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촨요리’는 중국 쓰촨성(四川省)을 대표하는 요리이다. 쓰촨(四川)은 내륙에 위치한 분지라서 주변에 바다가 없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기후 때문에 고추, 후추, 생강, 마늘 등과 같은 강한 향이 나는 양념을 요리에 많이 쓴다. 그래서 대부분의 요리가 자극적이고 맵다. 쓰촨요리의 매운 맛을 일반적으로 ‘마라(麻辣)’라고 하는데, 이러한 매운 맛의 샤브샤브 즉 ‘마라훠궈(麻辣火鍋)’가 제일 유명하다. ‘마라’의 매운 맛은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강한 매운 맛 뒤에 혀끝이 저려오는’ 그런 매운 맛이라 할 수 있겠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나 맛볼 수 있는 ‘마라훠궈’는 현재 서울 대림동 일대의 중국동포나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샤브샤브 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우리의 매운 맛과는 또 다른 느낌의 매운 맛이다.
사진 1 쓰촨요리 마라훠궈(麻辣火鍋)
‘쓰촨요리’는 일반적으로 ‘촨차이(川菜)’이라고 부른다. ‘촨차이’는 크게 청두(成都)요리 위주의 ‘상허방요리(上河幇菜)’, 충칭(重慶)요리 위주의 ‘샤오허방요리(小河幇菜)’, 쯔궁(自貢)과 네이장(内江)요리 위주의 ‘샤허방요리(下河幇菜)’가 있다. 촨차이는 ‘중국 8대 요리’ 중 하나이면서도 ‘중국 4대 요리’ 중 하나이다. 중국은 일찍이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부터 양쯔강(揚子江) 중심의 화남(華南)지역 요리와 화북(華北)지역 요리에 차이를 두었는데, 당(唐)·송(宋)에 와서 이를 ‘화남요리’와 ‘화북요리’로 계통화하여 화북은 짭짤하고 화남은 달짝지근한 것을 특징으로 구분했다. 청(淸)에 들어와서는 ‘4대 요리’로 그 계통을 구분 짓고 이후 청(淸)대 말 무렵 ‘4대 요리’를 ‘8대 요리’로 좀 더 세분화 했다.
‘중국의 4대 요리’라고 하면 산둥성(山東省) 일대의 ‘루차이(鲁菜)’, 쓰촨성(四川省) 일대의 ‘촨차이(川菜)’, 광둥성(廣東省) 일대의 ‘웨차이(粤菜)’, 장쑤성(江蘇省) 일대의 ‘쑤차이(蘇菜)’이다. 여기에 저장성(浙江省) 일대의 ‘저차이(浙菜)’, 푸젠성(福建省) 일대의 ‘민차이(閩菜)’, 후난성(湖南省) 일대의 ‘샹차이(湘菜)’, 안후이성(安徽省) 일대의 ‘후이차이(徽菜)’를 더하면 ‘중국 8대 요리’가 된다. 혹자는 북경요리의 ‘징차이(京菜)’와 상해요리의 ‘번방차이(本幇菜)’를 더하여 ‘중국 10대 요리’로 구분하기도 하고, 중국 동북요리의 ‘둥베이차이(東北菜)’와 중국 서북요리의 ‘시베이차이(西北菜)’까지 더하여 ‘중국 12대 요리’로 구분하기도 한다. 세분한다면 더 세분할 수 있는 것이 중국요리지만 중국요리는 기본적으로 화남과 화북으로 나뉘고, 나머지 계통의 요리는 각각 ‘중국 4대 요리’에 그 뿌리를 둔다. 예를 들면, 북경요리와 동북요리 그리고 서북요리 등은 그 뿌리를 산둥성 ‘루차이’에 두고 있어 ‘산둥요리’ 즉 ‘루차이’에 속한다. 한국의 중국요리는 유독 ‘루차이’에 속하는 요리가 많다.
사진 2 중국 요리 계통도
‘중국요리(中國料理)’ 또는 ‘중화요리(中華料理)’라고 하는 것은 중국 본토가 아닌 나라에서 일종의 ‘현지화’가 된 중국의 요리를 말한다. 그 나라의 중국요리를 보면 이주민 즉, 화교들의 문화를 유추할 수 있는가 하면 그 문화를 토대로 다시 중국요리의 계통 또한 추정할 수 있다. 요리의 계통을 알게 되면 그 나라 화교의 출신지역 역시 알 수 있다. 일부 톈진(天津)을 포함한 중국 동북을 본적으로 하는 화교들도 있지만 한국의 화교들은 대부분 본적지가 산둥성이 기 때문에 한국의 중국요리는 ‘루차이’의 색채를 띠고 있다. 톈진이나 ‘동북요리’ 모두 ‘루차이’에 속하니 ‘루차이’의 색채를 띠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중국요리에는 ‘루차이’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광둥성 일대의 ‘웨차이’, 푸젠성 일대의 ‘민차이’ 그리고 바로 ‘쓰촨요리’인 ‘촨차이’가 혼합되어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전에는 거의 반세기 동안 양국 간에 교류가 없었다. ‘웨차이’는 홍콩, ‘민차이’는 대만과의 교류를 통해 유입되었다고 하더라도 지리적으로 중국 내륙에 위치하는 ‘촨차이’는 이것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냉전시대 이념 대립 구도가 절정이었던 시기여서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1960년대 짜장면이 150원이었던 시절 중국요리식업소의 메뉴를 살펴보더라도 모두 ‘루차이’에 속하는 요리만 있었다. ‘잡채(炒肉)’, ‘잡채양장피(炒肉兩張皮)’는 동북요리이며 해삼탕(海蔘湯), 자춘권(炸春卷), 난젠완쯔(난자완스, 南煎丸子), 잡탕(자반, 雜伴) 등은 전형적인 산둥성 요리이다.
사진 3 1964년 인천 중화요식업조합 협정가격표
사진 4 현재 보편적인 중국요리 음식점의 메뉴
언제부터인지 지금 대중이 자주 이용하는 소위 말하는 배달 ‘중국집’ 메뉴를 살펴보면 탕수육만큼 인기 있는 ‘쓰촨요리’가 있다. ‘깐쇼새우(간샤오샤런, 乾燒蝦仁)’와 ‘마파두부(마포더우푸, 麻婆豆腐)’ 그리고 ‘고추잡채(칭자오러우쓰, 青椒肉絲)’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비교적 규모가 있는 중국요리 음식점에서 볼 수 있는 회과육(후이궈러우, 回鍋肉), 위샹러우쓰(魚香肉絲), 쏸라탕(酸辣湯) 등도 있다.
사진 5 한국의 중국요리 깐쇼새우(간샤오샤런, 乾燒蝦仁)
사진 6 한국의 중국요리 마파두부(마포더우푸, 麻婆豆腐)
사진 7 한국의 중국요리 고추잡채(칭자오러우쓰, 青椒肉絲)
사진 8 한국의 중국요리 회과육(후이궈러우, 回鍋肉)
사진 9 한국의 중국요리 어향육슬(위샹러우쓰, 魚香肉絲)
사진 10 한국의 중국요리 쏸라탕(酸辣湯)
1970년대 후반부터 ‘사천요리’가 중국요리를 대표하는 요리로 인식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사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국적 불명의 요리가 생겨날 정도로 ‘사천요리’의 인기는 대단했다. ‘사천탕수육’과 ‘사천짜장’의 탄생이 그 유행과 무관하지 않다. 아래의 기사를 보면 한 때 사회적으로 “‘사천요리’가 바로 중국요리이다”라는 인식이 있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림 1 1976.02.13. 동아일보 6면 사회 기사(기획/연재)
- 위 기사의 일부 내용 -
名聲(명성) 날린 泗川料理(사천요리)
폐가가 다된 이건물에 현재 중국인 10가구가 사는데 한국인으로는 중국인의 부인2명뿐이다. 이건물관리인 鄭允分(정윤분)부인(52)은 빙긋이 웃을뿐 입을 떼지않는다. 꽃무늬로 아로새긴 난간엔 헌누더기조각이 바람에 펼럭이고 빛바랜 하늘색덧문도 낙서투성이다.
위 기사의 제목은 〈名聲(명성) 날린 泗川料理(사천요리)〉이다. 기사의 내용은 한때 한국 중국요리의 상징과도 같았던 ‘중화루(中華樓)’의 명성은 온데간데없고 빛바랜 낡은 건물이 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오자(誤字)는 물론이고 중국요리가 ‘사천요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한국 중국요리 음식요금표〉를 보면 ‘짬뽕’, ‘우동’, ‘덴뿌라’와 같이 일본식 이름으로 실제 일본사람들이 즐겨 먹는 메뉴도 찾아볼 수가 있다. 즉 중국요리도 아닌데 일본어로는 ‘오므라이스(オムライス)’라고 하는 일본요리 ‘오므라이스’가 그것이다. 이 무렵 중국요리 메뉴에 ‘깐쇼새우’, ‘고추잡채’ 등 ‘쓰촨요리’도 같이 등장한다.
사진 11 1983년 중국요리 음식요금표
사진 12 1980년대 중·후반 중국요리 음식점 메뉴
1970년대까지만 해도 없었던 일본 음식인 ‘오므라이스’가 1980년대 들어서 중국요리 메뉴에 등장했다는 것은 1980년대 전후로 일본과의 왕래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실제로 그 시절 한국의 화교들은 외국인으로서 출국이 비교적 용이했고 많은 화교 젊은이들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 중국요리 음식점에서 일했다.
일본 화교들은 대부분이 광둥성과 푸젠성 출신이 많기 때문에 일본의 중국요리는 광둥성 일대의 ‘웨차이’과 푸젠성 일대의 ‘민차이’의 색채를 띠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쓰촨요리’인 ‘촨차이’도 있다. 일본의 ‘촨차이’는 1958년 중국 쓰촨성 출신의 중국계 일본인 1세인 陳建民(ちん けんみん, 1919~1990)이 NHK의 『きょうの料理(오늘의 요리)』에서 ‘쓰촨요리’를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접근 가능한 재료로 대체하여 요리를 소개함으로써 ‘쓰촨요리’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陳建民은 프로를 통해 소개한 레시피를 모두 공개함으로써 일본 전역의 중국요리 음식점에 ‘쓰촨요리’ 메뉴가 생겨났다. 그 중 위에서 나열한 한국의 ‘쓰촨요리’ 깐쇼새우(간샤오샤런, 乾燒蝦仁), 마파두부(마포더우푸, 麻婆豆腐) 고추잡채(칭자오러우쓰, 青椒肉絲), 회과육(후이궈러우, 回鍋肉), 위샹러우쓰(魚香肉絲), 쏸라탕(酸辣湯) 등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사진 13 왼쪽 陳建民(ちん けんみん, 1919~1990)
이상, 한국 중국요리 속의 ‘사천요리’ (혹은 ‘쓰촨요리’) 즉 ‘촨차이’가 한·중 양국의 교류가 전혀 없던 시절 어떤 경로로 한국에 유입되었는지를 알아보았다. 한국의 ‘촨차이’는 1958년 쓰촨성 출신 중국계 일본인 1세인 陳建民씨를 통해 일본에 소개되기 시작했고, 소개하는 과정에서 일본 ‘현지화’가 되었으며 다시 한국 화교들을 통해 한국의 중국요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천탕수육’, ‘사천짜장’과 같은 정체모를 요리가 생겨났던 것이다. 얼마 전 TV 프로에서 매우 이름 있는 중국요리 셰프조차 ‘사천요리’의 진수를 보여준다면서 ‘사천탕수육’을 소개하는 것을 보았다.
탕수육의 정확한 중국명은 ‘탕추러우돤(糖醋肉段)’이다. 중국 산둥성 지역의 유명한 요리이다. 사천요리가 아니라 당연히 ‘루차이’에 속한다. 짜장면은 ‘북경요리’이다. 이 또한 ‘루차이’에 속한다. ‘루차이’는 ‘중국의 8대 요리’ 중에서도 으뜸이고 ‘중국의 4대 요리’ 중에서도 으뜸이다. 위에서 나열한 ‘루차이’ 중 해삼탕(海蔘湯)의 정확한 명칭 충바오하이선(葱爆海参)은 중국에서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요리로 꼽힌다. 짜춘권(자춘쥐안, 炸春卷)은 입춘(立春)에 먹는 계절음식이며 춘쥐안(春卷) 중 최고의 춘쥐안 요리로 평가 받는다. 난자완스(난젠완쯔, 南煎丸子)는 108가지 요리로 유명한 만한전석(滿漢全席) 중에 한 메뉴이다. 잡탕(자반, 雜伴)의 정확한 명칭은 하이자반(海雜伴)이다. 후에 전가복(취안지아푸, 全家福)으로 불리면서 1949년 10월 1일에 신중국 건립 축하 만찬의 메뉴로 선정될 정도로 유명하다. 해삼탕(海蔘湯)과 견줄만한 요리이다.
사진 14 충바오하이선(葱爆海参)
사진 15 자춘쥐안(炸春卷)
사진 16 난젠완쯔(南煎丸子)
사진 17 하이자반(海雜伴), 취안지아푸(全家福)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너무 흔해서 그런 것일까? 우리는 한국의 중국요리 ‘루차이’를 다소 소홀히 대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 것 같다.
【한국중화요리, 그 '식(食)'과 '설(說)' 18】
주희풍 _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참고문헌
陳建民(1996) 《さすらいの麻婆豆腐―陳さんの四川料理人生》 平凡社ライブラリー.
张立辉, 李平(2012) 《舌尖上的中国美食大全集》 中国画报出版社, Kindle电子书.
王學太(1989) 《中國人的飮食世界》 中華書局(香港)有限公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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