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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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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동물 해치 _ 허혜윤

상상의 동물인 해치(獬豸)는 우리에게도 비교적 친숙한 동물이다. 광화문 앞과 경복궁 근정전을 비롯한 고궁에 세워져 있는 돌로 만든 해태가 바로 해치이다. 해태란 원래 해치에서 나온 말로, 중국의 전설 속의 인물인 순()임금 때 형법을 관장한 고요라는 신하가 데리고 있던 동물이다. 해치는 시비를 판단하고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 있어 죄인이 거짓말을 하면 그 뿔로 들이받아 죄인임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아래의 그림이 바로 전설 속의 인물인 고요가 죄수들을 재판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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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상단의 탁자에 앉아 있는 인물이 고요이며 여기에는 다양한 모습의 죄수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가운데 위치한 동물을 자세히 보면 머리에 뿔이 하나 있는 일각수(一角獸)가 있는데, 바로 해치의 모습이다. 여기에서도 해치는 죄수에게 뿔을 대고 금방이라도 들이받을 듯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문헌에 따라 해치는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데 뿔이 없는 경우도 있고 사자와 비슷하게 묘사되기도 한다.


이라는 글자도 원래 해치를 가리키는 글자의 약자로, 해치는 그 특별한 능력 때문에 오랫동안 신수(神獸), 법수(法獸)로 불려왔다.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는 법률을 관장하는 관리들의 복장에 해치 문양을 넣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관리들을 감찰하는 사헌부의 책임자인 대사헌의 관복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또한 해치의 불을 먹을 수 있는 습성 때문에 화재, 나아가서는 재앙을 물리치는 동물로 여겨졌다. 이런 이유로 궁궐에 세워진 해치는 화재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중국 명청시대의 지방관청은 그 건축구조상 관청의 정문 앞에 큰 가림벽을 세웠는데 여기에도 해치를 새겨 넣었다. 당시에는 지방관이 행정과 사법 업무를 같이 처리하였기 때문에 관청의 위엄과 사법질서의 엄정함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해치가 선택되었다.

 

그러나 신령스러운 동물인 해치가 새겨진 관청의 높은 가림벽은 관청과 백성들을 서로 다른 두 세계로 갈라놓았다. 과연 전설 속의 해치의 능력처럼 일반 백성들이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소소한 사건들에서 시시비비가 제대로 가려지고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았을까?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상상의 동물 해치는 엄숙하고 경건한 태도로 중국에서 몇 천 년 동안 당당하게 법률의 화신노릇을 해왔다.


 관습과 중국문화 11


허혜윤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 참고도서

田燾 著, 김지환 등 역, 외면당한 진실-중국 향촌사회의 제도와 관행, 學古房, 2015.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