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로에서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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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라오스 국경을 가로지르는 사람들 _ 장정아

중국에서 동남아로 이어지는 일대일로 건설현장을 여름에 한중공동조사팀과 함께 돌아보았다. 라오스와의 접경지역에는 양국을 오가는 트럭이 끝없이 줄지어 서있었다. 철도 건설로 국경지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중국과 주위 국가들의 경제적 통합은 가속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그것은 과연 중국을 향한 일방적 통합일까? 이런 변화는 국경지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리 조사팀은 이 질문을 안고 국경지대에서 조사를 계속 진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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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라오스의 국경 口岸. 트럭이 줄지어 서있다


우리가 집중적으로 현지조사를 하고 있는 지역은, 본래 하나의 민족이 오랫동안 살며 공동체를 이뤄온 생활권 위에 인위적으로 국경이 그어져 중국과 라오스로 나뉜 곳이다.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장기간 관찰해본 결과, 국경이 기존의 민족 생활공간을 둘로 나누었지만 여전히 그 공간은 생활권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사회경제 활동은 국경을 넘어 활발히 이뤄지고, 왕래는 놀라울 정도로 자유로운 편이다. 라오스인은 여기 와서 일용품이나 술, 담배를 사가고, 중국인은 라오스에 가서 쌀과 옥수수를 가져와 팔곤 한다. 라오스인들은 아플 때 건너와서 병원에 다니기도 하고, 언어가 통하는 중국측 마을사람들이 병원에 따라가 통역을 도와주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왕래가 아무런 제약도 없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국가의 관리는 점점 제도화되고 있고, 변경지역 소수민족 촌민들에게는 현재 특수한 통행증이 발급된다. 이 통행증을 활용하여 이들은 내지인보다 훨씬 자유롭게 국경을 드나들고 소지품도 크게 제약받지 않기 때문에, 양국 사이에서 일종의 중개무역을 하는 중요한 행위자로 활동한다.


이렇듯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국경 너머 ‘타국’의 동족과 오랫동안 만들어온 사회경제문화 네트워크가 지금도 작동한다는 사실은, 이 마을에서 라오스 부인과의 결혼이 꾸준히 이뤄진 데서도 드러난다. 이 마을 소수민족은 개혁개방 전까지 국내 다른 민족과도 잘 혼인을 안 했지만 라오스 여자와의 결혼은 계속 있어왔다. 이는 무엇보다 언어와 문화가 통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우며 왕래가 자유롭기에 가능했다. 서로 물을 뿌리며 축복을 비는 포수이제(潑水節) 축제처럼 중요한 문화풍속을 공유하는 같은 민족으로서, 이들간의 혼인과정이나 혼인 이후의 생활은 국경을 활발하게 넘나들며 이뤄진다.


마을의 한 할아버지는 일 때문에 라오스에 자주 오가다 보니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어서 아들에게 가보라고 했다. 1-2시간이면 갈 수 있기 때문에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아들은 가서 첫눈에 서로 반해서 3주일만에 결혼했다. 라오스와 중국 두 지역 각각에서 결혼식을 치르기 때문에 한국돈으로 1,000만원이 넘는 비용이 결혼에 들어가지만 이들은 기꺼이 받아들인다. 같은 민족으로 결혼풍습도 비슷하여 결혼식 과정에서도 충돌은 없다. 다만 라오스쪽이 중국에 비해 결혼식때 흥겹게 춤추는 것을 중시하여 악대를 부르는 비용이 좀더 들 뿐이라는 이야기를 촌민들은 공통적으로 하였다. 이렇게 라오스와 국제결혼한 가정은 언어소통에도 문제가 없고, 명절이나 축제 때는 서로 오가며 지낸다.


이렇듯 두 국가로 나뉜 민족은 예전부터 존재해온 사회경제문화적 생활권을 여전히 유지하며 살고 있고, 중간에 그어진 국경선이 이들의 왕래나 생활에 큰 제약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특히 이들이 양국을 오갈 때 수속이 일반인에 비해 매우 간편하다는 점은, 국경의 의미를 좀더 다층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고 해서 접경지역에서 국경이 의미없다거나 국가의 통제가 약하다고 보는 것은 또다른 낭만화의 오류이다. 중국은 변경지역들에 대해 지역마다 다르게 특수한 관리를 하고 있다.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드는 듯 보이는 행동은 결코 국가의 관리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 남쪽에서 국경을 맞댄 나라들과 앞으로 더 활발해질 공식・비공식 교류가 국경지대를 그리고 주변 국가와 중국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동남아에 중국이 공격적으로 진출하며 경제적 통합이 이뤄지고 있지만, 사실 중국과 동남아는 이미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정치경제문화적 관계가 밀접했던 일종의 권역이다. 이 권역에서 중국이 좀더 중심적 지위를 가졌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 중심성은 결코 고정불변도 일방적인 것도 아니었다.


동남아시아 권역을 비롯하여 동아시아를 이루는 여러 권역이 각각 오랫동안 나름의 질서를 구축하며 움직여왔음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중국과 주변국의 교류가 중국 중심으로 ‘통합’되는지 여부에만 관심을 갖기보다는, 국가들을 가로지르는 민족과 문화의 역사가 각 권역에서 어떤 다원성과 역동성을 만들어내는지를 보는 데에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역동성에 주목한다면 국가간 역학관계에서 시각을 더 넓혀, 이질적 문화권으로 구성된 복합적 공간으로서 동아시아 지형의 변화에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장정아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 중국·화교문화연구소장


                                          


이 글은 '아주경제'와 인천대 중국학술원이 공동 기획한  『아주차이나』 [仁차이나 프리즘] 2017년 11월 30일에 게재된 것을 수정한 것임.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