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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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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현대사와 기억투쟁 - 류샤오보의 경우 _ 김태승

이번 호부터 연재를 시작하는 아주대 김태승 명예교수는 오랜 시간 아주대에서 역사학자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올 2월에 정년퇴임했다. 김교수는 사상사로 처음 중국현대사 연구를 시작했으나 추상적 사유보다는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보고 싶어 노동운동사로 방향을 전환했고, 그 과정에서 노동운동과 공간정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도시사도 연구했다. 또한 한국의 근대학문의 성립과 현실, 동아시아 인식문제, 동아시아 교육문제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연구의 스펙트럼도 상당히 넓다. 장자에 보면 거백옥이 나이 60이 되었을 때 59년의 잘못을(五十九非) 깨달았다고 했는데, 역시 그러한 성찰로 글을 쓰고 싶다는 필자의 뜻에 따라 컬럼명을 김태승의 六十五非로 붙인다. 역사와 현실을 넘나드는 그의 오랜 내공과 깊이 있는 성찰이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한다.(편집자 주)

  

시간의 저주 속에서

그날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1999. 20세기가 저물어 가는 해의 64, ‘천안문 민주화운동’ 10주년에 류샤오보는 대련의 <노동교화소>에서 <시간의 저주 속에서>라는 시로 자신을 위로했다. 시간은 어떤 사람에게는 망각이라는 축복을 주지만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저주가 될 수 있다. 중국에서 민주화를 향한 갈망과 그것을 위한 청년들의 희생이 그리고 조선족 출신 록가수 추이젠(崔建)아무 것도 없네(一無所有)를 부르며 천안문 광장에서 정의를 외쳤던 그 열정이,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노동교화소>에서도 교화되지 않았던 류샤오보에게는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는 그 낯설음이 망각으로 바뀌지 않도록, 옛 기억을, 그 상처를 상기시키려 했다.

 

일종의 반어법이기는 하지만, 기억투쟁은 보통 약자들이 끊임없이 자신들의 심장에 새겨진 상처를 다시 들여다봄으로써, 완전한 치유를 위해 그날의 기억을 유지하려는 처절한 노력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 근본적인 치유 없이 상처만 아물어가는 것은, 또 고통은 그대로 둔 채 외양만 그럴듯하게 바꾸어 그날이 없었던 것처럼 변해가는 것은, 그 일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저주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성노예의 문제와 세월호의 기억투쟁 속에서 이미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류샤오보의 삶도 그러한 기억투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그가 바진(巴金)의 장례식과 관련하여 수이(舒乙)라는 인물이 보인 뻔뻔하게 잘난 체하는 행동을 비판했던 것도 일종의 기억투쟁이었다. 수이가 문혁시기 자신의 아버지인 문학가 라오서(老舍)를 저버린행동에 대해 참회하지 않으면서도 문혁의 고통에 대한 바진의 저서를 높이 평가했던 이중적 태도를 문제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과거를 잊을만하면 다시 끄집어내는 그의 태도는 많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한 외국학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쩌면 내 성격 때문에 나는 어디를 가든 장벽에 부딪칠 것이다.”라고 썼다.

 

개혁개방 이후 진행된 중국의 경제적 번영은 중국에 대한 외부의 인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타이완에서 대륙으로 망명한 뒤 경제전문가로 일하면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린이푸(林毅夫)는 그것을 중국의 기적이라고 불렀는데, /외부의 시선 역시 그런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연구자들이나 일반인들을 불문하고 중국의 경제성장에 끼친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역할이나, 경제대국이 된 중국의 국제정치적 위상을 해석하는데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중국 안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노력은 외롭고 고통스러운 기억투쟁의 형태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우리들이 박정희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류샤오보는 제도적 부패라는 기적, 불공평한 사회라는 기적, 도덕적 퇴락이라는 기적, 낭비된 미래라는 기적이라는 관점에서 번영하는 경제 속에 감추어진 중국의 진실을 바라보았다. 더 나아가 그는 한 TV드라마를 비평하면서 중국인이 중국인을 속이면 도덕적 타락이 되고 외국인을 속이면 민족의 기개가 되는 현실에 대해 한탄한다. 외부에 보이는 경제적 번영 때문에 현존하는 중국의 비인간적 상황에 대해서는 눈감고, 중국문화에 대해 찬양을 늘어놓는 내/외부인들의 시선을, 그는 심지어 로마시대의 검투사를 바라보며 유혈을 즐겼던 잔인한 놀이와 동일시한다. 문제는 시장이 아니라 그것을 운영하는 정치권력이었다. 그래서 그는 신좌파의 시장화, 세계화 비판에 대해서도 핵심을 피하기 위해 늘어놓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 핵심은 바로 중국공산당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말들은 진실도 아니며, 중국을 외부의 기준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되어왔다. 한 미국 언론인의 지적에 따르면 관변언론은 류샤오보를 자신의 조국을 헐뜯어서 생활비를 벌었고’, ‘서방의 반중세력을 위해 일하고급와인과 도자기 수집가로 묘사함으로써 파렴치범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려 하였다고 지적한다. 사실은 그런 노력조차 필요 없었을지 모른다. 류샤오보의 기억투쟁은 불편한 진실로 이미 풍요 속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관심의 가장자리 밖으로 밀려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관점은 중국 현대사상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오사운동시기의 사회개혁 사상의 전통 속에서 보면 <전반서화론자(全般西化論者)>의 논리와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본인도 그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서양문화를 절대적으로 이상화했던 것은 중국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대신 더 높은 차원에서 서양문화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시기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블로거이고 삼중문으로 알려진 작가 한한(韓寒), 정부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서방의 노예>라고 비난받았던 데서 나타나 있듯이 자유로운 생각의 표현을 막기 위해, 흑백 논리적 민족주의를 동원하는 일이 결코 옳은 일이 될 수는 없었다. ‘서방의 노예등등의 표현은 마치 한국에서 좌파 혹은 빨갱이라는 표현처럼 일종의 낙인이 되었고, 적을 비판하기 위한 전가의 보도가 되었다. 그러한 공격과 억압에 맞서서 류샤오보가 수행한 기억투쟁은, 현실적으로 거의 유일하게 가능한 생존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1989년의 천안문을 상기한다. 2003년 류샤오보는 어떤 단체가 수여하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대신 답사를 보내면서 천안문의 기억을 꺼내든다.

 

.............

무고한 자의 죽음을 기억하려면

눈동자에 칼을 꽂아야 한다.

실명의 대가로

밝게 빛나는 수액(髓液)을 얻는다.

잔혹한 기억은 거부할수록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2010년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빈 의자로 참석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2017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남으로써, ‘시간의 저주속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삶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벗어날 수 없는, 마치 숙명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한다. 역사가의 역사서술은 무엇을 중시해야 하는가. 역사가의 교육 혹은 연구에서 선택과 집중은 무엇을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들이다. 사실 일반적 역사서술에서 류샤오보나 중국에서의 반체제운동가들에 대한 언급은 잘해야 몇 줄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서술해야할 중요한 일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중국을 안다고 말할 때, 류샤오보가 지적했던 검투사놀이를 바라보는 잔인한 시선에 근거한 것은 아닐까. 역사가는 특히 현대사 연구자는 권력에 의해 억압되거나 망각을 강제당한 기억들을 발굴해 내고 그것을 기억의 목록에 올려놓는 것을, 무엇보다 가장 중시해야할 제일의 임무로 삼아야하지 않을까.

 

남북정상회담과 5월의 기억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그리고 99번째 오사운동 기념일 앞에서, 그의 처절했던 기억투쟁의 삶을 기억하려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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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류샤오보

 

김태승의 六十五非 1

 

김태승 _ 아주대학교 명예교수


                                      

 

) 이 글에서 인용한 류샤오보의 글은 주로 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 지식갤러리, 2011에서 가져 온 것이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s://baike.baidu.com/item/%E5%88%98%E6%99%93%E6%B3%A2/14900221?fr=aladd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