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차(茶), 알고 마시자!
‘한 잔의 차’ 속에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오롯이 담겨져 있다. 그저 무심히 마셔도 좋을 터이지만 차에 담겨 있는 암호들을 하나씩 해독하면서 음미해 보는 것은 어떨까? 먼저 ‘차(茶, tea)’의 어원부터 살펴보자. 영어의 tea, 독일어의 Tee, 프랑스어의 thé, 포르투갈어의 Cha 또는 Chai는 모두 중국어 茶(chá)에서 기원한다. 각국의 발음을 살펴보면 광둥 방언 cha, 푸젠 방언 Te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 내에서 생산된 차가 광둥성(廣東省)이나 푸젠성(福建省)의 항구를 통해 수출될 때 각국이 어떤 무역 루트를 선택했는가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차 또는 다(茶), 두 발음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다’로 읽히다가 조선시대 한글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일반 백성들은 ‘차’, 왕실, 불가(佛家), 사대부 집안에서는 ‘다’로 읽었다.
차는 발효정도에 따라 불발효(녹차), 반발효(우롱차), 발효(홍차), 후발효(보이차), 마시는 방법에 따라 전차(煎茶), 충차(沖茶), 포차(泡茶), 엄차(淹茶), 말차(末茶), 초유차(醋油茶)로 나뉜다. 10대 명차에는 용정차(龍井茶), 철관음(鐵觀音), 대홍포(大紅袍), 벽라춘(碧螺春), 모봉차(毛峰茶), 백호은침(白毫銀針), 동정오룡(凍頂烏龍), 군산은침(君山銀針), 기문홍차(祁門紅茶), 보이차(普洱茶)가 있다.
2. 약용에서 깨달음의 음료로
“아침에 차를 마시면 하루 종일 위풍당당하고, 정오에 차를 마시면 일하는 것이 즐겁고, 저녁에 차를 마시면 정신이 들고 피로가 가신다”라는 말처럼 차는 다양한 효능을 가지고 있다. 신화와 전설을 통해 차 마시기에 내포된 문화적 의미를 살펴보자. 우리에게 농업의 신이자 의약의 신으로 알려진 신농(神農)은 각종 풀을 맛보다가 어느 날 72가지의 독이 몸에 퍼지자 차로 해독했다고 한다.
이처럼 약재로 사용된 차는 위진남북조 시기에 이르러 명상과 결합되면서 깨달음의 촉매제로 쓰이기 시작한다. 동굴에서 9년 간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한 보리달마(菩提達磨, ?~528)는 어느 날 졸음이 쏟아지자 화가 나서 자신의 눈꺼풀을 베어 땅에 내동댕이쳤다. 눈꺼풀을 버린 곳에서 차나무가 자랐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때부터 승려들은 명상을 할 때 차를 마심으로써 졸음을 억제하고 정신을 맑게 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고자 했다. 특히 마조(馬祖, 709~788)선사의 ‘다선일미(茶禪一味)’, 조주(趙州, 778~897)선사의 ‘끽다거(喫茶去)’ 같은 화두를 통해 차는 선(禪)과 밀접한 관련을 맺기 시작했다.
차 마시는 행위와 마음 수련은 점차 지식인 계층으로 퍼져 나갔다. 노동(盧仝, 775~835)은 「칠완다가(七婉茶歌)」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첫 잔은 목구멍과 입술을 적시고, 둘째 잔은 외로운 번민을 씻어주네. 셋째 잔은 메마른 창자를 찾나니 생각나는 글이 5천권이고, 넷째 잔은 가벼운 땀 솟아나와 평생의 불평이 모두 모공으로 흩어지네. 다섯째 잔은 근육과 뼈가 맑아지니 여섯째 잔은 선령(仙靈)과 통하였네. 일곱째 잔은 마시지도 않았는데 양 겨드랑이에서 맑은 바람이 솔솔 일어나는구나. 봉래산이 어디 있느냐? 나 옥천자 이 맑은 바람 타고 훨훨 돌아가고자 하노라!”
3. 깨달음의 음료에서 기호 식품으로
특정한 계층에서만 마실 수 있던 차가 일반 백성에게 보급되기 시작함에 따라 차문화와 관련된 정보와 지식을 알고자 하는 수요가 발생했다. 육우(陸羽, 733~804)는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인 『다경(茶經)』에서 차의 기원, 차 따는 법, 제다 과정, 차의 종류, 다기(茶器), 차 달이는 법, 차 마시는 법, 차 산지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여 당시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했다.
차가 기호 식품으로 대중화되면서 차 애호가와 차 마니아들이 출현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소식(蘇軾, 1036~1101)을 꼽을 수 있다. 송나라의 유명한 문학가인 소식은 찻잎, 수질, 다기가 뛰어나야 궁극의 맛을 음미할 수 있다며 ‘음다삼절(飮茶三絶)’을 주장했다. 그는 특히 수원지(水源池)와 수질에 대해서 강조하여 이렇게 말했다. “좋은 차는 아무 샘물이나 쓸 수 없다고 하니 혜산천 물 한 섬만 보내주면 좋겠소”(「초천지에게 혜산천의 샘물을 부탁하며(求焦千之惠山泉詩)」에서는), “흐르는 맑은 물을 길어 반드시 활화(活火)로 달이고, 스스로 바위를 찾아 깊고 맑은 물을 구한다”.(「강물을 길어와 차를 끊이며(汲江煎茶)」) 또한 찻물의 적정 온도에 대해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기포가 게의 눈 크기에서 물고기의 눈 크기로 커졌을 때,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가 바람이 소나무에 부는 소리와 같을 때, 물속의 미세한 기포가 끓어올라 춤추는 눈꽃처럼 끊임없이 선회할 때 물로 차를 끓이는 것이 가장 좋으며 더 끓이면 지나치다고 했다.(「과거시험장에서 차를 끓이며(試院煎茶)」)
중국차는 국경을 넘어 인근 국가로 퍼져 나갔다. 특히 비타민과 미네랄이 부족한 유목민족들에게 차는 각종 영양소를 공급할 뿐 아니라 소화를 돕는 필수품으로 그 효용가치가 매우 높았다. 이에 상인들은 수백 킬로그램의 전차(塼茶)를 싣고 만주, 몽골, 티베트 등지에 가서 유목민의 말과 맞바꾸었다. 중국 측에서는 충분한 차를 확보해 필요한 말을 공급받기 위해서 국내의 차 판매량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송나라 희종(熙宗)은 쓰촨성(四川省)에 차마사(茶馬司)를 설치하여 차 무역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였다. 차마사는 명대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이처럼 ‘마방(馬幇)’이라 불리는 상인들이 말과 야크를 이용해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사고팔기 위해 지나다닌 길이 바로 ‘차마고도(茶馬古道)’이다.
18세기에 이르러 중국차는 유럽에 본격적으로 수출되기 시작했다. 영국은 동인도 회사를 통해 중국으로부터 차, 도자기 등을 수입하고 영국의 모직물, 면직물 등을 수출했다. 그런데 당시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차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자기, 의복, 가구, 건축 등 중국적인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이 유행했는데, 이것을 ‘시누아주리(chinoiserie)’라고 한다. 이처럼 중국 상품에 대한 수입량이 급증하면서 양국의 무역수지가 불균형을 이루자 영국은 아편전쟁(阿片戰爭, 1839~1842/1856~1860)을 일으켜 적자를 해소하고자 했다.
4. 차와 함께 떠나는 여행
지금까지 차와 관련된 역사와 문화를 알아보기 위해 시간 여행을 떠나보았다. 그렇다면 올 여름 ‘차’를 테마로 한 여행 계획을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 항저우(杭州)의 중국차박물관에서 차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베이징의 라오서차관(老舍茶館)에서 경극을 감상하며, 광저우(廣州)의 얌차(飮茶)와 딤섬(點心)을 맘껏 음미하는 여정은 생각만 해도 행복하지 않은가? 혹시 해발 4000미터의 가파른 길을 오갔던 마방들의 숨결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시솽반나(西雙版納)-쓰마오(思茅)-다리(大理)-리장(麗江)-샹그릴라-더친(德欽)-티베트-네팔-인도(윈난성 루트), 야안(雅安)-다두허-캉딩(康定)-데게(德格)-티베트-네팔-인도(쓰촨성 루트)를 추천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차 한 잔 속에 존재하는 위대한 선물을 만나는 여행 코스도 있음을 틱낫한 스님의 말을 빌어 전한다. “만약 당신이 아직 과거에 얽매여 시달린다면, 아직도 미래를 걱정하고 있거나 일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에 마음이 빼앗겼거나 노여움에 끌려다닌다면 당신은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다.……차 명상은 마음을 붙잡는 것을 익히고, 당신의 영혼이 자유롭게 되는 것을 도와준다. 마음을 고요하게 머물게 하고 차를 마실 때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합일된다. 당신은 현재이며 당신이 마시는 차 또한 현실이다. 이것이 진정한 음다이다.”
정진선 _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