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로에서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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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가짜, 나쁜 가짜 _ 김남희

비닐봉지 미역, 골판지 만두와 같은 다양한 가짜 식품에서 브랜드 로고와 철자를 살짝 바꾼 패스트푸드점, 똑같은 디자인에 버젓이 다른 브랜드를 붙인 휴대폰에 이르기까지 과거 중국 시장은 기상천외한 가짜의 전시장이자 불신의 대상이었다. 중국 브랜드가 시장 경쟁력을 확대해가는 동안에도 이들에 대한 미심쩍은 시선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륙의 실수’, ‘차이슨과 같은 농 섞인 별명은 해당 제품의 품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중국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와중에 중국에서 또다시 가짜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그런데 이 가짜가 이제까지 보아온 것과는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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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개봉한 영화 <나는 약의 신이 아니다(我不是藥神, 이하 약의 신’)>가짜 약이야기로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인도에서 수상쩍은(?) 자양강장제품을 들여와 파는 주인공 청용(程勇)은 장사도 시원찮은 마당에 아버지 병구완까지 하느라 임대료조차 제때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이혼한 전부인은 아이를 데리고 이민을 가겠다고 나선다. 안팎으로 치이다 못한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국내에서는 금지약품인 인도의 복제약을 사다달라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 새 그의 주변에는 그가 사다준 약으로 희망을 찾아가는 환자, 환자의 가족들이 모여든다. 스위스 제약사에서 만든 비싼 정품 치료제를 사지 못해 오로지 복제약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들 때문에, 경찰의 추적과 금전적인 손해를 무릅쓰면서도 청용은 이 사람 살리는 밀수를 그만두지 못한다.


<약의 신>은 중국에서 상당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루용(陸勇)’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200234세의 루용은 만성골수성백혈병(CML) 진단을 받고 스위스 노바티스(Novartis)사에서 개발한 치료제 글리벡(Gleevec)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상자에 23,500위안(390만원)에 달하는 약값은 장기적으로 약을 복용해야 하는 환자에게 너무나 무거운 부담이었다. 그러던 중 거의 동일한 효능을 가진 인도의 복제약이 4,000위안(70만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스로 약을 구해 복용해본 루용은 이 정보를 다른 환자들과 공유하고 이들이 약을 구매하는 것을 돕는다. 2013년 그가 체포되기까지 수많은 환자가 그의 도움을 받아 복제약을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제까지와 달리 여기에서 가짜는 인도산이다. 그리고 진짜보다 질이 떨어지거나 인체에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다. 또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중국은 이제 가짜를 만드는 국가가 아니라 가짜를 소비하는 국가가 되었다는 점이다. 배경이 된 2002, 중국은 이제 막 WTO에 가입해 세계시장의 일원으로 자리 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세계시장에 편입되었다는 것은 상품의 생산과 유통, 판매의 모든 과정에 있어 세계 무역시장의 룰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효능에 가격도 저렴한 인도산 복제약이 금지약품으로 구분된 것도 바로 룰을 받아들인 결과다. 물론 희생만 감수한 것은 아니다. 세계시장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음으로써 중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이익을 거두었고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십 수 년이 흘러 어느덧 G2의 지위에 올라서서 미국과 힘겨루기를 벌이는 현실 속에서, 새삼 가짜를 들고 나온 이 영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열렬한 반응에는 가짜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섞여있는 듯하다.


영화에서 정품 치료제를 생산하는 스위스 제약회사와 복제약을 단속하려는 경찰은 주인공 청용의 대립축에 있지만 단순한 으로 규정하기도 어렵다. 이들은 법대로할 뿐이다. 제약회사는 법을 근거로 약값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외면하고 복제약 단속을 재촉하며, 경찰은 환자들의 처지를 동정하면서도 밀수로 들어온 가짜 약에 대응해 법을 집행해야 하는 입장이다. 영화는 제약회사의 독단, 중국 의료체계의 현실을 꼬집고 있고 실제로 제도적인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은 보다 궁극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가짜 일용품, 가짜 휴대폰, 가짜 가전제품이 문제가 된다면 조금 민망하거나 불편한 정도겠지만, 그것이 식량, 무기, 통신망, 의약품의 문제가 된다면?” 약값을 대지 못해 정품 치료제를 눈앞에 두고도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환자들의 처지는 오늘날 중국 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불안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중국이 나날이 강대해지고 있는 듯하지만, 어느 순간 서방세계가 틀어쥐고 있는 원천기술과 게임의 룰이 중국의 목을 조를 것이라는 불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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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寨手机(모조품 휴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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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이후 빠른 발전을 거듭하며 세계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듯 보이는 중국이지만, 이러한 발전의 과정은 가짜의 진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모조품, 짝퉁으로 출발해 여기에 새로운 기능과 창의성을 더한 산자이(山寨)’를 거치며 생산력과 소비력을 모두 갖춘 시장으로 성장해온 과정이 그것이다. 이제는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만, 중국 사회는 동시에 스스로가 여전히 원천기술의 발전과 산업화에서는 열세에 처해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지린(吉林)대학 경제금융대 리샤오(李曉) 학장의 졸업축사가 이러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그는 이제 사회로 첫발을 내딛으려는 졸업생들을 향해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하는 대신, “미중 무역전쟁의 주도권이 우리 손 안에 있지 않은 현실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지난 40년 간 이루어진 개방의 본질은 우리가 스스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정치 경제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 이 시스템의 최대 수혜자가 된 것임을 인정하고 냉철하게 세계에 대한(특히 미국에 대한) 학습과 자기혁신에 나설 것을 당부했다.


청용이 인도에서 들여오는 복제약과 스위스 회사의 정품 치료제의 가격차는 바로 서구식 게임의 룰이 떠받치고 있는 경제 시스템이 만들어낸 것이다. 중국은 이 시스템으로 들어가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고, 동시에 그만큼 커다란 불안을 떠안게 되었다. 오리지널이 되든가, 오리지널을 정하는 룰을 바꾸든가. 이 정도 수준의 혁신이 아니고는 불안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약의 신은 더 좋은 치료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더 싼 치료제를 구해오는 사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남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상임연구원



                                       


1) 리샤오 원장의 졸업축사 원문은 https://mp.weixin.qq.com/s/w4gEgxS177t90V-tGAHuJA 에서 볼 수 있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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