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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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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원 신간 소개: 한반도 화교사; 화교가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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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2018.10), 한반도 화교사: 근대의 초석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경제사, 동아시아, 760

 

이 책은 중국인의 한반도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의 시기 조선화교의 경제활동에 대해 분석한 것이다. 일본에서 2012년 출판한 조선화교와 근대 동아시아(朝鮮華僑近代東アジア)의 내용을 번역하고 업데이트했으며, 그 이후 연구한 조선화교의 중화요리점, 양복점 및 이발소 그리고 건축회사에 관한 연구 성과를 첨가했다.

 

이 책은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의 각 도서관 및 연구기관에 소장된 1차 자료를 주로 활용했다. 대만 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당안관 소장의 주한사관보존당안(駐韓使館保存檔案), 한국 국가기록원 소장의 조선총독부 각국영사관왕복철(各國領事館往復綴), 대만 국사관(國史館) 소장의 외교부당안(外交部檔案), 중국 제2역사당안관 소장의 왕위외교부당안(汪僞外交部檔案), 왕위교무위원회당안(汪僞僑務委員會檔案), 왕위행정원당안(汪僞行政院檔案), 일본 동양문고(東洋文庫) 소장의 중화민국정부(왕정위정권) 주일대사관당안(中華民國國民政府(汪精衛政權)駐日大使館檔案), 인천시립박물관 소장의 화교영취소맥분상세표(領取小麥粉詳細表)인천화교세대별명부(仁川華僑世代別名簿), 인천화교협회소장자료, 대구화교협회 소장의 화상공회성립건축급연관일람표(華商公會成立建築及捐款一覽表)대구화교학교발기급성립(大邱華僑學校發起及成立), 한국금융사박물관(韓國金融史博物館) 소장의 한일은행의 대출에 관한 취체역회결의록(貸出하난 取締役會決議錄)중역회결의록(重役會決議錄), 일본 오사카(大阪) 소재 신용평가기관인 상업흥신소(商業興信所) 발행의 『상공자산신용록(商工資産信用錄)』 등이다. 또한 근대 일본, 조선, 중국에서 발행된 일본어, 조선어, 중국어, 영어로 발행된 32종의 신문, 28종의 잡지를 활용했다. 이러한 문자 사료 이외에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한국화교 11, 북한화교 1, 일본화교 1, 중국 거주 중국인 3명 등을 심층 인터뷰했다.

 

상기의 자료를 활용하여 새롭게 밝혀낸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강점기 조선화교는 직물상점, 삼도업(중화요리점, 양복점, 이발소), 주물업 및 양말제조업, 화농의 야채재배, 화공에 의한 각종 공사와 벽돌조적건축물 시공 등에서 광범위하게 경제활동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일본인과 조선인을 압박할 정도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 둘째, 이와 같은 경제활동은 한반도를 거점으로 중국의 상해, 연태, 만주뿐 아니라 일본을 포괄하는 동아시아 지역을 무대로 펼쳐졌다는 점. 셋째, 조선화교경제는 1931년 화교배척사건과 중일전쟁이라는 양대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아 쇠퇴하며, 그런 가운데서도 중화요리점, 화농의 야채재배업만큼은 해방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발전했다는 점. 넷째, 일본 및 조선총독부의 화교정책은 조선인의 만주 이주를 촉진하기 위해 화공의 조선이주를 일본 국내와 같이 금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제강점기간 내 조선화교가 일본화교 인구보다 23배 많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새로운 사실은 동아시아근대사, 조선근대사, 화교근대사의 연구사에 있어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동아시아근대사의 맥락에서 인구의 이동은 일본제국 내에서 일본조선, 중국대만조선일본만주를 중심으로 검토되어 왔다. 이번의 검토로 중국에서 조선으로 대량의 중국인 이주가 일본제국 내 인구 이동의 중요한 환절(環節)의 하나를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인의 조선 이주가 동아시아 역내 사람, 상품, 정보, 화폐의 이동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다.

 

둘째, 조선근대사에 관한 논의는 그동안 통치자인 조선총독부와 일본 및 일본인과 피통치자인 조선 및 조선인의 관계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조선화교의 경제활동은 일본인과 조선인 양자 모두에게 중국 충격(chinese impact)을 가져다주었으며, 상품시장과 노동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을 고려하면, 일본인조선인에다 화교의 존재도 포함시켜야 근대 조선의 역사상이 명확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셋째, 화교근대사에 관한 기존의 논의는 주로 동남아화교에 편향되어 보편적인 화교학 확립에 걸림돌이 되어왔다. 조선화교는 산동성 및 하북성 출신이 대부분으로 동남아화교 및 일본화교가 광동성, 복건성, 절강성 출신인 것과 다르다. 또한 그 경제활동도 출신지의 영향을 받아 일본 및 동남아화교와 다른 점이 발견된다. 조선화교는 동북아화교로서 동남아화교와 비교되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호비교검토를 통한 화교학 보편성 확립에 기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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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2018.10), 화교가 없는 나라: 경계 밖에 선 한반도화교 137년의 기록, 동아시아, 239

 

이 책은 중국인의 한반도 이주가 본격화 되는 1882년부터 현재까지 137년간의 한반도화교 역사를 알기 쉽게 풀어쓴 대중서이다. ‘한반도 화교는 근대시기의 조선화교, 남북분단 이후 자연스럽게 생성된 한국화교, 북한화교를 아우르는 용어이다. 근대시기부터 거주해 온 노화교뿐 아니라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에 이주한 신화교를 모두 범주에 넣었다. 특히, 신화교는 다시 한족 신화교와 조선족 신화교로 구분하여 서술했다. 이 책의 저본이 된 것은 한반도 화교사: 근대의 초석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경제사와 한반도 화교의 사회사에 대해 쓴 졸고들, 그리고 조선화교와 한국화교에 대한 연구자들의 기존 연구성과를 토대로 15개의 토픽으로 구성했다.

 

한반도 화교사: 근대의 초석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경제사의 목차

 

추천의 글

서장_ 중국인의 조선 이주와 중국 충격(Chinese Impact)’

I부 화교 직물상

1장 화교 직물상의 위상과 형성

2장 화교 직물수입상의 통상망

3장 화교 직물수입상의 조선 내 유통망

4장 조선총독부의 화교 직물상에 대한 대응

51931년 화교배척사건이 화교 직물상에 미친 영향

6장 중일전쟁 시기 화교 직물상의 몰락

I부 보론 화교 경영 행잔의 해방 후 무역활동

I부를 마치며

II부 삼도업(三刀業)

7장 화교 중화요리점의 형성과 발전1880~1920년대를 중심으로

8장 화교 중화요리점의 위기와 응전 1927~1945년의 시기를 중심으로

9장 화교 이발소와 양복점

II부를 마치며

III부 화교 제조업

10장 화교 주물업

11장 화교 양말 제조업

III부를 마치며

IV부 화농(華農)

12장 화농 채소재배의 형성과 발전

13장 화농 채소재배의 위축

14장 중일전쟁 시기 화농의 채소재배 및 판매의 변화

IV부를 마치며

V부 화공(華工)

15장 광량만염전 축조공사의 화공 문제

16장 화교의 성당건축시공 활동(1880~1930년대) 서울과 대구를 중심으로

V부를 마치며

종장 근대사 속의 조선화교

부록 일제강점기 조선화교 회사 신용조사 목록

참고문헌

책을 마무리하며

찾아보기

      

화교가 없는 나라: 경계 밖에 선 한반도화교 137년의 기록의 목차

 

한반도화교는 언제, 어디에서 왔을까?

화교가 오무장공사에서 제사를 지내는 까닭

청국 조계에서 인천차이나타운으로

중국인이 조선에 이주한 이유

한반도화교의 인구 추이 (1883~2015)

한국식 중화요리를 창조하다!

짜장면의 한국화, 그리고 세계화

화교 중화요리점의 비애

명동 고급 중화요리점 아서원의 비화

삼도업(三刀業), 가위와 면도, 식칼 기술로 이룬 경제

상해에서 시작된 첨단 패션의 화교 양복점

싸고 서비스가 좋은 화교 이발소

화교가 주단포목상점을 석권한 이유

비단장수 왕서방의 마지막 후예

화교 주단포목상점의 전성기

조선총독부의 고관세 부과로 쇠퇴의 길을 걷다

솥과 양말 제조에 두각을 나타내다

솥 제작의 달인, 주물업 시장을 장악하다

화교 양말제조의 중심지, 신의주

종교건축을 도맡아 시공한 화교 건축회사와 기술자

명동성당 시공을 주도한 화교 건축기술자

노동시장 판도를 바꾼 화공

화교 농민, 채소재배의 달인이 되다

인천 최초의 채소시장을 열다

채소재배의 경쟁력은?

화농의 쇠퇴, 사라진 왕서방

경제활동에 적극 참여한 북한화교

꾸준하게 채소재배를 해온 북한화교

북한에도 짜장면이 있다!

·중 무역을 주무르는 화교 무역상

한국의 대표 차이나타운: 인천 vs 대림

()화교 차이나타운의 새로운 도약

()화교 차이나타운의 탄생과 급속한 발전

화교 사회는 어떻게 형성되었나?

동향회관의 탄탄한 조직력

화교사회를 결집하는 중화회관중화상회

화교협회, 교민협회, 그리고 북한의 화교연합회

재이주한 지역에서 한화(韓華)의 정체성으로 뭉치다

十一 화교학교의 교육 흐름

화교학교 설립

교동회 중심의 화교학교 운영

중국 정부에 흔들리는 화교의 교육과정

사라져 가는 한국의 화교학교

북한정부에 좌지우지되는 북한의 화교학교

十二 민간신앙과 종교 생활

거선당, 의선당 그리고 달마불교회

107년 역사의 화교 교회

十三 친일과 항일 그리고 중국과 대만 사이

중화민국 시기부터 생겨난 조선화교의 민족의식

경성총영사관 국기 교체사건

범한생 총영사의 친일 활동

격렬하게 펼쳐진 조선화교의 항일활동

국민당과 공산당,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十四 화교배척사건과 차별의 역사

두 차례의 화교 배척사건

평양사건의 피해가 큰 이유

한국화교에 대한 차별

나라 없는 난민

十五 조선족 신()화교와 한족 신()화교 사회

한족 신()화교 사회단체

재한조선족 신()화교 사회단체


※ 신규도서관련 언론 기사 첨부


경향신문 캡처.jpg뉴스1 캡처.jpg


* 기사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뉴시스 : http://news1.kr/articles/?3458664

경향신문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0262057005&code=960205


이외에도

한겨례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67504.html

동아일보 : http://news.donga.com/3/all/20181026/92607130/1

조선일보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6/2018102603373.html?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news

등 여러 신문에도 게재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