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과 부주석 연임 제한 철폐. 찬성 2958, 반대 2, 기권 3표. 찬성 99.79%, 가결.
이토록 염원하던 것을 왜 이제서 실행한 것일까? 지방에 땅굴을 파고 이리저리 주판을 굴리던 할거세력들이 대세(大勢)가 정해지면 모조리 백기를 들고 천명(天命)이 정해졌다고 만세를 부르며 새 황제에게 충성을 맹서하던 옛날을 떠올리는 것은 ‘기우(杞憂)’에 불과한지 모른다. 하지만 절대 다수가 기우만 품고 ‘소요(逍遙)’하는 사이 대세가 정해지는 것이 최소한 과거의 관행이었다. ‘나는 판이 정해지면 들어가겠다.’
99.79. 확률의 세계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숫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그 반대 2’는 수전증으로 잘못 기표한 노(老)당원의 실수 탓 아닐까’하는 기우가 또 일어난다. 자유로운 발언을 전제로 한 토론의 세계에서 저런 수치는 등장할 수 없다. 이런 수치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상위 조직 전체가 고립된 개인을 상대하는) 개별화, (상위 조직과 개인 자신의) 동일시, (상위 조직 이념이나 목표의) 내재화라는 3요소가 완벽하게 맞물려야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거기에 개인들끼리 벌이는 ‘타자화 놀이’가 합쳐져야 한다. 솔제니친은 타자화 놀이를 정확하게 묘사했다. 수용소 군도(群島)로 통하는 거대한 하수구로, 대개 밤마다, 이웃들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야. 나는 최소한 이곳에서 햇살을 누리고 있는 걸.’ 타자화 놀이가 도를 더해 가면 결국 자기 손으로 이웃을 그 하수구로 밀어 넣는다. ‘그 놈이 내 텃밭에서 오이를 훔친 게 분명해. 10년쯤 감방에 들어가 봐라.’ 그 ‘극악무도’했다던 진(秦)나라 법에도 금했던 익명 투고가 소비에트 시절 난무했고, 덕분에 수용소 군도로 인산인해가 밀어닥쳤다.
기우가 아니다. 현대 중국이 물려받은 역사적인 조건과 현 체제의 필요에 따라 준(準)병영으로 조직된 변경에서 그런 조짐은 오래전부터 감지되고 있었다. 변방의 병영은 어떻게 유지, 강화되는가? 짧은 지면 안에 분석하는 대신 짧고도 슬픈 기억을 떠올려 본다. 여기에 나오는 지명과 인명 전체가 가명이다.
지난해 2월 나는 현지조사 대상지를 물색하러 이리주로 찾아갔다. 사전에 동기를 통해 연락처를 받은 기자 빌리크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동생 친구에게 소개 받은 공입니다. … 저는 이런이런 사람이구요 … 이리 카자흐 목장을 둘러보려고 합니다.”
“누구라구? 내 동생은 어떻게 아는데? 근데 목장을 봐서 뭘 하겠다구?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봐.”
분명 취조였다. 이리주에서 제일 큰 신문사의 카자흐인 중견 기자. 그에게서 나는 귀중한 정보를 하나 얻었다. 목장을 찾아가기 전에 공안국 외사처를 찾을 것. 기자인가 취조자인가. 그는 말단 월급쟁이에 불과하지만 변경 소수민족의 일인으로서 ‘국가의 이익’과 ‘타인의 자유’를 분명 대립적인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심정적으로는 국가의 편에서 수많은 잠재적인 적들을 상대하는 군인이다.
변경 중의 변경 자오수로 가기 전에 터커스를 거치기로 했다. 카라준 초원은 거대한 카자흐 목장이다. 길에서 언제나 겪는 검문의 무서움은 엄밀함이 아니다. 어차피 나는 마약도 폭약도 없으니까. 그러나 여러 사람 앞에서 한 꺼풀씩 옷이 벗겨지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훌러덩 알몸을 드러내는 것도 부끄럽지 않은 순간이 온다. X선에게 반복해서 알몸을 맡기면서 우리들의 몸은 더 이상 비밀스럽고 사적인 내 것이 아니다.
카라준 겨울 초원
터커스로 가는 차 안에서 우연히 곽(郭)을 만났다. 터커스의 신참 당건(黨建: 기층당 조직건설의 준말) 공무원이다. 소위 기층간부의 핵심을 이루는 젊은 층이다. 하남성 허창 출신이라고 밝힌 그는 살가웠고, 뭣보다 순진했다. 스스로 말하길, 대단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어서 일찌감치 기층간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신강에 뭔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에 부풀어 있다. 아직 교육중인 신참이라 월급도 거의 없으면서 그는 기꺼이 친구들을 불러 점심을 대접하더니 저녁에는 같은 기수 동기 집에서 열린 만찬에 초대했다. 그날 우리는 같은 호텔에서 잤다. 곽이 제안했다.
“우리 단위에서 가장 먼 카얼간부루커에서 연구하는 게 어떨까? 거기가 가장 원시적인 카자흐 마을이야. 나와 같이 가자.” 그러나 이튿날 물어보니 카얼간부루커는 눈으로 막혔다고 한다. 허나 운 좋게 거기 호텔에서 방학 동안 경비로 일하고 있던 카자흐 청년 샤티크를 만났다. 그의 아버지는 20년 동안 양을 치다 허리를 다쳐 양을 남에게 맡기고 농업 호구를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숙부가 카라준 초원에서 양을 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카라투허하이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가기로 했다. 곽은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하고 향에서 헤어졌다.
샤티커의 부모님은 마음이 고운 분들이었고, 숙부 우무얼장은 독수리를 기르는 분이라 화통했다. 우리는 여름에 같이 산으로 올라가기로 약속했다. 그날 부모님은 먼 데서 손님이 왔다고 말 대창을 삶아왔다. 카자흐인들에게 가장 귀한 음식이다. 대창이 다 익을 무렵 불청객이 등장했다. 터커스 공안국의 공(孔)(어쩌다 성이 같단 말인가!)과 위구르족 경찰 한 명이 순찰을 핑계로 불쑥 들어오더니, 마치 예약이라도 해놓았다는 듯이 사양도 없이 말 창자를 뜯었다. 그러다 공이 내 존재를 인식하고 흘끗 흘끗 곁눈질 하더니 취조를 시작한다. ‘누구냐, 어디에서, 왜 왔느냐.’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파출소로 가서 등록을 하잔다. 저녁에 가서 밤 12시가 되도록 이리저리 전화만 돌리지만 그들은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 흔히 있는 일이라 부아가 나도 묵묵히 참았다. 나는 민가에서 자지 않을 것이니 호텔로 데려다 달라고 했지만 놓아 주지도 않는다. 새벽이 가까워오자 결국 그들은 차로 나를 샤티커의 집으로 데려주었다. 다음날 다시 가서 등록을 하자며. 어차피 호텔로 가지 못한 것은 그들 탓이니 등록 걱정은 없다.
독수리와 카자흐 무심한 말 대창
아침이 밝아 샤티크와 함께 곽을 만나러 갔다. 그를 만난 후 바로 자오수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경찰서 바로 옆에 그의 숙소가 있었다. 그는 군복을 입고 웃으며 나왔다. 신강에서 현재 모든 기층간부들은 군복을 입고 있다. 그도 어제 저녁에 경찰서에서 있었던 일을 들은 모양이다. 나는 여기서 오래 머물 수 없는 상황을 이야기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진정 그의 타향살이가 무사하기를, 그의 앞날이 밝기를 고대하면서.
그날 자오수로 가는 길에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곽이었다.
“공형, 지금 어디요?”
“자오수로 가는 길. 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튿날 호텔에 있을 때 다시 전화가 왔다. 역시 곽이었다.
“공형, 지금 어디요?”
“자오수 호텔, 왜?”
“(공형이) 어디 있는지 (내가) ‘기록’을 해야 해.”
곽은 아직 보직을 받지도 못한 교육생이다. 그는 외국인 등록 따위는 알지도 못하는 순둥이였다. 누가 그에게 내 동선을 확인하라고 요구한 것인가? 경찰이 아닌 당간부가 민간인의 동선을 확인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곽은 왜 그렇게 쉽게 부탁을 받아들였을까? 며칠 후 다시 곽이 내 위치를 파악하려 전화했을 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 이런 일로 전화하지 말라구. 나는 항상 호텔에서 등록을 하니 당국이 위치를 알고 있어.”
슬픔이 치밀었다. 사실 곽은 나에게 자기 대신 상해에 있는 여자친구를 만나보라는 부탁까지 했었다. 그녀를 만날 수 없다. 물론 곽도 다시 만나지 않겠다.
신강자치구 공산당이 직접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6년 자치구 전체의 당원은 151.55만, 그 중 곽처럼 30세 이하가 16.98명이다. 당원의 수는 꾸준히 유지되어 전해 대비 당원 수가 3.15만 명 늘었다. ‘병영’으로 꾸준히 신참은 공급되고 있고, 그들 대다수는 곽처럼 순진한, 그러나 너무 순진해서 명령을 쉽사리 ‘내재화’하는 이들일 것이다. 명령 목록에는 그에게 ‘타인’이란 고깔을 씌우라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타인은 등록되고 관리되는 존재다.
군복을 입는 순간 개인은 하찮은 존재로 전락한다. 군복은 상징을 넘어 제식훈련(制式訓鍊) 그 자체이므로, 입는 순간 병영을 내재화 할 수밖에 없다. 그 옷을 입는 순간 당과 국가는 전체로서 그를 상대한다. 그것이 솔제니친이 말한 ‘고립시켜서 침묵시키기’, 즉 개별화 전략이다. 옷을 벗거나 순전히 받아들이거나 선택은 둘 뿐이다. 누울 자리가 있어야 발을 뻗고, 일단 누워야 꿈에서라도 다른 세상을 보겠지만, 병영은 눕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군복을 입은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병영에서는 비현실적인 숫자가 현실이 된다. 100-99.79=0.21. “0.21, 당신들은 열외(列外)야!” 99.79, 변경 연구자에게는 자금성의 붉은 벽보다 높고 차갑고 강고하고 비현실적인 숫자다.
【변경에서 바라본 중국 7】
공원국 _ 작가 / 중국 푸단대 인류학과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