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부가 일대일로 추진 과정에서 해외에 거주하는 5천만-6천만 명에 달하는 화교화인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그러한 정책의 배경에는 중국 근현대사에서 화교화인의 역할을 보면 분명해진다.
중국은 근대시기 만성적인 무역적자 국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경제가 작동한 데는 해외 거주 화교화인의 본국 송금, 그리고 화교화인의 본국 투자가 큰 버팀목이 됐다. 손문을 비롯한 혁명파가 신해혁명을 성공시키고 중화민국을 건국한 데는 화교화인의 재정적인 지원과 직접적인 혁명 참가였다. 손문이 화교화인을 ‘혁명의 어머니’라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또한 화교화인은 중일전쟁 시기 중국국민당과 공산당군에 막대한 군자금을 후원하고 직접 군인으로 참전, 항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중국정부가 1978년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하여 중국의 고도경제성장을 이끈 것은 외국의 직접투자였는데, 그 절반은 동남아, 대만, 홍콩의 화교화인 자본이었다. 중국의 고도경제성장은 곧바로 중국에 투자한 화교화인 기업을 성장시키는 동반성장을 달성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본다면, 중국정부가 처음 일대일로 정책을 구상할 때 해외 화교화인의 존재를 고려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은 1950년대와 1960년대 고도경제성장을 달성한 후, 1970년대와 1980년대 동남아 지역에 자원 및 인프라 투자 그리고 현지 공장 건설을 적극 추진했는데, 지금의 일대일로 정책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 간에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진출한 지역에 일본은 화교화인과 같은 자국민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본기업은 동남아 직접투자 과정에서 화교화인의 인적자원과 기업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의 입장에서 연선 국가에 화교화인의 인적자원과 풍부한 자본이 존재하는 것은 일대일로 정책 추진에서 유효한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해외의 화교화인의 입장에선 중국정부와 기업의 거주국에 대한 막대한 직접투자는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가져다 줘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일대일로 정책 추진은 아직 초창기인 만큼 중국정부가 화교화인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방안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중국정부 내에 이 문제를 담당하는 기관은 국무원 산하 화교화인 업무를 담당하는 교무판공실(侨务办公室)이다. 교무판공실은 2015년 6월 북경에서 세계화교화인공상대회(世界华侨华人工商大会)를 개최했다. 이 대회는 80개 국가 및 지역에서 화교화인 단체의 대표 450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리커창(李克强)총리는 이 대회에 참석한 화교화인 대표에게 중국정부의 일대일로 정책 추진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교무판공실은 2017년 6월에 북경에서 제2회 세계화교화인공상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는 105개국에서 300여명의 화교화인단체 대표가 초청되었다. 이 대회는 일대일로 추진에서 화교화인이 다양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행안이 확정했다. 폐막식에서 <일대일로 건설 강화를 위한 화상 조직의 협력 및 참여 선언서>가 공포되었다. 구체적인 시행 방안으로는 세계 화교화인과 일대일로를 연결시켜주기 위한 정보발신플랫폼 및 홈페이지 개설 추진, 중국과 화상 기업 전자상거래 협력네트워크 구축, 연선 국가 거주 화상 정보 데이타베이스 구축 등이 포함되었다.
중국의 지방정부와 대학도 일대일로 추진 과정에서 각 성 출신의 화교화인에 주목하여 각종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개최 연도가 빠른 심포지엄부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015년 2월 23일 복건성 천주(泉州)에서 21세기 실크로드경제포럼이 개최되었다. 2016년 11월 7일 화교대학(华侨大学)이 “화교화인과 일대일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2017년 절강성 여수(丽水)에서 제1회 국제이민과 해외화인여수심포지엄이 개최되었고, 강소성 강소사범대학(江苏师范大学)에서 “일대일로와 신화교화인 학술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같은 해 11월 25일 흑룡강성 흑하학원(黑河大学)과 중국화교화인연구소가 공동으로 “일대일로와 동북진흥”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이외에 해외 화교화인 단체도 일대일로 문제를 적극 논의하는 장을 만들고 있다. 2년마다 한 번 개최되는 세계화상대회(世界华商大会)가 2017년 미얀마의 양곤에서 2,3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는데, 화교화인의 일대일로 참가 관련한 논의가 이뤄졌다. 일본의 화교화인교수로 조직된 일본화인교수회의는 2018년 11월 3일 상해에서 “일대일로 구상과 중일합작”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화교화인의 일대일로 정책 추진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할 것인지는 일대일로 정책의 큰 이념인 5통의 실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일대일로의 핵심 이념인 5통은 정책소통(政策沟通), 인프라연결(设施联通), 무역원활화(贸易畅通), 자금융통(资金融通), 민심상통(民心相通)이다. 세계의 화교화인은 앞으로 이 일대일로의 5통의 이념 실천 과정에 참가하는 형태로 역할을 할 것이다.
첫째, 정책소통이다. 정책소통은 일대일로 연선 국가 간의 발전전략을 조정하는 것이다. 정책소통은 주로 중국과 연선 국가 간의 외교사안으로 해결되는 만큼 화교화인의 역할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동남아의 거대 화교화인 자본가와 중화총상회 등의 사회단체는 중국과 거주국 간의 외교와 경제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2년마다 1번 개최되는 세계화상대회는 싱가포르 중화총상회와 태국 중화총상회가 주최하는데, 이 행사에는 주최국의 대통령 및 총리가 참석하는 등 적지 않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둘째, 인프라 연결은 연선 국가의 주요 거점 별 육로, 수로, 항만 등의 교통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중국의 해외 인프라 건설은 주로 국영기업에 의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화교화인 기업이 직접적으로 참가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동남아 화교화인 기업 가운데 대형 부동산과 유통기업이 비교적 많기 때문에 간접적인 참가가 기대되고 있다. 동남아 화교화인 자본은 부동산과 유통 분야에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어 고속전철과 항만 건설 후 이들 개발지역에 투자가 전망된다.
셋째, 무역원활화는 일대일로 연선 국가의 원활한 무역을 추진하기 위해 여러 제도적, 보이지 않는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다. 중국과 일대일로 연선 국가 간의 무역액은 중국 총 무역액의 25.7%를 차지하여 비중이 높지 않은 편이다. 주요한 연선 국가는 동남아와 중앙아시아와 같은 개발도상국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동남아와 중앙아시아와 무역을 증대시키는 것은 중국무역의 경계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화교화인 경제는 중국 대륙과 거주국 간의 무역이 활발해지면 활발해질수록 경제적 수혜를 많이 받는 만큼 연선 국가의 화교화인단체는 전반적으로 반기는 분위기이다.
넷째, 자금융통은 일대일로 사업 추진에서 국제금융기구와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일대일로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AIIB와 실크로드기금을 창설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금만으로 일대일로 사업의 모든 영역을 추진하기에는 자금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중국정부가 화교화인자본의 적극 참가를 기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섯째, 민심상통은 일대일로 연선 국가 간 사회적 기반이 되는 인적교류 확대, 문화, 관광, 과학기술분야 교류 협력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다. 중국정부는 화교화인의 거주국과 중국 간의 인적교류, 민간교류, 문화교류의 가교역할을 담당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일대일로의 연선 국가의 국민에게 중국 및 일대일로에 대한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화교화인이 거주국의 시민에게 중국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전파하고, 화교학교와 공자학원 등을 통해 중국어가 가능한 시민을 증가시켜 중국의 국가 이미지와 일대일로의 인식을 제고하려는 의도가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서 화교화인의 역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일대일로 정책이 6년째를 맞이하는 새해에는 화교화인이 5통 분야의 참가가 조금 더 구체화 될 것으로 보이는데 주목해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는 해상실크로드의 중심국가이다. 사진은 남양이공대 화예관 건물
이정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