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분단된 나라에서 70년을 넘게 살고 있다. 오랜 시간을 분단된 채로 살아가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분단 상황에 익숙해지게 되었고 통일에 무관심하게 되었다. 독일의 통일사례를 보면 국민들이 통일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알 수 있다. 실제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며칠 전까지도 많은 독일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고 통일이 올지 몰랐다고 한다. 오죽하면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빌리 브란트 총리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15일 전 서울대학교 강연에서 “(독일통일이) 10년 안에는 안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까.
그런데 우리는 독일 통일을 이야기 할 때 경제적인 부분에 편중하여 논의를 전개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서독이 동독지역에 천문학적인 통일비용을 쏟아 부었고,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통일독일은 아주 강력한 부자 나라가 되었다’로 요약된다. 하지만 이러한 틀 속에서 우리의 통일에 대한 담론은 ‘통일비용’과 ‘통일편익’에 치중하게 되는 문제를 겪게 된다.
하지만 통일을 겪은 독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경제적인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수십 년 간 전혀 다른 문화와 제도 속에서 살았던 사람 수 천 만 명이 갑자기 함께 살게 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매일 같이 일어났고, 통일독일 국민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통일 30여년이 지난 오늘날 구 동독지역 주민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오스탈기(Ostalgie) 현상은 이러한 고통이 현재까지 이어짐을 알려준다.
걱정이 되는 부분은 바로 우리나라의 통일은 독일보다 더 혹독한 시행착오를 겪고 사회적 비용을 치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독일보다 분단기간도 훨씬 길고 6.25 전쟁이라는 참상까지 겪었다. 그러다보니 서로 간에 벌어져 있는 차이도 더 클 것이고 그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들도 더 많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 후 여러 문제들이 훨씬 더 심각하게 발생할 것으로 생각이 되며 그만큼 통일로 다가가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결국 ‘백문이 불여일견’, 먼저 부딪혀보고 경험하고 해결해보고 기록해놓는 연습의 과정을 거친다면 이보다 더 좋은 ‘통일준비’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성공단에서 이러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개성공단에 관한 접근 역시 ‘경제적인 부분’에 치중해 왔고, 남북관계의 흐름에 따라 정쟁의 대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언론을 통해 ‘남용’되어왔다. 물론 남북경협의 상징으로 경제특구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공단을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남북 갈등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으로 왜곡되고 일반화 되면서 ‘남북이 함께 일하고 생활하면서 통일을 준비하는 공간’이며 ‘남북한 모두에게 기회의 공간’으로서의 긍정적인 의미는 관심을 받지 못한 것 같다.
개성공단에서는 10년 넘게 남북이 같은 공간에서 120여개의 공장과 100여개의 영업소를 짓고 남한 근로자 1천 여 명과 북한 근로자 5만 여 명이 함께 생활하면서 생산 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연하게도 실제 함께 생활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었던 일들이 매일 같이 발생하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함께 노력하는 과정이 있었다.
함께 살면서 실제 겪어보니 체제와 제도 그리고 문화적 간극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이 벌어져 있었다. 그래서 개성공단 운영의 모든 부분에서 남북이 ‘합의’를 하고 ‘합의서’를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남북이 제도를 만들고 시행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5만 명이 넘는 사람이 함께 근무하는 공단에서 필요한 것도 많았고 발생하는 일도 많았기 때문에 거의 매일 ‘합의’하고 ‘합의서’를 작성해야 했는데, 남북 차량 간 교통사고가 나서 보험처리를 했던 상황, 생산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 등 무수히 많은 합의서들이 나오게 되었다.
동고동락한 시간이 누적되면서 수많은 합의 과정을 통해 남북이 서로의 제도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수용하는 부분이 생겨났다. 뿐만 아니라 합의서들이 늘어나면서 기존 합의내용을 토대로 일을 해 나가기가 수월해졌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쌓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합의’를 통해 차이를 극복했던 암묵적인 경험지식과 ‘합의서’로 남겨진 기록들이 통일로 가는 과정과 통일 후에 얼마나 중요한 자료가 될 지는 불필다언(不必多言)할 것 같다.
뿐만 아니라 5만 명이 넘는 북한 주민들이 세계화 된 국제사회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경험하고 실천하는 학습의 장으로서의 개성공단도 의미가 있다. 개성공단을 상품 브랜드의 가치와 중요성 인식, ‘품질향상’과 ‘납기일 준수’를 위한 노력, 개인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와 각종 수당에 대해 민감한 반응과 실천 등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하루하루 높아져 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 베트남, 구 동구권 국가들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이러한 경험과 실천이 상당히 필요한데 개성공단이 거의 유일하게 그러한 경험을 제공한 곳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개성공단과 일대일로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사실 남북의 전면적인 교류협력과정을 거쳐 화해와 통일의 길로 가지 못하고 한반도로 통하는 길이 열리지 않는 한 일대일로에서 중요한 문제인 동북 3성의 발전은 한계가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중국이 북한문제로 인해 UN에서 혹은 국제사회에서 겪고 있는 신뢰도와 리더십의 문제는 일대일로를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따라서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협력사업의 성공적인 발전과 중국의 일대일로는 같은 궤도에 올라가 있는 운명 공동체에 가깝다고 생각하며 중국은 지금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이러한 부분에 주목하고 함께 노력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한 노력 중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이 중국이 협력하여 함께 경제협력지구를 만들어 나가는 방법이다. 중국의 성공적인 특구 정책과 개혁개방의 경험은 이러한 협력지구의 발전과 확대에 분명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남한과 북한과 중국이 협력하여 개성공단과 같은 협력지구를 다양하게 개발하게 된다면 상호간에 안정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좋은 협력 모델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3자가 함께 해 나갈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들이 지속적으로 많이 나오고 실천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한반도와 중국의 번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길로서 모두가 함께 추구해야 할 미래이기 때문이다.
첫 통일독일대통령이었던 폰 바이체커 대통령은 “준비된 통일은 축복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부디 빠른 시일 안에 북핵 문제가 잘 해결되어 개성공단이 속히 재가동되고, 개성공단 이외에도 크고 작은 다양한 통일준비 프로젝트들이 많이 실현되어 축복된 통일의 날이 다가오기를 갈망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이 건설적이고 대승적으로 남북의 통일을 위해 함께 노력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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