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랑받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아마도 신데렐라 이야기일 것이다. 유럽에서의 페로(Charles Perrault)나 그림(Jacob & Wilhelm Grimm)형제가 정리한 신데렐라 이야기, 중국에서의 당나라 단성식(段成式)이 편찬한 『유양잡조(酉陽雜俎)』의 섭한(葉限)이야기, 한국에서의 콩쥐팥쥐 이야기 등 존재형식은 다양하지만 신데렐라 이야기의 얼개는 대부분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계모와 이복자매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착한 여자아이가 어떤 신비로운 외부의 힘을 빌려 어려움에서 벗어나는데, 어려움을 벗어나서 여자아이가 도달한 행복은 훌륭한 남성과의 결혼을 통해서 얻어진다.
중국형 신데렐라 섭한의 이미지(출전 : 바이두)
오랫동안 대중의 인기를 누려왔던 이 이야기는 그러나 현대세계에서는 수많은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신데렐라 이야기에 대한 가장 큰 도전은 페미니즘 쪽에서 제기되었다. 위에서 소개한 신데렐라 이야기들에서 기본적으로 남성은 이야기가 전개되는 핵심 세계의 밖에 존재한다. 여성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견제하고 싸우고 질투하면서도 남성의 구원에서 삶의 가치를 찾는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신데렐라형 여성이 도달한 행복은 부와 권력을 가진 잘생긴 남자와의 결혼을 통해서 구현된다.
사실 신데렐라 이야기는 착함에 대한 보상에서 나타나는 수동성, 경쟁자의 제거, 권세 있는 남성과의 결혼을 행복으로 보고 있다는 점 등, 매우 세속적이고 비윤리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권할 만한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종교학자이면서 인류학자인 나카자와 신이치(中澤新一)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결혼을 통한 탈신분화를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시대의 여성들이나 현대인에게 아주 매력적인 이야기일 수밖에 없음을 지적했다.
그런데 중국 쪽 자료에 등장하는 섭한 이야기에는 결혼 이후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중국인들이 전세계 신데렐라 이야기의 원형이라고까지 주장하는 섭한 이야기는 기록을 남긴 단성식이 중국 남부 출신의 하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정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원문은 “南人相傳”으로 시작. 어쨌든 한족 전통과 섭한이야기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오히려 동남아 쪽과의 연결성을 지적하는 견해가 설득력이 있다). 대부분의 신데렐라 이야기가 행복한 결혼으로 마무리 되듯이 섭한도 계모와 이복 자매들의 학대를 마법으로 선물받은 황금신발을 매개로 벗어나서, 이웃 섬나라의 강력한 왕의 부인이 된다. 그러나 이 결혼이 섭한의 착함에 대한 보상인지, 섭한이 가진 신비한 물고기 뼈(보물을 주는)에 대한 왕의 욕심 때문인지는 불명확하다. 오히려 마지막 단락은 왕의 세속적 욕망이 섭한과 결혼한 이유였던 것으로 추측하게 한다. 왕이 욕심을 너무 부리자 물고기 뼈는 신비한 능력을 잃게 되고, 왕은 물고기 뼈로 얻은 보물들을 후일을 위해 바다 근처에 숨겨두지만 이 보물들은 조류에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결혼 이후에 섭한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이야기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원래 구전되던 섭한이야기는 과도한 욕심으로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국왕의 모습을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과한 욕망을 경계하고자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부분의 신데렐라 이야기는 신데렐라가 잘생긴 왕자를 만나서 행복해졌다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행복을 가져주는 매개물은 실제로는 물질이다. 그 물질이 신데렐라의 억울함에 대한 보상이고 그것은 외적 아름다움, 빛나는 구두 등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자매들이 신데렐라를 학대하는가? 왜 신데렐라에게만 기적이 오는가, 왜 그 기적이 바로 신데렐라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가, 왜 신데렐라는 왕자님(혹은 유력자)과 결혼해야 행복해 지는가 보통 남자와 결혼하면 행복해질 수 없는가 등등.
그런데 이러한 신데렐라 이야기에 내포된 출세지향의 과도한 세속성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있었다. 선교사 등을 통해 유럽의 신데렐라 이야기를 들은 미크마크족 인디언들은 일반적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우선 미크마크 족 신데렐라에서 계모와 배다른 자매라는 갈등의 핵심적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홀아비와 세 딸, 그 중에서 몸집이 작고 약해서 병치레를 자주하는 막내가 신데렐라로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한다. 의붓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편견의 상당부분은 신데렐라 이야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으나 미크마크족은 이 편견의 요소를 제거해 버린 것이다.(포르투갈에서 전승되는 ‘아궁이 고양이’ 이야기에서도 비슷한 설정인데 그 영향 때문인가?)
물론 미크마크 족의 신데렐라 이야기에서도 결혼은 핵심적 소재이고 결혼 대상이 되는 남성은 위대한 사냥꾼이며 영혼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신의 보호를 받는 ‘특권적 존재’이다. 그러나 이 남자는 욕망에 찌든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점에서 다른 이야기들과 구분된다. 권력도 물질보다는 영적인 힘에서 나온다고 믿는 미크마크 족 인디언들은 오직 선한 사람들만이 그 남성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함으로써 특권적 남성의 세속적 요소를 어느 정도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따라서 돈과 권력과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는 남성’을 찾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신데렐라와 ‘보이지 않는 남성’을 연결시킬 매개물로서의 마법과 그에 기반 한 세속성 역시 제거되었다.
기성의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달리 미크마크 족의 신데렐라는 “누덕누덕 기운 듯한 피부의 소녀 혹은 불에 덴 흉터가 있는 소녀”로 불릴 정도로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소녀가 자매들의 방해를 이겨내고(이 점이 중요하다. 마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보이지 않는 남자를 볼 수 있게 되면서 아름다운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되고 “보이지 않는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말하자면 기존의 신데렐라는 외부의 힘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고 그러한 기적의 흔적(=구두)에 힘입어 훌륭한 남자를 만나게 되지만, 미크마크 족의 신데렐라는 더럽고 못생긴 채로, 오직 맑은 영혼의 힘만으로 보이지 않는 남자를 스스로 찾아가 만나고 그래서 스스로 행복을 찾는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사실 신데렐라 이야기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빠져들기 쉬운 상식화된 편견을 상징한다. 주로 디즈니 만화영화를 통해 그리고 복제된 구미의 신데렐라 이미지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미크마크족의 신데렐라는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그래서 여전히 욕망의 신데렐라 이야기는 다양한 형태로 복제되고 재생산된다.
지난 12월 중순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개혁개방 40주년 경축식에서 과거를 회고하며 견지해야할 점을 9가지로 정리했다. 그리고 그 핵심은 바로 공산당지도, 마르크스주의 견지 등이었다. 사실상 시진핑 등 중국공산당은 중국이 공산당이라는 마법을 통하여 부강한 신데렐라로 재탄생되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49년 중화인민공화국 출범이래 끊임없이 반복되었던 주장으로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공산당이야말로 사실상 중국에서 변하지 않은 유일한 존재였다. 그래서 그들에게 실제 대중들이 경험하는 현실적 삶의 다양한 모습들은 인식되기는 하나 존재하는 여러 가지 문제 중 하나일 뿐이었다. 공산당은 무오류의 존재로 만능의 존재이므로 당의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중국사회는 개선되어 나아갈 것이었다. 그러나 신데렐라 이야기의 유효성이 사라졌듯이 공산당 역시 전능한 마법사가 아니며, 중국 국민 역시 더 이상 신데렐라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점이 진지하게 성찰되지 않는다면 신뢰의 위기가 중국을 뒤덮을 것이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공산당의 위기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김태승의 六十五非 8】
김태승 _ 아주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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