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대 민사소송의 고소장은 그 형식과 내용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반드시 관대서(官代書) 자격이 있는 사람이 고소장을 써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관대서를 거치지 않고 쓴 고소장은 관청에서 접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관대서는 지방 관청에서 그 자격을 지정한 대서인으로, 고소장을 대신하여 써주는 것으로 비용을 받을 수 있었다.
관대서가 대필 비용을 받았던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는 보기 드물지만, ‘집이 가난하여 도장을 찍을 여력이 없었다’는 표현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관대서가 비용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휘주에서 발견된 19세기 초반의 소송자료 중에서는 ‘고소비용수입지출장부’가 발견되었다. 여기에는 관대서가 매번 고소장을 써주고 비용으로 은(銀) 5전(錢)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명청대의 고소장 중에는 ‘○○현 지현이 관대서 ○○에게 관인을 찍어준 기록’에 공문식 도장이 찍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관대서는 관청의 공문에 사용되는 도장과 비슷한 형태의 도장을 사용하면서 사실상 관리가 아니면서도 공문식 도장을 사용함으로써 관청의 업무를 보는 사람으로 변신해 관청의 일원이란 분위기를 풍기면서 혜택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관대서의 자격과 신분의 합법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고소장을 대신 써주면서 비용을 받거나, 관료들과 결탁하여 소송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면서 당시 사법 부패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사자주어란 관대서가 고소장을 쓸 때 서두에 사용하는 관용적 표현을 가리킨다. 사자주어는 네 글자로 구성되었는데 사자주어란 네 글자가 하나의 구슬처럼 꿰어져 있다는 뜻으로 소송의 내용을 요약하여 보여준다. 따라서 사자주어는 관청에서 소송안건을 접수할 때 개요를 표현하는 전문 용어가 되었다.
사자주어는 명청대에 널리 유행되었다. 현재 전해지는 명청대의 소송 관련 서적에는 여러 종류의 주어가 수록되어 있다. 고소장의 정해진 양식을 인쇄할 때 이미 사자주어에 따라 글자 칸을 남겨두었기 때문에 고소장의 고소 사유를 쓸 때 사자주어를 사용해야만 했다.
그러나 민간의 사소한 분쟁과 관련된 민사소송이 증가하면서 사자주어는 소송의 내용을 과장하여 보여주는 방편으로 사용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관청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여 소송안건이 접수되지 않거나 소송안건의 처리가 지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간의 일상적인 분쟁도 과장된 표현의 주어를 사용함으로써 중대한 사건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예를 들면 재산상속과 관련된 안건은 패탄계산(覇呑繼産), 채무분쟁은 시강패탄(恃强覇呑), 물분쟁은 강호수당(强戽水塘) 등의 사자주어를 사용하였다.
과장된 표현의 사자주어가 사용된 고소장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사실은 민간의 사소한 일에 불과한 사건이 대부분이었다. 형제간에 의가 상하거나, 소액의 채무나 계약분쟁, 심지어는 오해에서 비롯된 소송도 있었다.
55 光緒十一年(1885)三月十三日 黃良業呈爲挺兇勒詐粘求核訊事
위 사진은 『황암소송당안과 조사보고(黃岩訴訟檔案及調査報告)』에 수록된 제55호 안건의 고소장으로 광서11년 (1885) 황량업(黃良業)과 관련된 안건이다. 여기에서 고소의 사유를 요약한 주어는 붉은 색 테두리로 표시한 ‘정흉륵사(挺兇勒詐; 매우 흉악하게 강제로 속임)이다. 주어의 의미상으로는 상대방이 폭력과 협박을 통하여 사기행위를 한 것이지만, 안건의 실제 내용은 일반적인 부동산 분쟁일 뿐이었다.
일반적으로 고소인들은 자신의 민사적 권리를 잘 알지 못했다. 그들은 관청이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는 관청에 와서 ‘소송을 거는(打官司)’ 것이다. 관사는 관에 의해 처리되는 것이다. 고소인은 분쟁의 상대방 당사자를 흉악범처럼 취급해야만 관청의 간섭을 통해 자신의 민사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청대 민사소송의 고소장에서 과장된 표현의 사자주어가 널리 유행한 것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관습과 중국문화 7】
허혜윤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참고도서
田燾 許傳璽 王宏治 主編, 『黃岩訴訟檔案及調査報告 傳統與現實之間―尋法下鄕』, 法律出版社, 2004年.
田燾 著 김지환 등 역, 『외면당한 진실-중국 향촌사회의 제도와 관행』, 學古房,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