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주석이 4월 23일 개최된 19대 제5차 정치국 집체학습에서 ‘진리(眞理)’ 두 글자를 거론했다. 집체학습 기조 발언에서 시진핑 주석은 “마르크스주의의 진리 역량을 심각하게 깨닫고 파악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자리에서 시진핑 주석은 마르크스주의를 ‘진리’와 등치시켰다. ‘진리’라는 두 글자는 사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과 매우 밀접한 워딩이다. 1978년 5월 11일 광명일보(光明日報)에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實踐是檢驗眞理的唯一標準)’이라는 평론이 실렸다. 진리를 검증하는 표준은 오직 사회실천이고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천명했다. 즉 개혁개방이라는 국면 전환 시기에 마르크스주의는 여전히 진리 그 자체로 견지해야 하는 기본 원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진핑 주석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의 진리의 힘을 더욱 깊이 있게 깨닫고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이 국면의 전환 시기라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진리’의 사전적 의미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유일하며 참으로 바른 이치(理)를 말한다. 물론 절대적인 진리와 상대적인 진리가 존재하지만 가장 단순하게 말하면 객관적인 실제에 가장 부합하는 도리(道理)라고 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이 4월 23일 정치국 집체학습에서 ‘진리’를 언급한 것은 바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불변의 이치가 바로 마르크스주의라는 것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은 이미 지난 19차 당대회 <보고>에서 중국 특색 사회주의가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 ‘시대화’, ‘대중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역시 중국이 나아가는 길이 마르크스주의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대내외에 재차 천명한 것이었다. 심지어 중국 일부에서 이른바 ‘시진핑 사상’을 진리의 거대한 힘(伟力)이라고 극찬하는데도 ‘진리’라는 두 글자를 동원되고 있다. 따라서 2018년 현재 중국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진리이고 진리가 바로 마르크스주의인 것이다.
이번 정치국 집체학습의 주제는 ‘<공산당 선언>과 그 시대 의의’이다. 시진핑 주석은 모두 발언에서 <공산당 선언>을 다시 익혀야(重溫)한다고 강조했다. 그 이유는 바로 <공산당 선언>이 마르크스주의 진리 역량을 담고 있는 사실상의 신앙이고 마르크스 정당의 선진성과 순결성을 유지하는 이론의 원천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견지하고 발전시키는 새로운 장을 여는 위대한 투쟁과 위대한 사업에서 <공산당 선언>이 함유하고 있는 과학원리와 과학정신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다시 <공산당 선언>을 새롭게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불러와서 새로운 시기를 넘어가는 이론적, 실천적 동력으로 삼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산당 선언> 표지
그럼 왜 중국공산당은 이 시기에 다시 마르크스주의를 강조하고 <공산당 선언>을 불어오는 걸까. 먼저 <공산당 선언>이 소위 과학사회주의 원리를 가장 면적으로 드러내는 위대한 저작이라는 평가에 기인한다. <공산당 선언> 속에는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세계관이 담겨 있고 마르크스 정당의 선진 품격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 정당을 지향하는 중국공산당 입장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정당의 정치적 입장과 이상, 혁명 강령, 정신을 체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공산당 선언>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국공산당이 <공산당 선언>을 다시 불어와야 하는 것은 <공산당 선언>이야 말로 인류사회 발전의 규율을 밝혀준 위대한 고전이라는 풍부한 이론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시기를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 이를 학습하고 연구하고 실천 과정에서 구현하는 노력을 중국공산당이 하지 않으면 그 어떤 정당도 이를 수행할 수 없으며 오직 중국공산당만이 이를 수행할 자격이 있다는 일종의 정당성을 갖고 있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보고>에서 드러낸 바와 같이 중국공산당만이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아닌 마르크스주의를 제대로 체현하고 있다는 자기 평가에 따른 것이라고 파악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러한 인식은 중국이 경험했던 신민주주의 혁명의 길, 사회주의 혁명의 길, 사회주의 건설의 길 그리고 지금 가고 있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 길을 열어 가는데 마르크스주의가 중국의 구체적인 현실과 서로 결합해서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평가에 기초한다. 이는 또한 중국의 혁명과 건설 그리고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공산당만이 마르크스주의의 충실한 계승자이며 전달자라는 일종의 소명의식의 발로라고 볼 수도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사실상 약화된 상황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버리고 마르크스주의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길에 중국공산당만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또 수행해야 한다는 자아 인식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움직임은 중국이 마르크주의의 중국화에 나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몰락한 상황에서 일종의 변형된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아니라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마르크스주의로 다시 돌아가야 하고 그 주체는 바로 중국공산당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주주의의 ‘중국화’이고 그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체현하고 있는 <공산당 선언>에 대한 학습과 연구, 실천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는 19대 <보고>에서 밝힌 바와 같이 마르크스주의의 ‘시대화’ 그리고 ‘대중화’로 심화되어 가는 과정의 첫 번째 출발점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를 매우 견고하게 만들어낸 다음에 마르크스주의의 다음 단계인 ‘시대화’로 나아간다는 단계론적 사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르크스주의의 ‘시대화’는 세계 자본주의가 약화되어 간다는 시대 변화에 기초해서 자본주의 이념을 대체할 수 있는 시대적 흐름을 주도하는 사상 혹은 이론체계로서 마르크스주의가 중심 지위에 올라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사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경쟁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의 강대국으로의 부상이 마르크스주의의 시대 주류 이데올로기로의 승격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이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중국의 강대국 부상은 마르크스주의의 시대 주류 이론으로서의 헤게모니 장악 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성과를 내야 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와 ‘시대화’를 거친 다음 단계로 ‘대중화’를 상정하고 있다. ‘중국화’를 통해서 구체적인 현실과 원리를 결합하는 새로운 실천 진리를 창조해내고 이를 강대국 건설을 통해서 시대적 이념 혹은 사상으로 재정립하는 ‘시대화’를 이룬 후 이를 세계 만방의 국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대중화’의 가장 마지막 단계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즉 마르크주의의가 출발부터 제시하고 있는 세계 인민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과학 원리로써 마르크스주의를 유일하고 진정한 세계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론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이뤄나가기 위한 첫 단추가 바로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이고 그 ‘중국화’의 첫걸음이 바로 <공산당 선언>을 다시 읽고 학습하고 연구하고 심화하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세계가 다극화되고 경제가 글로벌화 되며 사회가 정보화로 발전하고 문화가 다양해지는 세계에서 인류가 공존 공영할 수 있는 어두운 밤을 밝히는 등대와 같은 길잡이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라고 시진핑 주석은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과 인민이 절대 동요해서는 안 되고 기초를 단단히 다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시진핑 주석은 보고 있다. 중국공산당이 헌법을 수정하면서까지 당의 영도가 필요한 이유를 강조하는 이유이다. 당과 이론 기초를 다지고 당의 영도를 강화하는 과제 수행에서 <공산당 선언>을 다시 읽는 것만큼 당장 시급한 과제는 없다. 왜냐하면 그 안에 중국공산당이 가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19대 <보고>에서도 우려를 표명한 여러 새로운 문제들은 사실 중국공산당이 마르크스주의 정당의 본색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고 심지어 구현하려는 노력조차도 약했다는 자조적인 평가에 기초한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려는 중국에게 새로운 정신무장을 다지는데 <공산당 선언>을 다시 읽게 하는 것만큼 직접적인 동력은 없을 것이다. 베이징에서 ‘세계 마르크스 대회’를 여는 맥락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통해서 중국에서 부활하고 있다. 아니 중국이 그것을 애타게 부르고 있다. 이번에 열린 정치국 집체학습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양갑용 _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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