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칼럼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알랭 바디우는 루이 알튀세르의 제자 가운데 하나로, 68혁명 당시 마오주의 좌파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며,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열렬히 옹호했던 사람이다. 다른 제자들(에티엔 발리바르 등)은 문화대혁명에 대해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거나 또는 그렇게 돌아섰지만, 바디우는 지금까지도 그것을 고집스럽게 지지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런 바디우의 특이한 입장은 그의 독특한 진리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자신의 책 <윤리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한 사건에 대한 충실성의 실재적 과정을 ‘진리’(하나의 진리)라고 부른다. 그 충실성이 상황 속에서 생산하는 것이 바로 진리이다. 예컨대 중국 문화대혁명과 프랑스 68년 5월이라는 두 개의 서로 얽혀진 사건에의 충실성을 사고하고 실천하고자 했던 1966년에서 1976년 사이의 프랑스 마오주의 정치가 그것이다.”
이렇게 바디우는 중국 문화대혁명과 프랑스의 68혁명을 진리적 사건이라고 보며, 그 사건들에 대한 충실성(fidélité)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윤리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그 사건들이 이후 역사 속에서 어떤 실패를 경험했든지 간에 그것들이 당시 정치 상황 내에 어떤 “내재적 단절”을 가져온 한에서 여전히 배반되어선 안 되는 것으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바디우에게 진리란 기존의 체계 및 그 체계를 다소간 합리적으로 설명하거나 정당화하는 지식이 가지고 있는 어떤 공백을 명명하는 ‘사건’으로 발발하며, 그런 사건이 일단 발발하면 그것은 진리과정의 담지자인 ‘주체’의 ‘충실성’에 의해 보존되어야 한다.
좀 더 차근차근 설명해보자. 바디우는 수학의 집합론을 가지고 존재론을 해석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저서 중 하나인 <존재와 사건>에서 바디우는 존재론이야말로 철학의 본령이라는 기존의 통념을 뒤집고 존재론은 오히려 수학의 영역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필연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론의 법칙들을 연구하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 수학(특히 집합론)이며, 철학은 오히려 이러한 존재론적 필연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다른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철학이 연구해야 할 이 다른 것, 그것이 바로 ‘사건’이다. 바디우가 말하는 ‘진리’는 우발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이러한 사건을 통해서만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20세기 초에 발전된 제르멜로-프랭켈의 집합론에선 이런 사건 개념은 어떤 자리도 부여받지 못한다. 제르멜로와 프랭켈은 자신들의 집합론의 논리적 필연성을 확립하기 위해 자신들의 이론 구성의 출발점에서부터 하나의 근본적인 배제를 행할 수밖에 없었다. 곧 ‘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분으로 가지고 있는 집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그것이다. 만일 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분으로, 즉 자신의 원소로 가지고 있는 집합이 존재한다고 말하게 되면, 집합론 전체가 해결 불가능한 모순에 부딪혀 무너져 버리고 만다(이는 ‘러셀의 패러독스’라고 알려져 있는 것 때문이다). 사실 보통 우리가 대하는 집합들은 자기 자신의 이름을 원소로 가질 수 없다. 예컨대, 산이라는 집합 안에 백두산, 한라산 등은 들어갈 수 있지만, 단적으로 ‘산’이라는 원소가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디우에 따르면, 자기 자신의 이름을 원소로 갖는 집합이 존재할 수 있다. 예컨대 Non-Red라는 집합은 빨갛지 않은 것들의 집합이다. 빨갛지 않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거기에 포함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Non-Red라는 집합 자체도 빨갛지 않기 때문에 그 집합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즉 Non-Red라는 집합은 자기 자신의 이름을 원소로 갖는 집합인 것이다. 바디우는 바로 자기 자신의 이름을 원소로 갖는 이런 집합이 역사 속에서 출현할 때, 그것이 바로 진리 사건이라고 말한다. 즉 그것은 집합론의 필연성 내에 은폐되어 있는 ‘공백’을 명명함으로써 그 필연성을 무너뜨리는 하나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바디우는 정상적 집합들은 모두 상황의 상태(État de situation)를 이룬다고 말하는데, 현재의 상황이 어떤 필연성에 의해 조직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자신의 이름을 원소로 갖는 비정상적인 집합은 그런 상황의 필연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여기서 상태라는 말로 번역된 État는 중의적인 말로 그것은 ‘국가’로도 번역될 수 있다. 바디우는 이런 말을 통해, 국가는 하나의 정상적 집합으로서, 그 안에 어떤 필연적 논리 속에서 자신들의 부분들을 포괄하는 어떤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모든 정상적 집합이 그렇듯이, 그것은 배제하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자신의 질서에 부합하지 않은 것들은 그 집합에 포함될 수 없는 것이다. 국가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자신의 질서에 따르지 않는 것들을 배제함으로써 국가는 수립된다. 반대로 비정상적인, 자신의 이름을 원소로 갖는 집합은 오히려 배제된 것들의 집합이다. 앞에서 우리가 Non-Red라는 집합의 예를 든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Red에서 배제된 것들의 집합인 것이다. 이런 배제된 것들이 하나의 집합으로 역사 속에 출현할 때, 정치에서 그것은 혁명적 사건으로 출현한다.
이제 우리는 바디우가 어떤 의미에서 중국의 문화대혁명(그리고 프랑스의 68혁명)을 진리 사건이라고 보는지 이해할 수 있다.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은 당의 국가화(관료제화)를 중단시키고 당을 그 외부로부터 공격하기 위해 행한 혁명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배제되었던 자들이 하나의 집합으로 출현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오의 유명한 슬로건인 “모든 반역은 정당하다”(造反有理)라는 말에 따라 문화대혁명에 가담했던 많은 청년들은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 과정에서 혁명의 적으로 배제되었던 전-부르주아지의 자식들이었다. 마오는 이들을 동원함으로써 당시의 상황상태, 즉 당시의 국가를 해체하려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바디우에게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파리코뮌, 러시아혁명, 중국의 인민해방전쟁 등과 함께 국가를 해체하고 사멸시키려고 시도했던 혁명적 사건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우리가 첫 번째 칼럼에서 논했던 마오에 대한 인터뷰(버소)에서 바디우는 이렇게 말한다. “공산주의적 정치 추구의 근본적인 경험은 문화혁명이지 소비에트 국가가 아닙니다. 오늘날 러시아와 중국은 모두 자본주의 국가이며, 그와 같은 것으로서 그것들은 정치사상과 관련해서 나에게 어떤 흥미도 주지 못합니다. 당분간 마오는 사회주의 국가 내에서 대중행동에 의해, 상황을 혁명적인 방식으로 공산주의 쪽으로 맞추어 나가려고 시도했던 그 최후의 위대한 역사적 실험과 연계된 고유명사입니다. 마오는 국가란 공산주의적 해결책이 아니라 그 혁명의 새로운 콘텍스트일 뿐이라는 것을 사유했던 첫 번째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는 바디우의 이런 견해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사유하기에 충분한 것인지 비판적으로 질문해봐야 할 것이다. 마오의 “혁명적” 시도는 왜 처참하게 실패 했을까에 대해서 말이다. 바디우는 문화대혁명의 실패는 인정하지만, 이 실패에 대한 설명은 제공치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는 문화대혁명을 단순히 마오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 강화하려고 했던 폭력적인 시도였다고 보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적어도 그 점에 대해 바디우는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가 있다.
【프랑스의 마오 3】
최원 _ 단국대 철학과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