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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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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유지(Status Quo)'와 균형: 2014년과 2018년의 대만 _ 문경연

필자가 대만에서 현지조사를 하던 2014년은 격동의 한 해였다. 3월에는 대만의 학생들과 시민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한 '해바라기 운동'이 있었고, 그 해 11월에는 대만 역사상 최대 규모로 9개의 선거를 하루에 치뤄냈다. 타이베이(台北), 신베이(新北), 가오슝(高雄)시 등 6개 직할시의 시장과 시의원, 그리고 현과 시의 장과 의원들(縣市長, 議員), 향진시장(鄕鎭市長), 향진시민대표(鄕鎭市民代表), 촌이장(村里長), 원주민구장(山地原住民區長)과 대표(區民代表)등 9개의 선거가 바로 그것이다. 전체 22개 지방정부 중, 당시 집권당이었던 국민당은 15곳 지방정부에서 6곳만을 지켜낼 수 있었고, 최대 야당이었던 민진당은 기존 6곳에서 13곳까지 선전했다. 마잉주(馬英九) 당시 대만 총통은 선거의 결과를 책임지고 국민당 주석직에서 물러났다. 당시의 선거 결과를 '중국'과 급속하게 친해지려고 민의를 무시한 국민당의 실책이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선거의 결과는 2016년 '중국'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대만의 주체성을 담지하는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8년, 다시 9개의 선거를 한꺼번에 치르는 선거가 11월에 있었다. 정치학자들과 논객들은 이를 차이잉원 정부 1기의 심판대로 논평하곤 했다. 또한 국민당을 위시한 정당과 시민단체의 발의로 동성결혼의 법제화와 교육, 반핵, 올림픽 명의 표기 등 10개 사안에 대해 국민투표도 함께 진행했다. 선거의 결과는 2014년과 정반대로 나타났다. 현 집권당인 민진당은 13곳에서 6곳만을, 국민당은 6곳에서 15곳을 지켜냈다. 무소속의 타이베이 시장 커원저(柯文哲)만이 연임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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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2014년과 2018년 선거 비교 현황(국민당: 파란색, 민진당: 초록색, 무소속: 회색)

 

그렇다면, 2년만에 대만의 민심이 바뀐 것일까? 일각에서는 민진당 집권 2년 간 진보세력의 실망, 더딘 경제 회복, 중국의 거세진 압박을 선거 패배의 이유로 해석하기도 한다. 특히 차이잉원 총통의 연임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분석도 적지 않다. 이 모든 것들이 조금씩 영향을 미쳤겠지만, 이는 주로 외부의 요인으로 대만 선거를 분석한 것이고, 가장 간과하기 쉬운 것은 대만 사람들의 실리적인 주체성이다.

 

'나는 남색(藍色, 범국민당 연맹)도 녹색(綠色, 범민진당 연맹)도 아니다'라고 주창하는 필자의 대만 친구는 20년 동안 민진당의 텃밭임을 의심치 않았던 가오슝시의 한궈위(韓國瑜) 국민당 시장 후보 당선을 예로 들었다. 필경, '곧 부자로 만들어드리겠다'는 그의 (다소 허풍스러운) 구호가 20년 동안 움직이지 않던 가오슝 시민들을 움직인 것이다. 물론 그의 당선에는 '중국의 개입'이 있었다는 등, '금권의 개입'이 있었다는 등의 소문들이 무성하기도 했다. 물론 당선 가능성을 거의 점치지 않았던 국민당 중앙에서도 너무 놀랐다는 뜬소문도 함께 말이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대머리를 희화화하여, 가오슝의 인구를 뜻하는 277명의 대머리들과 함께 '가오슝을 밝히겠다'는 전략은 유권자들의 주목을 끌었. 과연 한궈위는 가오슝의 미래를 환하게 밝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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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한궈위와 277명의 '대머리' 지지자들


그리고 아직까지 무소속으로 유일하게, 재선에 성공한 타이베이시 시장 커원저 역시 '남색도 녹색도 아닌' 사람들의 마음을 많이 움직였다. 비단 커원저 시장은 재임 중에 ‘동남아에서 여성들을 사 왔다’는 등 여러 번의 말실수로 결혼이민자들의 공공의 적이 되기도 했지만, 작금의 중국과 너무 친해져서도, 그렇다고 너무 멀어져서도 안되는 대만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다시 한번 4년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커원저의 2기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동성결혼의 민의를 물었던 대만의 국민투표.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동성결혼을 '윤허'하는 것을 민법에 넣자는 것은 부결되었고, 동성결혼에 대한 새로운 법을 만들자는 것이 통과되었다. 동성결혼/평등한 결혼을 교육과정에 넣는 것도 부결되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만의 운동가들이 실의에 빠진 것은 아니다. 뤼치우위엔(呂秋遠) 변호사에 따르면, 국민투표는 민의를 반영하는 하나의 잣대일 뿐,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1986년에는 1명의 운동가뿐이었지만,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300만명의 지지자들이 있다.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문제 역시 계속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국민투표의 조항이 많았던 만큼, 9명을 선출하고 또 국민투표에 답해야 했던 것만큼 대중들은 여러 많은 정보 사이에서 혼란을 겪기도 했다. 이에 SNS에서는 쉽고 간단하게 국민투표를 소개하는 그림들이 공개적으로 소개되었다. 그 중 가장 많이 쓰였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사건지평선(事件地平線)에서 정리한 그림이었다(그림 3). 동성결혼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SNS를 중심으로 대개 10,11,12번에 반대, 13,14,15번에 동의(그림 4), 반대하는 쪽에서는 13,14,15번에 반대를 하라는 움직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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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국민투표의 여러 조항 중 본고에서 특히 주목하는 10~15번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10번은 민법의 결혼의 정의를 이성 간의 남녀 결합으로 한정하는 것에 동의하는지, 11번은 초중교육과정에 동성(결혼) 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것에 동의하는지, 12번은 민법 혼인 규정 외에 다른 형식으로 동성결혼 법을 만드는 것에 동의하는지, 13번은 대만이란 이름으로 국제대회나 도쿄올림픽에 나가는 것에 동의하는지, 14번은 민법으로 동성결혼 관계 성립에 동의하는지, 15번은 11번과 비슷한 내용으로 초중교육과정에 동성교육, 성평등교육이 들어가는 것을 동의하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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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대만의 젊은 층이 자주 사용하는 SNS의 대문 사진에서는 이런 설정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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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대만의 국민투표 결과, 유권자 동의율이 25%가 넘어야 ‘통과’한다

 

이 물음 속에서 가장 동의와 반대 표 차가 적었던 것은 민감한 13번의 물음이었다. 국민투표의 특성 상 동의와 반대의 '결과'만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꼭 모든 대만 사람들이 '대만(Taiwan)'이란 명칭을 반대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결과를 더욱 오인하듯 구글 지도에서는 갑자기 대만 대신 '중화타이페이(Chinese Taipei)'를 나타내는 표식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명명에 따르면, 대만 사람들은 '중국의 타이베이의 사람들(People in Chinese Taipei)'로 고쳐 불러야 한다는 말인가? 그럼 타이중, 타이난, 가오슝 사람들은 '중화 타이베이'의 어디에 속한단 말인가! 올림픽이나 국제 대회를 위해 노력한 선수들을 위해 그 선수들이 국제 대회에서 기량을 뽐낼 수 있게 그래서 자격이 박탈되지 않도록 투표한 사람들의 마음을 힘의 관계가 우선인 (국제관계의) 정글 속에서는 알 리가 없다. 결국 이 힘의 관계 속에서 대만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은 가장 누구도 최대한 다치지 않는 상태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길, '균형'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 '친중' 혹은 '반중'의 잣대로만 작금의 대만을 대하는 것, 혹은 '한국'과의 공통점으로만 대만을 바라보는 것은 대만을 바라보는 편견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문경연 _ 서울대 인류학과 박사수료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모두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다.

[그림 1] 2014년과 2018년 선거 비교 현황(국민당: 파란색, 민진당: 초록색, 무소속: 회색) (출처:
https://2018elections.tvbs.com.tw/vote.html)

[그림 2] 한궈위와 277명의 '대머리' 지지자들(출처: https://news.ftv.com.tw/news/detail/2018B23U18M1)

[그림 3] (출처: http://se.piee.pw/BTNPD)

[그림 4] (출처: 필자의 SNS 사진, '2018-11/24投票去'의 프레임을 적용하였음)

[그림 5] (출처: http://db.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8112506271)

뤼치우위엔 변호사의 발언에 대한 기사 출처는 https://www.storm.mg/lifestyle/653356?utm_source=line&utm_medium=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