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이어짐)
심문관 P는 대단히 비대하고 덩치가 크지만 눈은 작았다. 외모와 상관없이 P는 과장으로 불렸고, 능란한 심문 기술자였다.
“이곳에서 24시간 구류는 내 재량으로 할 수 있소. 일본인 하나는 48시간째 여기 있지. 내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하시오. 당신이 아까 소란을 피운 것만으로도 충분히 구류할 수 있소.”
이반은 여권을 찾아 그곳을 벗어날 생각만 가득 차서 진실은 모조리 말하기로 결심했다. 그들의 질문은 집요했다.
“당신 비자 종류가 너무 많아. 중국에서 사업을 한 적이 있는가?”
“없소.”
“사업을 한 적이 없으면서 상무 비자를 받았다고? 이미 법을 위반했군.”
“비자는 여행사에서 고객의 편의를 위해 정해주는 대로 얻었을 뿐이요.”
“여행사? 비자를 대행한다구? 거짓말 하지 마시오. 누가 자기 여권을 여행사에 맡기겠어. 그리고 원래 목적에 합당하지 않는 비자를 얻으면 중화인민공화국 출입국관리법 ***조에 의해 100만원(한화 1억 7천) 이상의 벌금에 처할 수 있소.”
“비자는 주한중국대사관에서 발급한 것이요. 정말 문제가 있다면 벌금을 내야겠죠.”
“벌금 문제가 아니야, 당신이 이걸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면 바로 구속이야.”
그런 식의 심문이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취얼’(Q2- 단기체류비자. 그들은 ‘큐얼’, ‘큐투’라고 말하지 않고 Q한어 병음으로 읽었다)비자는 어떻게 얻었소? 당신의 아내는 그 때 서울에 있었잖아?”
이반은 ‘취얼’을 이해하지 못하고 상무비자를 말하는 줄 알고 한참 엉뚱한 대답을 했다.
“상무랑 아내랑 무슨 관계가 있소?”
“당신 아내는 서울에 있는데, 또 다른 아내를 만나러 비자를 얻었나?”
P는 민망할 정도로 입이 거칠었다. 한참 갸우뚱하다가, 여권을 잠시 돌려받아 비자를 직접 보고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 구채구에 갔을 때 그 비자군.”
“구채구? 그럼 관광이잖아. 당신은 다시 실정법을 어겼소.”
“장인장모 데리고 가족이 함께 간 것이요.”
“그럼 관광 비자를 얻었어야지.”
“그건 내일 법원으로 가서 밝혀 봅시다. 아이들이 너무 지쳤소.”
“내가 언제 내일 내보내 준다고 했나? 지쳤다구? 우리는 이틀 동안 잠도 못 잤어.”
이반은 그제야 그들이 오늘 보내줄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심문이 진행되는 사이 어쩐 일인지 아내와 아이들이 들어왔다. 그들이 아이들에게 사발면을 준비해주었다. ‘장기전으로 가는구나’, 이반은 짐작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반에게도 사발면을 권했지만 사양했다. 그러자 사발면을 권하던 경찰이 빙글빙글 비웃음을 날렸다.
“왜 안 먹겠다는 거지? 싫으면 말라지.”
아내도 그 웃음에 치를 떨며 음식을 거부했다. 그러나 배고픈 아이들은 허겁지겁 면을 삼켰다. 그리고 얼마 후 육중한 P가 선언했다.
“중화인민공화국 **법 **조항에 의거해 당신의 짐을 수색하겠소. 가족들은 다 나가시오.”
가족들이 나간 후부터 질문은 돌연 위구르 문제에 집중되었다. 먼저 휴대전화 SNS(위챗)기록을 모두 조사하면서 한족 이름, 아니 이들과의 대화를 하나씩 짚어갔다.
“이 자는 위구르인인가?”
“아니오, 한족이요.”
대화 내용 중에 그들 눈에는 분명 불순한 것이 하나 있었지만, 하늘이 도왔는지 그는 그걸 건너뛰었다. PC안에 있는 사진도 한 장씩 검토해 나갔다.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들이 궁지에 빠뜨릴 만한 사진도 한두 장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많은 사진을 하나하나 검토하면서도 끄트머리에 있는 그 사진은 못 알아차렸다.
그의 진짜 목적을 알지 못해 이반은 더욱 당황했지만 무턱대고 성실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P는 배낭에서 나온 책과 문서들을 읽어나갔다. 그는 논문 예비 발표문을 발견하고는 쾌재를 불렀다. 거기에 투르크(突厥)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었으니까.
“당신은 동투(東突, 동투르키스탄)의 주요 민족이 무엇이고 주요 언어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이반은 처음에 정말 그 뜻을 몰라 되물었다.
“동투(東土, 동쪽 땅)? 상하이, 저장, 그곳의 주요 민족은 당연히 한족이고 주요 언어는 중국어가 아니요?”
“푸단 대학교 박사생이라는 이가 정말 이렇게 무식한 건가, 아니면 무식한 척하는 건가?”
그는 하얀 종이에 東突라고 썼다. 가련한 이반은 관성대로 진술했다.
“아, 동투. 투르크인들이 사는 땅을 말하는 거요? 남부 신장(南疆)의 주요 인구는 위구르고, 북부는 한족이지요. 카자흐와 몽골도 있구요.”
그러나 정말 하늘이 도왔는지 이반은 옆 종이에서 조어도釣魚島라는 글자를 읽었다. 중국인이 쓴 간체가 아니었다. ‘아, 그 일본인이 이 일에 낚였구나.’ 퍼뜩 정신이 들었다. 동투르키스탄 문제에 비하면 조어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반은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물론, 나는 카스피해 서쪽 터키 땅이 시투(西突), 그 동쪽의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즈스탄이 동투라고 생각하오.”
P는 계속 다그쳤지만 이반은 그 대답을 고수했다. 다행히 P는 카스피해가 무언지 전혀 몰랐다. 그는 이제 동투와 비자를 연결해서 질문을 해댔다. 내가 신장위구르에서 움직인 동선 전체를 알고 있었다. 대략 이런 식이었다.
“모년, 모월, 모일, 당신은 신장위구르자치구 이리 자오수 모처에서 무엇을 하였는가? 대답하지 못하면, ***법에 의거해 당신을 구류하겠다.”
이반은 곧이곧대로 대답을 하였지만, 대답은 대개 “내일 해당 경찰서에서 바로 확인할 테니, 거짓말 할 생각은 하지 마시오” 하고 협박했다. 심지어 신장위구르와 관련이 없는 하얼빈 방문도 문제를 삼으며 내 진술을 모두 거짓으로 몰았다. 드디어 이반은 폭발하고 말았다.
“네가 알고 싶은 것이 도대체 뭔가?(중국어) 이 * 같은 자식(한국어). 너는 나를 동투르키스탄 독립운동과 연결시키려고 모략을 짜고 있지?(중국어)”
이반은 속으로 ‘너 같은 놈이 테러를 부추기는 원흉이야’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대신 당장 P의 서슬 퍼런 위협을 들어야 했다.
“당장, 앉아!”
이반은 되받았다.
“내가 너 따위를 두려워할 줄 아나?”
이반은 창 밖에서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는 아내를 불었다.
“여보 당장 들어오시오.”
사태를 짐작한 아내가 걱정스런 얼굴로 들어왔다. 이반은 아내에게 큰 소리로 말하는 동시에 심문관 무리들에게 화살을 돌렸다.
“여보, 저 개 자식이 나를 투르키스탄 독립운동과 엮고 있어(한국어). 당신들 봐, 나를 이렇게 엮어 넣으려 하다니, 양심도 없나? 여보, 영사관에 전화를 걸고, 당신은 나가시오. 가두고 싶으면 가두라고 해.”
그 자의 언성은 높아졌다.
“영사관에 전화를 할 수 있지만 그러면 바로 구류하겠어. 공 선생(이반), 내가 중국의 법을 교육 시켜주겠다.”
그 때 엄마를 따라 들어온 이반의 13살 큰 아들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
“돼지 같이 무식한 자식이 감히 우리 아빠를 가르치려 하다니.”
이반은 급히 화장실을 청하며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그 사이 아내는 그들과 피말리는 협상에 들어갔다.
“아들아, 오늘 아빠가 돌아가지 못하면 엄마 모시고 먼저 가.”
그러나 아이는 단호했다.
“무슨 소리야, 아빠랑 같이 갈 거야. 아빠가 못 가면 나도 여기서 잘 거야.”
시계는 벌써 세 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반이 취조실을 나와 밖에 잠깐 있는 사이 경관 F(그 역시 여우(Fox)의 이니셜과는 상관이 없다. 물론 여우보다 교활했지만)가 다가와 자못 다른 톤으로 말을 걸어왔다. 이미 그들이 실제로 지쳤는지, 마음을 갑자기 바꿨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상부의 명령을 받고 황급히 밖으로 나가야 하는 모양새였다. 그날 48시간 갇혀 있었다던 일본인도 비척대며 문을 나섰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은 바로는 그 일본인은 여전히 여권을 얻지 못한 듯하다고 했다.) 취조실 안에서 이반의 아내, 그토록 강한 여인이 그들에게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반은 완전히 탈진해서, 차라리 그들이 원하는 것이 돈이라면 더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들을 밖에 두고 다시 취조실에 들어서 그들의 교육을 더 받았다.
“당신 남편은 비자 종류가 너무 많아. 그것을 우리에게 납득시키지 못하면 힘들어.”
아내는 가슴을 치며 대답했다.
“우리 남편은 인생이 풍부한 사람이에요.”
취조하던 자들이 비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인생이 풍부하다구? 그럼 우리들은?”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들이 갑자기 퇴근을 서두른다. 그리고 이반도 구류 없이 훈방조치 된다. 그 이유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들은 분명히 처음부터 그를 가둬 두려고 했는데. 어쩐 영문인지 그들은 그날 일로 밖에 나가서 시비를 걸지 말라는 친절한 당부까지 잇는다.
취조실을 벗어나 다시 정문에서 여권 등록을 하고, 여관에 드니 새벽 네 시. 아내가 서글피 운다.
“우리 아이들이 보통 사람이 아니네요. 그런데 여기서는, 머리 없는 사람 아니면 무턱대고 숙이는 소인배만 살 수 있어요. 이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해요.”
“위구르인이 아닌 것이 다행이구려. 내가 위구르인이었다면 오늘 같은 일로 어쩌면 영원히 갇힐 지도 모르지요.”
중국의 인권문제, 특히 소수민족 탄압은 이제 사회과학을 넘어 윤리학의 영역으로 들어간 듯하다. 가장 보수적인 자료들은 현재 수용소에 갇힌 위구르인이 10만이라 하고, 어떤 자료는 심지어 100만이 넘는다고 한다. 이반의 지인 ***의 위구르인 친구들도 모두 잡혀 들어갔다고 하니 그 수가 엄청난 것은 분명한 모양이다. 아직 어리지만 사태의 부당함에 분개하는 아들에게 이반은 말해줬다.
“갇힌 이들이 나쁜 사람들일까? 그냥 아빠 같이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 말했을 뿐이야. 기억해라, 독재정권 아래서는 용감한 이들이 먼저 갇힌다는 사실을.”
아내의 추측으로는 그들이 영어를 읽지 못해서 Q를 중국어 병음 ‘취’로 읽었을 것이라 한다.
알고 보니 중국인의 배우자가 Q2비자를 신청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취조 중 이 자를 화장실에서 만났을 때는 눈을 내리 깔고 있었다. 1대1에 약한 자라는 것을 그 때 알았다.
【변경에서 바라본 중국 12】
공원국 _ 작가 / 중국 푸단대 인류학과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