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한 입 한 입 먹고 길은 한 걸음 한 걸음씩 가는 것이고, 길을 가다 보면 가시밭길도 피할 수 없다. 그렇지만 2018년 희망이 컸던 만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반도는 또 다시 침울하다.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1주년이 돌아왔지만 멈추어선 남북관계는 호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또 다시 길을 잃은 듯하다. 급하고 서둘렀던 만큼 뒤돌아볼 여유를 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직은 가려진 일들이 많지만 어쩌면 진실은 많은 정보 속에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길을 찾기 위해서는 다양한 상상에 기초한 백가쟁명도 필요하다.
혹자는 북한은 근본적으로 비핵화 의지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대화가 필요 없다고도 한다. 그들에게는 아무리 나쁜 평화도 전쟁보다는 낫다는 격언은 무용하다. 비핵화가 북한의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완전한 비핵화를 의미한다면 북한은 그럴 의지가 없다. 그렇지만 비핵화가 한반도의 평화체제와 북한의 비핵화를 의미한다면 북한은 그럴 의지가 있다고 본다. 북한이 핵과 경제건설의 병진이 지속가능한 노선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노선을 전환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작년 4월 20일, 북한이 경제건설 중심으로 노선을 전환한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안전보장과 평화체제를 전제하는 비핵화를 위한 내부적인 준비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평화체제와 북한의 비핵화가 교환조건이라면, 전자가 갑자기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후자도 점진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노이에서 미국은 왜 비핵화와 더불어 대량무기의 완전한 폐기를 요구하였을까?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수 십 년 동안 세계 최강의 군대의 위협 하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완전한 비핵화에 동의한 후 리비아가 걸었던 길, 그리고 대량살상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침공을 당했던 이라크라는 반면교사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그러한 요구를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미국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결렬될 것이 분명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회담을 하고, 왜 결렬 후에도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관계가 좋다고 했을까?
그것은 북핵 문제의 처리와 관련하여 미국이 상충되는 두 가지 전략적 고려를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핵무기의 비확산을 위한 북한의 비핵화가 하나라면 부상하는 중국에 대응한 동아시아 전략이 다른 하나이다. 2차 대전 이후 세계질서가 극소수 강대국의 핵무기의 독점과 비확산에 기초한 것이었다면 북핵은 용납될 수도 용인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북한이 핵으로 무장한 현재의 상황에서 무력을 동원한 방법은 쌍방에 모두 궤멸적인 타격을 입히는 유효하지 않은 방법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해결이다.
그것이 미국과 북한이 대화에 나선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평화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는 상황에서 트럼프라는 미국의 전통적인 문법에서 벗어난 지도자의 공명심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노이에서 대화가 결렬된 것은 쌍방의 오랜 불신에 기초한 서로의 의도에 대한 오해, 대화 과정에서의 실수, 상호 기대의 차이 등으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이 북핵 문제를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관점에서 처리하고 있다는 것과 관련된다. 시진핑은 2017년 19차 당 대회에서 중국이 2050년에는 세계를 이끄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것은 미국적 세계 질서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으로 향후 미국적 질서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 중국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향후 전략은 중국에 대한 대응이 중심일 수밖에 없다.
경제건설로 사업 중심의 변화를 선언한 북한의 비핵화는 북한을 세계경제체제에 편입시키고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체제의 구축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평화로운 한반도와 평화로운 동아시아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할까? 평화체제가 형성된다면 한반도와 동아시아 국가들의 미국과의 군사적 동맹의 필요성, 더군다나 중국을 상대로 한 군사동맹의 필요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초한 한반도 평화체제는 중국 견제라는 미국의 최우선적인 동아시아 전략에 결코 유리한 요소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핵 독점과 비확산을 위해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필요로 하지만, 그것의 결과 형성되는 한반도 또는 동아시아 평화체제는 부상하는 중국의 견제라는 미국의 최우선적인 동아시아 전략에 배치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남북은 물론 북미의 문제만이 아니라 미중관계에 기초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미국에게는 북한 핵이 레드라인을 넘지는 말아야 하지만 완전히 해결되지도 않는 어정쩡한 상태가 최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대화를 지속하되 북한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하노이회담의 결렬은 국내정치적 위기 상황에 직면한 트럼프가 그러한 주류의 관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정이 유효하다면, 그것은 북핵 문제 해결의 난점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향에서 크다는 것을 말할 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김정은과 좋은 관계라는 말로 가능성을 열어 놓은 트럼프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만 기대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엄중하다.
안치영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 중국학술원 중국자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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