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현, 「19세기말 安徽省의 자연재해와 지역적 대응양상의 차이」, 『中國近現代史硏究』77輯, 2018, 3, 1-53쪽.
근대 중국은 ‘재해의 나라’라 부를 정도로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한 국가였다. 자연재해 발생 시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현상은 우선, 기근으로 인한 아사자의 속출, 살아남은 이재민의 이동(유민화), 식량폭동 및 도적떼 등이 발생하는데, 이에 대한 국가와 사회엘리트의 대응은 이재민 구제, 농업 재생산을 위한 생산수단-주로 토지와 종자, 농기구와 축력 등-의 확보, 파괴된 사회 기반시설의 복구, 사회질서유지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 논문은 자연재해 발생 시 생존위협에 노출된 일반민이 어떤 선택을 통해 활로를 찾으려 했는지를 안휘성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다. 안휘성은 생태환경에 따라 장강을 기준으로 이북은 환북, 이남은 환남으로 대별되는데, 자연재해에 대한 대응양상이 비교적 뚜렷한 차별성을 보이고 있었으며, 상당한 시간이 경과하면서 어떤 현상은 점차 관행화된 측면도 발견된다.
환북지역은 열악한 생존여건으로 인해, “백성들의 풍속이 사납기로 유명하고, 도적사건도 본래 다른 성에 비해 배가 많은 지역”이었으며, 이러한 열악한 생존환경은 계절적-주로 겨울철에 고향을 떠나 강남으로 이동해 구걸하면서 연명하다 봄 농사철이 되면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감- 유민현상을 낳는 주요 요인이었다. 특히 자연재해로 인해 심각한 생존위기에 몰린 이재민은 ‘도황난민(逃荒難民)’이라는 선택을 통해 출로를 모색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명대에 형성되어 청대에 이르러서는 관행화된 측면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환북지역은 청말 염군(捻軍)의 난 이후, 그 잔존세력이 농촌지역에 잠복해 있다가 재해발생과 생존위기가 발생했을 때, 토비(土匪)가 준동하는 지역이었다.
유민현상이나 토비활동은 비단 환북지역 뿐만 아니라 환남지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었지만, 환남지역은 환북지역에 비해 그 정도가 미미한 편이었다. 자연재해에 대응하는 환남지역 민의 양상은 환북지역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데, 즉 명청시대 장강 양안의 우전(圩田)지역에서 생산되는 쌀과 장강이라는 수운망을 이용한 미곡의 전국적 유통, 그리고 청말 중국의 4대 쌀시장 무호(蕪湖) 등을 배경으로 주로 쌀유통 저지[遏糴(알적)]나 쌀폭동[搶米暴動(창미폭동)]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지형적 조건이나 생태환경의 차이가 해당 지역의 생존환경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재해발생 시 이에 대응하는 양상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존 연구는 유민현상이나 창미폭동 등을 개별적 연구소재로 삼고 있으며, 더구나 자연재해와의 직접적 연관성에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안휘성을 전문적으로 다룬 연구는 매우 미미했다. 반면 이 논문은 민중폭동이란 시각에서 벗어나, 자연재해에 대한 이재민의 생존모색이라는 시각에서 안휘성 내에 지역적 차별성이 나타난 원인에 주목하였다. 신해혁명 직전 10년 기간은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빈번한 민중폭동이 발생한 시기였음을 상기한다면, 청말 안휘성에서의 토비활동, 알적·창미폭동은 민변사(民變史) 연구의 일환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황정(荒政)관련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