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중국 방문에 나섰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베이징(北京)에 도착한 뒤 곧바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기다리는 자금성(紫禁城)으로 향했다. 시 주석은 미국 대통령의 접대를 위해 자금성을 통째로 비웠고, 청나라 건륭제가 가장 좋아했다는 궁전 건복궁(建福宫)에 연회를 마련했다. 중국 외교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문화의 상징적인 공간인 자금성에서 만찬을 하는 첫 미국 대통령이 된다고 그 의미를 부여했다. 호사가들은 그것을 ‘황제 의전’이라고도 하고, 또 반대로 고대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러 온 칙사를 맞이하는 의식을 재현한 것이라고도 했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에게만 처음으로 개방했다는 건복궁 만찬은 이른바 ‘클럽하우스’ 사건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큰 의미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2011년 중국 중앙방송(CCTV)의 앵커 레이청강(芮成鋼)이 웨이보에 폭로한 바에 따르면, 베이징고궁궁정문화발전유한공사는 2009년 고궁박물관과 합작해 건복궁의 운영에 참여하면서 건복궁을 글로벌 정상급 재벌들을 위한 호화로운 클럽하우스로 조성하고 입회비 100만 위안의 회원권 500개, 즉 총 5억 위안(약 800억원)의 회원권을 판매했다. 이 소식은 곧바로 중국 국민들의 광범위한 공분을 일으키게 됐고, 고궁 측은 이와 관련된 모든 사업을 전면 중단했다. 만일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도 건복궁에서는 재벌들이 수시로 만찬을 즐겼을 것이다.
사실 21세기에 들어와 세계 각국은 문화산업의 다양한 역할에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중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국은 문화의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안보, 외교적 측면에서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하고 정부 차원에서 문화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특히 각 지역이 보유하고 있는 풍부한 역사문화 자원을 활용해 지역 발전을 도모하고, 나아가 국가의 이미지 향상과 더불어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기 위해 많은 자원을 투입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자본은 국가 권력의 충실한 조력자를 자임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베이징시 첸먼다제(前門大街) 개발 프로젝트와 같은 것이다. 원래 첸먼 거리는 베이징 문화가 농후한 대표적인 전통문화 상업 지역이었다. 베이징시 정부는 첸먼 거리가 왕푸징(王府井), 시단(西單) 등 핵심 상권의 발달로 인해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자 2007년 이른바 ‘중점 문화유산 개조공정’을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약 80억 위안의 자금을 투입했다.
개발된 이 지역의 상점은 대부분 현대적인 것들로 채워졌고, 거리는 전통 건축물을 모방해 계획적으로 정돈됐으나 실제로는 더 이상 전통문화의 맛을 느낄 수 없게 됐다. 이 거리를 개방한 후 1년 동안 이곳을 찾은 관람객은 약 5000만명 정도로, 매일 평균 15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사진만 찍는 관광객이었고 상점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상대적으로 첸먼 거리 뒤편에 있는 다자란(大柵欄)의 경우에는 베이징의 전통이 그대로 간직된 상점, 음식점들이 집중돼 있는데 첸먼 거리에 왔던 많은 관광객들은 오히려 여기로 들어와 물건을 구입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례는 전국적으로 너무나 많다. 개발에 대항한 ‘문화의 역습’이라고나 할까.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문화유산은 문화산업 발전에 대단히 유리한 조건이지만 그것이 자국만의 자원이자 강점은 아니다. 240년의 역사를 지닌 미국은 세계 모든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콘텐츠로 활용하면서 최고의 문화산업 강국을 자랑한다. 미국은 1998년 중국의 스토리를 각색한 애니메이션 ‘뮬란(Mulan)’을 전 세계에 흥행시켰다. 베이징올림픽이 열리던 2008년에는 중국 고유의 무술인 쿵후와 중국이 자랑하는 ‘보배’인 팬다를 결합한 ‘쿵푸팬더’를 선보이며 약 5700억원의 흥행수입을 거뒀다.
또 21세기 가장 혁신적인 영화이자 역사상 가장 많은 흥행 수입을 기록한 ‘아바타’는 장자(莊子)의 ‘호접몽’ 이야기를 연상시키며 소통·교감·자연·화해의 가치를 최첨단 영상기술을 동원해 보여줬다. 이 같은 가치는 중국이 그동안 서구적 현대화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 중국의 전통적 가치이기도 했다. 누가 중국의 전통문화를 더 잘 활용하고 있을까?
1975년 중국은 미국의 제럴드 포드 대통령을 초청해 만리장성을 보여줬다.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는 진시황(秦始皇)의 ‘병마용(兵馬俑)’을,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만리장성을 보여줬다. 1998년 장쩌민(江澤民) 주석은 중국을 방문하는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을 먼저 시안(西安)으로 불렀다. 시안은 중국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고 자랑하는 당(唐)나라의 장안(長安)으로,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이기도 했다.
중국의 의도와 상관없이 당시 클린턴은 시안에서 무엇을 봤을까? 중국의 인문학자 위추위(余秋雨)는 장안을 이렇게 묘사했다.
“장안은 세계를 향해 자신을 열었고, 세계 역시 장안을 무대로 삼았다. 장안은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외래 문명에 의해 자신이 묻혀버릴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마치 아름다운 계곡이 매일 산 너머에서 떼를 지어 날아드는 나비나 새들을 박지 않는 것처럼. 또한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낯선 들꽃을 전혀 두려워하거나 경계하지 않는 것처럼.”
2011년 중국은 ‘문화강국’을 국가의 새로운 비전으로 선포했고, 시진핑 주석은 연일 ‘문화자신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2017년 트럼프는 자금성에서 무엇을 봤을까?
권기영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 중국학술원 중국교육센터장
* 이 글은 '아주경제'와 인천대 중국학술원이 공동 기획한 『아주차이나』 [仁차이나 프리즘] 2017년 12월 7일에 게재된 것을 수정한 것임.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