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테마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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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정치학 _ 공원국

페마 체덴 감독이 연출한 영화 <타를로>의 주인공은 오지에서 홀로 사는 티베트인 양치기 타를로다. 신분증 없이 살던 그는 생애 처음으로 신분증용 사진을 찍으러 읍내로 나간다. 그러나 막상 그가 찍은 사진을 받아 신분증용으로 제출하려 했을 때 경찰서에서 거부당했다. “이 사진은 (지금의) 당신과 너무 안 닮았어. 다시 찍어야 해.” 그 사이 그가 이발을 했기 때문이다. 타를로는 생각한다. ‘나는 이대로 나인데 신분증으로 내가 나임을 증명해야 하나?’ 신분증이 개인을 증명하는가, 아니면 개인이 신분증을 증명하는가

 

여러 해 전 티베트(西藏藏族自治區)로 들어가기 위해 나는 편법을 쓴 적이 있다. 결국 얼마 못 버티고 쫓겨났지만 진입에는 성공했다. 그 때도 신분증이 있어야 열차표를 살 수 있었지만, 대리 판매처에서 신분증을 확인만 할 뿐 그야말로 본인신분증열차표의 주인이 일치하기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누구 신분증이든 슬쩍 보여주면 그뿐이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지금은 열차 표에 본인 신분증 번호 일부가 찍힌다. 열차표 또한 하나의 신분증인 셈이다. 열차표 실명제는 2011년 언저리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어떤 장거리 교통수단을 이용하든 신분증을 제시하고 표를 사야 하니, 신분증 없이 공공교통을 이용할 수 없다. 오직 신분증을 통해 임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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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신장 무레이- 도시를 통과하는 목동 


신장위구르 변경지대에서 신분증 없이 장거리 여행은커녕 도시 안에서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다. 큰 건물로 진입할 때, 심지어 시장에 들어갈 때조차 신분증이 필요하다. 신분증을 대조하느라 걸리는 시간 때문에 매표소의 줄은 더 길어졌다. 일상적으로 이 불편을 겪는 사람들은 속으로 항거한다. “신분증 없이는 아들 집에도 못 가겠군.” 중국-키르기스스탄 국경지대에서 중년의 키르기스인이 직접 한 말이다.    

 

카쉬가르-키르기스 국경을 나서자면 총 네 번 신분증(여권) 검사를 해야 한다. 마지막 관문을 나설 때면 신분증(여권)을 든 경관이 돌려주지 않은 채 중국어로 이렇게 질문한다. “키르기스스탄에 무슨 목적으로 가는가?”


외국인도 예외가 아니어서 내 차례가 왔다. 이번에 나는 짐짓 중국어를 모르는 척해봤지만 그는 끈질기게 같은 질문을 같은 언어로 퍼부었다. 영어로 대답했지만 그가 인정해주지 않아서 마지막으로 짧게 대답했다.


(놀러)!”

 

신용카드 쪼가리만한 신분증은 어쩌다 그런 권력을 획득했을까? 그 안에 무시 못 할 정보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열여덟 자리 긴 숫자는 언제 어디서 태어난 남녀 누구라는 정보를 담고 있다. 공공교통을 이용하든 자가용을 이용하든 공로(公路)를 통과하는 이들은 이제 해석의 대상이 된다. 국가 행정기관은 소위 빅 데이터를 관리하는 빅 브라더인 셈이다. 그러니 빅 브라더의 국경 말단 세포까지 나름대로 신분증을 해석하고 질문을 한다. 전자신분증은 편법이 숨 쉴 공간을 거의 없애버렸다. 전자 신분증이 등장하기 전 내게 다가와 위조신분증을 만들어 주겠다고 제안한 이들도 이제는 사라졌다. 특히 외국인은 숙박지도 공안국에 신고해야 하기에 소위 거주이전은 온전히 행정당국의 손바닥 안에 있다. 전자기술이야말로 행정당국의 고민을 일시에 제거한 해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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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자오수에서 카자흐스탄으로 통하는 대로

 

잠시 자오수에서 공안들과 부딪힐 때 그들이 한 말을 다시 떠올려보자. 내가 “***”라고 욕을 했을 때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바로 구글 번역기로 확인하고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창지(昌吉)에서 친구 쑨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웃었다.


중국은 공무원은 구글을 쓸 수 없어. 공안이 그저 위협한 거야.”


그렇다. 행정당국은 구글 검색이나 부가 서비스를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창지의 조세 공무원으로 있는 화(가명)는 코웃음을 치며 자기 업무용 컴퓨터 화면을 보여주었다.1)


이렇게 업무용으로 쓰는데?”


나는 중국의 공무원들이 IP 우회 프로그램을 자연스레 쓰는 것을 그 때 알았다. 행정당국의 말단은 상부의 지침을 정확히 따르지 않았고, 어떤 정보통신 기술은 충분히 유연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기술이란 그냥 도구에 불과한 것일까? 일화 하나를 더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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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자오수-카자흐스탄 대로

    

자오수에서 축출된 후 나는 칭하이 시닝으로 가서 여행 차 온 한국인 친구와 함께 저녁에 술을 마셨다. 밀려오는 회한 때문에 벗어난 우리는 과도하게 마셨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잠이 들었다. 그 덕에 친구는 택시 안에 노트북을 놓고 내렸다. 취객 둘은 이튿날이 되어서야 분실 상황을 알았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만취 상태라 택시를 탄 지점도 시간도 특정하지 못했다. 대충 어느 거리에서 술을 마셨다는 것, 그리고 분명 숙소에 몇 시쯤 도착했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반쯤 포기한 상태에서 칭하이 여행을 계속하다 며칠이 흐른 후 우리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시에서 운영하는 분실물 센터를 찾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물건을 되찾았다!

 

방법은 간단했다. 대략 늦은 시간 그 거리에서 출발하여 숙소 근처로 움직인 모든 택시의 GPS 위치 정보를 확인해서 추려낸 후, 이상한 궤적을 그리며 거의 한 시간이나 시닝 시를 지그재그로 돌아다니다 문제의 시간에 우리 숙소 근처에서 멈추는 택시 하나를 가려냈다. CCTV 감시원은 그 택시를 지목하고 영상 분석에 나섰다. 그날 우리는 인사불성이 되어 택시 안에 드러누운 자신들의 추태를 그대로 다시 보는 행운을 누렸다. 알고 보니 시닝 시 택시 전체에 내부를 비추는 CCTV가 설치되어 있었고, 택시회사는 자료 전체를 공안국에 제출하고 있었다! 나중에 신장으로 돌아와 택시를 탈 때마다 확인해보니 내부를 비추는 카메라를 장착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누군가 원한다면 언제든 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국유 통신업체들에게 요청하기만 하면 휴대전화 위치추적은 매우 간단한 일일 것이다.

 

분명히 탈것에 탄 모든 이의 움직임은 간파되고 있었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움직임에 관한 통계는 낼 수 있을지언정, 행정당국이 특정인에 대해 그들이 말하는 소위 이상 행동을 감지할 수 있을까? 산술적으로 그 많은 자료를 분석할 수 있을까? 이제는 이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분석 기계가 일차적으로 자료를 분석한다. 최소한 분석 의지는 확고하니, 기술적인 해결책은 금세 등장할 것이다.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이 지점에서 고 덩샤오핑이 1980년 개혁개방의 청사진을 제시하며 못 박은 원칙을 떠올린다. ‘경제개발을 위해 개방정책을 유지하되, 공산당 영도를 견지한다는 것이다. ‘공산당 영도의 견지가 바로 최소한 지금껏 한 번도 포기된 적이 없는 중국 중앙권력의 의지, 소위 권력의지다. 지도력을 상실할 경우 당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 또한 클 것이라 짐작하지만 그 원칙이 불변의 가치인지, 과연 고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19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던진 이야기의 겉치레를 걷어내면 결국 당 영도의 견지만 남는 것을 보고 또 놀랐다.

 

신분증의 역사는 길기도 하다. 기록(사기)에 기원전 231년 진왕(진시황)이 처음으로 백성들은 모두 자기 나이를 신고하라”(初令男子書年)고 명했다고 한다. 그 전에도 호적은 관리되었지만 그제야 백성들의 연령이 관리 대상으로 들어온 셈이다. 이 명령에 이어 세부적인 율령이 이어지며 오늘날 호구부로 불리는 신분증의 핵심이 갖춰졌다. 처음부터 신분증의 목적은 동원과 부세 이외에도 이동의 통제였다. 호적(戶籍)이란 그야말로 호의 위치를 잡아주는 신표다. 물론 이는 당시 국가에 날개를 달아준 제도였을 것이다.

 

기술과 함께 사라지는 제도들이 있고 기술을 등에 업고 몸을 불리는 제도도 있다. 신분증의 기나긴 진화사를 바라보면 중국 제도의 연속성의 근원에 무엇이 있는가를 되묻게 된다. 시진핑, 덩샤오핑, 진시황을 막론하고 중앙권력의 정점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원칙은 무엇이었나? 직도(直道)와 역참을 통해 진시황은 변경을 없애고, 호적을 통해 인민을 국가에 제도적으로 종속시키려 했다. 이제 전자신분증과 빅데이터 기술이 그 정점을 찍으려는가? 중앙의 지도력을 견지한다는 사상적 전통의 뿌리도 깊지만, 어쩌면 권력 의지가 아니라 기술(그리고 제도)’이 이 원칙을 견인하는 것은 아닐까? 전자신분증에 구현된 전자 기술, 그리고 이 기술이 부추긴 빅 데이터와 빅 브라더 비전이 의지를 추동하고, 그 의지가 다시 전자신분증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 구조 말이다. 우리가 노트북을 되찾았을 때 섬뜩해 하면서도 내심 쾌재를 불렀듯이, 기술이 유용성의 가면을 쓰고 권력을 유혹하고 있지 않을까?

 

전자신분증과 전자통신 기술은 변경의 정치를 바꾸고 있다. 빅 데이터가 빅 브라더를 불러와 구심력을 극대화할 지, 아니면 기술 자체의 중립성(neutrality)이 빛을 발하여 원심력이 발현될 지 아직 알 수 없다. 변경 생활자는 전자신분증과 CCTV와 각종 위치추적 기능 덕분에 저의기 고달프지만, 스마트폰을 이용해 구글링 없이도 정보를 긁어모은다. 변경에서 삶과 기술의 이중성은 빅 브라더의 말단 세포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공무원 화는 내게 전제주의와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해 물었고, 경청했다. 그러나 문 밖에서 인기척이 나자 깜짝 놀라며 말을 멈추고 문을 열어 살폈다. 기술의 시대에 못 들을 것은 없으니까. 참고로 그의 여권은 행정당국의 손에 있다

 

변경에서 바라본 중국 3   


공원국 _ 작가 / 중국 푸단대 인류학과


                                         


1) 여기 등장하는 화는 실재 조세를 담당하는 공무원이지만 창지에서 일하지 않는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지명을 바꾸었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