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초, 한국화교사회에 뜻밖의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은 바로 한국화교 이수영(당시 19세)이 영국 런던의 ‘미스 유니버스(Miss Universe)’ 대회에서 2위로 입상했다는 것이었다. 이수영(李秀英)은 산동출신의 부모를 둔 화교 2세로, 인천에서 화교소학을 졸업하고 13세에 대만으로 건너가 타이페이국립예술전문학교 음악과에 진학하였다. 이수영의 부친은 당면공장의 노동자로 일하였고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이수영은 집안의 맏딸로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스스로 학비를 마련하여 학업을 이어나갈 정도로 생활력이 강했다고 한다.
이수영은 1961년 대만에서 대화만보(大華晩報)의 주최로 열린 ‘미스 차이나’에 출전하여 왕려령(王麗玲), 마유군(馬維君)과 함께 공동 1위를 수상하였다. 또 이수영은 이듬해 연말 런던에서 진행된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참가하여 2위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1위 수상자가 규정 위반행위로 발각되어 1위 자격을 상실하였고, 그 때문에 이수영이 1위 수상자를 대신해서 1년간 친선대사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사진 1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에서의 이수영(오른쪽에서 두번째)
이수영은 이듬해인 1962년 1월 25일, 한국을 방문하였다. 이날 유어만(劉馭萬) 주한자유중국대사 부부와 이수영의 가족, 인천화교 200여 명이 공항에 나가 환영하였는데, 이수영은 “제2의 고향인 한국에 다시 와서 정말 기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수영의 내한일정은 26일 박정희 의장(국가재건최고회의) 부부 예방을 시작으로 판문점 방문, 방송출연, 미스 차이나의 밤 행사 등으로 이어졌다.
사진 2 인천화교협회 건물 앞 유어만 대사 부부와 이수영 방문 기념
31일 이수영은 고향 인천에 도착하였고, 수많은 인천화교들이 이수영의 금의환향을 열렬하게 환영하였다. 인천화교협회는 이수영의 내한에 앞서 치밀하게 환영준비를 하였고 이수영이 인천에 머무는 동안 환영대회를 성대하게 진행하였다.
사진 3 인천 차이나타운의 이수영 환영 행렬
이수영의 모교 화교소학의 부흥당에서 진행된 환영대회에는 유어만 주한자유중국대사 부부를 비롯해서 인천시장, 경기도경찰국장, 인천경찰서장, 경기매일신문사장, 경인일보사장, 한국 미스 경기 등이 참석하였고, 약 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날 만찬은 인천의 유명 중국 식당인 공화춘(共和春)에서 거행되었다.
사진 4 환영대회 모습
사진 5 공화춘에서의 만찬
그런데 한국화교들에게 있어 이수영의 방문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당시 한국화교들이 생산한 기록물에 따르면, 한국화교들은 이수영이 한국화교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였다고 평가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화교사회에서 한국화교들은 그 숫자도 적고 경제력이 없어 거의 주목 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화교 출신인 이수영의 수상은 '한국화교'의 존재를 세계 언론에 알렸고, 한국화교들은 이에 남다른 자부심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민주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코디네이터
참고문헌
「第二故國 오니 기쁘다' 미스 챠이나 李孃入京」, 『동아일보』, 1962.01.26
「오늘 第二故鄕 미스 챠이나 李孃入京」, 『동아일보』, 1962.01.26
「'미쓰차이나'의 밤 市民會館서 盛大」, 『동아일보』, 1962.01.26
仁川華僑協會(1962),「通知」,『慶祝檔案卷』(인천화교협회 소장자료)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에서 진행한 '인천화교협회 소장자료' 디지털 아카이빙 자료임.(사진 1 제외)
사진 1 : http://baike.so.com/doc/5414559.html?sid=757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