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회과학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 제일의 싱크탱크 중 하나이다.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싱크탱크와 비교해도 항상 수위를 차지한다. 약 40개의 연구소, 3천여 명의 연구 인력과 더불어 3천여 명의 석·박사 학생까지 규모면에서 다툴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규모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영향력도 권력자들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국무원 발전연구중심 정도가 상대가 될 뿐이다. 중국사회과학원이 다른 나라의 싱크탱크와 다른 결정적인 차이는 중국공산당의 직접적인 영도를 받는 국무원의 직속 기관이라는 점이다. 석사, 박사를 배출하고 핵심 인원인 연구원들이 주로 연구성과에 따라 평가를 받으며 대외적인 교류의 대상이 학술기관이라는 점에서 명백히 학술·연구기관이지만, 시진핑 주석이 2017년 중국사회과학원의 40주년 기념 축전에서 밝혔듯이 기본적인 임무는 당과 국가의 정책결정에 봉사하는 것이다.
이처럼 거대한 규모와 특수한 지위를 갖는 중국사회과학원에 최근 몇 가지 변화가 발생했다. 이러한 변화가 중국에서 학술과 교육과 관련된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지는 더 지켜봐야 하지만, 중국사회과학원의 위상을 고려하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먼저 중국사회과학원은 이전까지 석사와 박사 양성에 국한되었던 교육기능을 확대하여 학부생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2016년 교육부의 승인을 받아 중국사회과학원 산하에 중국사회과학원대학을 설립했다. 중국사회과학원의 기존 석·박사 과정을 대학으로 옮기고 아울러 2017년부터 학부생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390명의 학부생이 입학했으며, 2018년도 학부생 모집 정원은 396명이었다.
중국사회과학원의 교육기능 확장은 사실 대외적인 변수가 주요했다. 중국공산주의청년단, 즉 공청단(共青團) 중앙의 직속 교육기관이었던 중국청년정치학원의 학부 교육기능을 폐지하면서 이를 중국사회과학원으로 이전한 것이다. 결코 공식적인 해석은 아니지만, 이는 공청단 세력, 이른파 '퇀파이(團派)'를 억제하려는 시진핑 정권의 정책 방향이 일정 정도 반영되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갑작스레 학부 기능을 떠맡게 되었지만, 현재 중국사회과학원대학 학부의 합격점수, 요즘 우리의 교육환경에서 유행하는 말로 ‘입결’을 보면, 학부 모집은 대성공이다. 베이징대학과 칭화대학만큼은 아니지만, 그 다음을 차지하는 런민대학와 푸단대학을 위협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성급(省級) 지방별로 각 대학의 입학 인원을 할당하는 중국의 특수한 대학입시 체제와 워낙 작은 모집인원이 함께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수두룩하고 보증된 연구능력과 영향력을 갖춘 중국사회과학원이 아니었다면 신생 대학이 달성하기 어려운 성과다.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청년정치학원은 결코 이 수준이 아니었다.
이제 두 차례 학부생을 모집한 상황에서 그 효과를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중국의 대표적인 정책 싱크탱크가 미래 중국의 고급 엘리트를 더 많이 흡수하게 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몇 십 년 뒤에 기존의 최고 대학들 출신보다 더 국가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이며 정책 지향적인 엘리트 집단이 추가될 것이다.
학부생 모집보다 더 주목할 만한 변화는 중국역사연구원(中國歷史研究院)의 창립이다. 2019년 1월 3일 공식 창립된 본 연구원은 얼핏 중국사회과학원의 역사 관련 기존 연구소들을 단지 한데 묶은 것처럼 보인다. 대만연구소가 빠지고 근현대 전의 중국 역사를 다루던 역사연구소가 이름을 고대사연구소로 변경했지만, 각각 고고학·근대사·세계역사·변경 등을 다루는 연구소들은 중국사회과학원 역사학부가 그대로 옮겨 갔다. 여기에 새롭게 역사이론연구소가 추가되었다. 이에 따라 고고(考古)·고대사·근대사·세계역사·변강(邊疆)·역사이론 등의 6개 연구소가 중국역사연구원을 구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데 묶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역사 연구의 위상이 크게 제고되었으며, 각급 연구소들도 영향력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역사연구원의 원장은 중국사회과학원 부원장이 겸직한다. '원(院)' 예하에 다시 '원'을 두는 것은 우리로서는 어색하지만, 따라서 중국역사연구원이 중국사회과학원과 별도의 조직이 되는 것도 아니며 소속 기관에서 탈피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장관급인 부급(部級) 중국사회과학원 바로 아래의 차관급인 부부급(副部級)이라는 점에서 중국역사연구원의 높은 위상이 확인된다. 또한 관계자에 따르면, 베이징 교외에 별도의 건물을 짓고 있으며, 전체 인원과 연구소별 인원도 크게 확대될 예정이다. 이를 합치면 100명 이상의 연구 인력이 증원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주석의 창립 축전은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견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하며, 역사 연구가 사회과학의 기초이고, 역사 유물주의의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작금의 중국 정치의 상황을 고려하면, 특이한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정치화와 수단화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많다. 특히 새롭게 추가된 역사이론연구소는 아직 실체가 불분명하지만, 역사 유물주의의 강조와 중국에서 '이론(理論)'이 의미하는 바를 고려한다면 역사의 이데올로기화를 위해 역할을 하게 될 듯하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이른바 '동북공정'을 겪은 우리로서는 달갑지 않을 수 있다. 동북공정은 역사 연구가 국내적인 정치화를 넘어 국제정치화되면 양국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걱정을 하기에는 너무 이르긴 하다. 중국 관계자에 따르면, 동북공정으로 인한 한중 관계의 악화로 인해 중국 국내적으로도 상당한 비판과 반성이 있었다고 한다. 실제 한때 동북공정의 가장 뜨거운 감자였던 고구려사는 현재 주요한 연구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동북공정은 또한 역사의 정치화가 필연적으로 역사의 국제정치화를 불러온다는 점도 드러내었다. 이런 점에서 중국사회과학원의 변화에 따라 예상되는 역사 연구의 위상 제고, 역사의 정치화·수단화·이념화가 중국의 변화와 한중 관계에 어떠한 변화를 미치는지 조심스럽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조형진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