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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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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업신 최고의 스타, 관우 _ 박경석

(지난 세 차례에 걸쳐, 행업신의 정의와 분류, 형성, 목적과 작용, 존재 양태, 숭배 활동, 금기 등 행업신의 개요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개별적인 행업신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업종에 어떤 행업신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그리고 그들은 어떤 관련성으로 인하여 행업과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행업신 연구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교(李喬)행업신숭배: 中国民衆造神史硏究(북경출판사, 2013. 8)에 따르면, 행업신으로 숭배되는 다양한 형태의 신령이 무려 630종에 이른다. 이들 신령은 하나의 업종에서 숭배되기도 했고 다수의 업종이 숭배하기도 했다. 대개 하나의 업종은 다수의 신령을 숭배한다.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듯이, 행업신 숭배는 하나의 업종이 하나의 행업신을 숭배하는 배타적인 방식이 아니다. 하나의 행업이 여러 행업신을 섬기는 경우가 태반이고, 하나의 신령이 여러 업종에서 숭배되는 경우도 매우 흔하게 나타난다. 대개 행업과 행업신은 어떤 내용으로든 일정한 관련성을 갖기 마련이다. 하지만, 같은 신령이라도 여러 업종이 그 대상을 숭배하게 된 연유는 같을 수 있고 다를 수도 있다. 이러한 일업다신(一業多神)이나, 다업일신(多業一神)과 같은 경향은 중국의 민간신앙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범신론(다신론)적 실용주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제부터 어떤 업종에서 어떤 행업신을 숭배했는지, 각각의 행업과 행업신이 어떤 관련성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살펴본다. 엄연히 우리의 주인공은 신령들이므로 업종별이 아니라 행업신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행업신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최고의 스타는 역시 관우(關羽)이다. 전술한 이교(李喬)에 따르면, 무려 24종의 업종에서 행업신으로 섬겼다고 한다. 관성제군(關聖帝君)이나 관제(關帝), 관공(關公) 등의 존칭으로 불렸던 관우는 주지하듯이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중에 하나이다. 화타(華佗)가 마취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독화살을 맞은 어깨를 째서 뼈를 긁어내는 수술을 하는데도 태연하게 바둑을 두었다는 일화가 그를 상징한다. 의리 있고 충성스럽고 용맹한 그의 행적으로 인해, 그는 오랫동안 용맹과 충의를 상징하는 가장 뚜렷한 표상으로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민간신앙에서도 가장 널리 가장 각별하게 숭배되는 대상이 되었다.

 

요컨대, 송대(宋代) 이후 관제묘(關帝廟)는 지역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사원이 되었다. 또한 그에 대한 호감이 재물에 대한 열망으로 연결되면서 재신(財神)으로서의 지위도 갖게 되었고, 상점이나 일반 가정집에 그를 상징하는 위패나 조각상, 그림 등이 모셔졌다. 도교에서는 그를 협천대제(協天大帝), 복마대제(伏魔大帝), 익한천존(翊漢天尊) 등으로 숭배하였다. 불교에서도 그를 호법신(護法神)의 하나로 여겨 가람보살(伽藍菩薩)로 섬겼다. 심지어 유교에서도 문형성제(文衡聖帝)로 그를 숭배하였다.

 

관우는 민간에서만 귀하게 여겼던 것이 아니었다. 공자(孔子)는 상층에서만 존숭했던 대상이었지만, 관우는 위, 아래에서 모두 숭배했던 거의 유일한 대상이었다. 요컨대, 중국은 전통적으로 ‘사전(祀典)제도를 두어 국가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신앙숭배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는데, 청대(淸代)에 이르러 관우도 공식적인 국가제사 대상에 편입되었던 것이다. ‘사전이 대대적으로 정비되었던 민국시기에도 관우에 대한 제사는 관악합사(關岳合祀, 관우岳飛를 함께 모심)’의 형태로 유지되었다. 또한 문묘(文廟)에 모셔진 공자에 견주어 관우를 모신 사당을 무묘(武廟)라고 했다. 관우가 공자와 함께 문무(文武)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지배층의 입장에서도 그의 충의(忠義) 이미지를 드높일 필요가 있었고, 민간에서 널리 숭배되는 신령을 국가적으로 수용하는 의미도 있었다.




사진 1  관우상

    행업신1.jpg  

 

이처럼 신앙숭배의 전반에서 인기가 높았던 관우는 역시 행업신의 영역에서도 널리 숭배되었다. 전술했듯이, 이교(李喬)에 따르면 적어도 24종에 이르는 업종에서 조상신이나 수호신으로 섬겼다. 금박(描金業), 가죽가방(皮箱業), 가죽제품(皮革業), 담배(煙業), 향과 초(香燭業), 비단(綢緞商), 재봉(成衣業), 요리(廚業), 소금(鹽業), (酒業), 발효식품(醬園業), 두부(豆腐業), 도살(屠宰業), 정육(肉鋪業), 빵떡(糕点業), 건과(干果業), 이발(理髮業), 금전(銀錢業), 전당포(典當業), 군무원(軍伍業), 무술도장(武師業), 교육(敎育業), 점술(占卜業), 창기(娼妓業)와 관련된 업종이 그것이다. 식음료와 관련된 업종이 많지만 매우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죽가방 제조업(皮箱業)

가죽으로 트렁크를 만드는 행업에서는 대개 노반(魯班)을 조상신으로 섬기고 관공(關公)과 증복재신(增福財神)을 수호신으로 모셨다. 노반은 춘추시대(春秋時代)를 살았던 전설적인 목공으로서, 거의 모든 장인(匠人)의 조상신으로 폭넓게 숭배되는 존재이다. 관우를 존숭한 것은 충의를 본받고자 하는 뜻뿐만 아니라, 돈을 많이 벌고 재앙을 피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뜻이 있었다. 그런데 사당에서는 관우를 중앙에 모시고 노반과 증복재신을 좌우에 모셨다. 조상신인 노반을 제치고 관우가 중앙에 앉게 된 것은 민간신앙의 세계에서 관우의 지위가 노반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이었다.

 

가죽제품 제조업(皮革業)

일부 지역의 가죽업자들이 관공(關公)을 조상신으로 섬겼으나,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밖에 해당 업자들은 황비호(黃飛虎), 비간(比干), 달마(達摩), 손빈(孫臏) 등을 행업신으로 섬겼다. 특히 손빈은 전국시대(戰國時代)를 살았던 저명한 군사전문가인데, 젊은 시절에 잘려나간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최초로 가죽 장화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연고로 다양한 업태의 가죽업자들의 조상신으로 섬겨졌다.

 

담배제조업(煙業)

관제(關帝)를 주신(主神)으로 섬기고, 화신(火神)과 재신을 부속 신령(配神)으로 섬겼다. 관제를 주신으로 모신 것은 관우가 민간의 대신(大神)이고 신의 협력신이기 때문이다. 이밖에 제갈량(諸葛亮), 여동빈(呂洞賓) 등이 숭배되었다.

 

향초 제조업(香燭業)

향과 초를 취급하는 업자들이 관제를 숭상한 것은 무신(武神)이자 재신으로서 신의와 협력을 상징하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향초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유명한 도원결의(桃園結義)’ 장면에는 향을 피우고 절하여 맹세했다는 묘사가 있다. 또한, 조조가 관우로 하여금 군신의 의리를 어기게 하려고 유비의 소열후와 밤새 한 방에 있게 하였으나, 관우는 촛불을 들고 다음날 아침까지 문밖에 서서 황후를 지켰다는 고사가 있다. 이러한 분향 및 촛불과의 인연으로 관우는 향초업의 조상신으로 숭배되었던 것이다.

 

재봉업(成衣業)

옷을 만드는 재봉업자들은 황제(黃帝), 삼황(三皇), 주무왕궁비(周武王宮婢)와 함께 관공(關公)을 조상신으로 섬겼다. 관공을 행업신으로 삼은 것은 아마도 재봉을 위해 가위를 사용하기 때문인데, 관우는 칼을 잘 사용하였다.

 

요리업(廚業)

일부 지역에서 요리사들이 관우를 조상신으로 섬긴 것은 요리사들이 칼을 많이 사용하는데 관우도 칼을 잘 다루었기 때문이다.

 

염업(鹽業)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업자들도 여러 신령을 섬겼는데, 이들이 특히 관우와 장비(張飛)를 섬겼던 것은 무장(武將)을 상징하는 이들이 염전의 악신(惡神)으로부터 자신들을 잘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두부 제조판매업(豆腐業)

두부업도 지역에 따라 관우 이외에 다양한 행업신을 섬겼다. 이는 관우가 세상에 나오기 이전 비천하였을 때 두부 장사를 했었다는 전설이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관우가 두부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던 적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고, 삼국지연의에도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도살 및 정육점(屠宰肉鋪業)

가축을 도살해 파는 업자들은 대부분 장비(張飛)를 조상신으로 섬겼다. 그것은 장비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도살 및 정육점을 운영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지역에 따라 관우를 조상신으로 삼기도 했다. 이는 도살과 고기 판매에 칼을 많이 사용하는데, 관우가 칼을 잘 다루었기 때문이다.

 

떡집(糕点業)

떡집에서도 여러 신령에 더하여 관우를 행업신으로 섬겼다. 떡을 찍어낼 때 똬리를 틀고 있는 용 모양의 틀을 사용하게 되는데 그것을 청룡이라고 불렀다. 관우가 사용했던 병기가 청룡도(靑龍刀)였기 때문에 이런 연고로 관우에게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이발업(理髮業)

이발사들도 여러 신령과 함께 관우를 조상신으로 섬겼다. 이발을 위해서는 가위와 면도칼을 사용해야 하는데, 관우가 칼을 잘 다루었기 때문에 조상신으로 삼았던 것이다.

 

군무원(軍伍業)

군무원을 포함한 직업군인은 관우, 악비(岳飛), 기독신(旗纛神, 군대 깃발 신령), 마왕(馬王) 등을 섬겼다. 관우는 이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섬긴 군신(軍神)이었다. 관우가 무장을 가장 뚜렷하게 상징한다는 점에서 매우 자연스럽다.

 

무술도장(武師業)

무사(武師)란 무공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거리에서 무술 공연을 펼치거나 무술도장을 열어 수강생을 받거나 보디가드 일을 했다. 이들은 주로 달마(達摩)와 관우를 숭배했다. 달마는 소림무술 내지 중국무술을 창시한 인물로 전해졌기 때문에 이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섬겼다. 지역에 따라 관우를 섬기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는 첫째 관우가 무장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들은 대개 의리를 매우 중시하는데 관우가 바로 의리를 상징하였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관우는 민간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졌던 큰 신령(大神)으로서, ‘신의와 협력의 화신으로 여러 업종에서 널리 숭배되었다. 특히 향초와의 인연이나 칼을 잘 다루었다는 전설, 두부 장사를 했던 이력, 대표적인 무장(武將)이라는 점으로 인해 여러 업종의 조상신이 되었다. 이밖에 여타 업종에서도 관우가 행업신으로 숭배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매우 부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관우가 재신(財神)으로서 돈을 잘 벌게 해줄 것이고, 그의 신기한 권위가 자기 행업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일반적으로 작용했을 터이다. ‘만능의 신령인 관제(關帝)는 행업신의 영역에서도 역시 최고의 스타였던 것이다.

 

【중국 행업신 이야기 동업자들의 세속화된 신성 4】

 

박경석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www.shuhua66.com/space-2138-do-album-picid-171261-goto-dow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