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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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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화교화인의 동향회 조직 _ 이정희



‘강한 중국’을 넘어 ‘중화문명의 위대한 부상’을 꿈꾸고 있는 중국, 세계 어느 국가도 중국의 앞으로의 향방에 영향을 받지 않을 나라는 없을 것이다.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한국은 말할 필요도 없다. 중국의 현재를 정확히 파악하고 내일을 사실에 가깝게 예측하는 것은 한국의 인문사회과학뿐 아니라 세계의 인문사회과학의 최대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중국의 현재와 미래는 중화제국의 과거, 특히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지속되어온 중국적 사회경제관행의 분석을 통해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다. 중국 대륙의 사회경제관행은 중국인의 해외 이주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으며, 이주지의 사회 및 문화와 접촉하면서 변화를 겪게 되지만 근본적인 관행은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또한 이미 중국 대륙에서 사라진 사회경제관행이 이주지에서 발견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본 연재는 세계 각국의 화교화인의 역사를 사회경제관행의 시점에서 분석하여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우리에게 네덜란드는 친숙한 나라이다. 17세기 중엽 제주도에 난파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선원 하멜, 2002년 월드컵 4강의 축구 감독 히딩크,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호소하기 위해 고종이 파견한 헤이그밀사(1907년 헤이그밀사사건) 때문이다. 
  

이준이 헤이그밀사로 파견되어 활동하던 더종 호텔 바로 옆에는 네덜란드 3대 차이나타운의 하나인 海牙唐人街(헤이그차이나타운)이 있다. 정방형의 모습을 한 헤이그차이나타운은 그 중앙을 Wagenstraat(車仔街)와 Sint Jacobsstraat(聖雅各街)가 십자로 교차한다. 네 개의 입구 가운데 두 군데에 패루가 세워져 있다.

 

그림 1  헤이그 차이나타운의 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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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은 원래 유대인 거주 지역이었다. 나치의 박해로 유대인이 해외로 대량 이주하자 2차 세계대전 후 이 지역은 빈 공터가 늘고 빈곤지역으로 전락했다. 헤이그시정부가 1970년대 이 지역의 도시재개발을 실시하면서 중국인의 이주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헤이그 차이나타운에는 화교화인 경영의 상점, 식당, 여행사, 호텔 등이 밀집해 있다. 화교화인만 아니라 네덜란드인이 경영하는 상점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자 간판이 많은 것으로 볼 때 화교화인 경영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헤이그 차이나타운을 방문한 필자는 중화요리 식당 기린각(麒麟閣)에서 마파두부 정식을 먹고, 그곳에서 화교화인커뮤니티 신문을 입수했다. “荷蘭 聯合時報”(2015년6월18일자, 375호)와 “中荷商報”(2015년6월18일자, 238호)라는 커뮤니티신문이었다. 양 신문 모두 간체자가 아니라 대만의 번체자로 쓰여진 신문이었다.        
 

“荷蘭 聯合時報”의 1면 광고는 중국의 中信銀行 靑田지점의 예금 유치 관련 내용이었다. 이 지점의 주소는 靑田縣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네덜란드 내 지점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中信銀行 靑田지점이 왜 이 신문에 이런 광고를 실은 것일까. 또 신문 기사 가운데 靑田同鄕會가 北京市僑聯 방문단을 접견한 기사, 世界靑田人大會 참가의 기사 등이 게재되어 있었다. 왜 이렇게 靑田 관련 기사가 많은 것일까. 그 이유는 네덜란드 화교화인 가운데 靑田 출신자가 많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화교화인 인구는 2012년 현재 약 8만에 달한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다음으로 많은 편이다. 8만 명 가운데 중국 대륙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에 이주한 중국인은 4만1,533명이며,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지만 부모 가운데 적어도 한쪽이 중국 대륙 출신인 화교화인은 1만7,564명이다. 이들 대륙출신 화교화인은 총 5만9,097명으로 전체 화교화인 인구의 7할 이상을 차지한다.  

 

그림 2  헤이그 차이나타운의 온주미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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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들 중국 대륙 출신 화교화인은 절강성의 溫州와 靑田을 출신지로 한다. 이 지역의 네덜란드 이주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됐으며 처음에는 행상(行商)이 많았다. 1920년대 이주자가 증가했으나 세계대공황으로 인한 실업자 증가로 귀국하거나 다른 나라에 이주했다. 이에 따라 2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네덜란드의 전체 화교화인 인구는 천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종전 후 溫州와 靑田지역의 네덜란드 이주는 1978년 개혁개방 이후에 본격적으로 증가했다.

 

대륙 출신 화교화인의 85%는 음식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네덜란드 전국에 2,600개의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다. 네덜란드 전체 음식점의 20분의 1이 화교화인 경영의 음식점인 셈이다. 이러한 통계는 헤이그차이나타운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화교화인 경영의 상점이나 이발소 및 미용실 그리고 잡화점은 溫州와 靑田을 이름으로 한 것이 많다.

 

현재 네덜란드 화교화인사회에서 활발한 동향회를 활동을 펼치는 곳은 溫州同鄕會, 靑田同鄕會, 永嘉同鄕會, 文成同鄕會가 있는데 모두 절강성 온주, 청전, 영가, 문성 출신의 동향회 조직이다. 원래 중국의 동향회 조직은 국내의 타 지역에 이주한 성민(省民)이 타지에서 친목을 도모하고 경제적으로 상호협력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단체이다. 큰 동향회는 보통 동향회관이라는 공소(公所)를 가지며 동향인의 구휼활동을 하거나 의료치료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대륙에서 생성된 동향회가 중국인의 이주를 통해 네덜란드에서 절강성의 온주, 청전, 영가, 문성의 동향회를 설립하여 활발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중국적 사회관행이 전혀 문화가 다른 네덜란드에서도 뿌리를 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화교화인의 역사와 관행 1】 

 

이정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참고문헌

Lynn Pan, ‘The Netherlands’, “The Encyclopedia of the Chinese Overseas”, Harvard University Press, 1999
王春光,‘华侨华人社团的『擬村落化』现象-荷兰华侨华人社团案例调查和研究’,“华侨华人历史研究”2010年第3期(总第91期)
“荷蘭 聯合時報”(2015년6월18일자, 375호)
“中荷商報”(2015년6월18일자, 238호)
위키피디아(Chinese people in the Netherlands: http://en.wikipedia.org/wiki/Chinese)위키피이다(Chinatown, The Hague: http://en.wikipedia.org/wiki/Chinatown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필자가 촬영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