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한일 갈등문제의 본질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베의 일련의 외교적 책동은 사실은 국내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는 전가의 보도였다. 한국의 국회의장과 외교통상부 장관을 만나면서 보인 찌질한 의자외교”, 금번 무역분쟁의 논의에서 보여 준 한국 대표단에 대한 푸대접 외교등은 현재 아베 정권의 외교가 지향하는 바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주권국가의 민주적 의사결정체제와 정당한 사법체제의 역할을 부정하고, 개항시기 불평등 조약체제 하에서나 볼 수 있는 위력(무기가 무역으로 바뀌었을 뿐)에 의한 외교를 통한 한국의 굴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강아지”(가메이 시즈카 전 금융담당상)로 묘사될 정도로 트럼프에 대해 저자세를 취했던 아베가 한국에 대해서는 통보외교라는 사실상 전쟁상태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무례한 외교적 책동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것은 무엇을 목표로 한 것일까. 한국을 분노시키고, 대립을 고조시킴으로써 그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최근 한일 관계의 악화과정에서 우리는 일본사회의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일본 주류언론의 친정부화 현상의 가속화이다. 일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오던 민주적 시민사회 기반의 진보언론의 영향력은 급격히 약화되고, 요미우리, 산케이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언론이 아베의 논리를 추수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말하자면 아베 역시 탈진실 정치(Post-Factual Politics) 즉 감성정치를 정치전략의 핵심으로 활용하고 있는데(그래서 아베를 거짓말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트럼프의 경우에서처럼 현실적 의미를 갖기가 어렵다), 그러한 감성정치의 허상을 뚫고 아베정치의 폭주를 견제할 사회적 세력은 찾기 쉽지 않다. 평화헌법개정문제, 역사문제 등에서 합리적 성찰을 주장해 온 일본 시민사회운동세력들의 영향력은 후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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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국경없는 기자회의 국가별언론자유 수준도>.

한국 41, 대만 42, 일본 67. 색이 연할수록 언론자유수준이 높은 나라.


아베의 탈진실 정치 전략(가짜뉴스를 만들어내고, 조작된 이미지를 퍼트리고, 거짓말을 겁내지 않고...)은 열광적 지지자들의 정치참여를 독려하고, 비판적 시민들의 탈정치화를 방조하는 정치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그 핵심은 만만하고, 다루기 쉬운 적을 만들어내는 것이며 가상의 적을 통해 자신의 거짓말 정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은 아베가 볼 때, 한국 내의 친일세력, 정당 간의 경쟁을 공동체적 비전 보다 중시하는 한국 정당정치의 후진성 등의 측면에서, 활용하기 쉬운 대상이었을 것이다. 일본은 아베에 의해 1930년대의 독일에서처럼 민주주의의 몰락의 위기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도 상황은 녹녹치 않다. 바이마르공화국의 실패와 나치즘의 부상에 대해 비판했던 한 독일 연구자의 사회전체에 대해 책임질 용기와 정당들의 경계를 넘어 협력할 각오가 부족했다. 정당 간의 싸움이 거대한 사회적 문제의 해결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다. 30년대의 독일은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는 관점에서 보면 한국 정당정치도 위기에 처해 있으며 한/일 양국에서의 민주주의 위기는 동아시아 국가 사이에 증오와 갈등을 증폭시켜 나가게 될 것이다.


모든 외교적 통로가 사실상 차단되고, 일방적 통보에 대해 자신들이 원하는 답만을 강요하는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차라리 진정한 한일관계의 재정립을 위해서 “65년 한/일 외교체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려움이 따를 것이지만, 19세기, 20세기 전반기 약소국에서 진행되었던 불평등조약 개정운동처럼, <한일기본조약>의 파기와 전면적 개편작업에 나설 필요가 있지 않을까.


김태승의 六十五非 14


김태승 _ 아주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1) 요시다 유타카, 6장 왜 전쟁의 시작을 막을 수 없었던가?, 『일본 근현대사 10. 일본근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문학사, 2013. 참조. 원본은 2007년 이와나미 서점에서 출간.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