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테마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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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의 실갱이 _ 공원국

14년 전 겨울, 카자흐스탄으로 들어가는 열차를 타고 알라샨 변경지대(阿拉山口)에 내렸을 때, 영하 20도의 강추위에 입김마저 얼어붙었다. 열차에서 내리자, 흘러내린 물과 사람의 입김까지 모조리 얼어붙어 시커먼 객실이 눈과 꼭 같은 색으로 변해 있었고, 바퀴까지 위협하는 얼음을 떼어내려 인부들이 좌우에서 우르르 몰려왔다. 일련번호가 매겨진 국경의 창고들은 자못 규모가 있었지만, 상하이항의 컨테이너 무더기에 비하면 실로 한 줌에 불과했다. 그 당시 회색 콘크리트 담장은 일대일로(一帶一路)’ 등의 구호 하나 없이 밋밋하고, 허옇게 눈을 뒤집어 쓴 별장들은 폐허의 잔해처럼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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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지대를 떠나 무작정 다인승 택시를 타고 이리伊犁(일리, 이닝)에 도착했을 때 세상은 온통 눈 천지였지만 바람은 예봉이 꺾여 그저 선선했고, 시커먼 진흙을 뒤집어 쓴 눈 무더기들의 가장자리는 낮이면 녹았다가 다시 얼곤 했다. 천산의 북쪽에서 기대할 수 없는 특이하게 아늑하고 따듯한 풍경이었다. 그곳에서 며칠 지내면서 낮이나 밤이나 상상 가능한 범위의 모든 사람들을 만났다. 얼마를 팔았는지 모르지만 골방에서 담요를 걸치고 줄창 백양목만 그려대는 홀아비 화가, 고향 충칭에서 온 아가씨 두엇을 데리고 비정상영업을 하는 여인숙 주인, 소련(러시아가 아닌 소련)으로 가서 십 몇 년 동안 소식도 없다가 맨몸으로 다시 돌아온 남편(카자흐), 그를 구박하는 것으로 하루의 피로를 푸는 매점 여인(역시 카자흐) . 아무데나 가서 자고 아무나 만나며 아무 이야기나 지껄였다.


그 후로 오랫동안 신장으로 갈 때마다 이리카자흐 자치주를 들르고, 건륭이 준가르를 평정했다고 자찬하며 세워놓은 격등비(格登碑)를 보고자 드디어 자오수(昭蘇)까지 이르렀다. 남쪽 천산의 꼭대기는 언제나 하얀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었고, 그 아래 들판만 사계에 따라 옷을 갈아입었다. 몽골, 카자흐, 그리고 소수의 키르기즈 사람들이 깊은 산골짜기와 산허리에서 가축을 키우고, 대평원에는 초원이 반 유채밭이 반이었다. 그곳에서 조금만 서쪽으로 가면 카자흐스탄, 서남으로 가면 키르기스스탄이었다. 맘만 먹으면 어디로든 통할 것 같은 곳, 이곳을 평생 오가리라 다짐하곤 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그곳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올해(2017) 2월 말 평원의 남쪽으로 가지를 치고 있는 골짜기를 훑으며 나의 연구를 도와줄 목축민들을 찾았다. 언제든지 와도 좋다는 사람 셋과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 중 하나가 쥐마홍(키르키즈인, 54)이다. (이제부터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들의 호칭은 모두 가명이다. 혹시나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므로. 그러나 그들의 본명과 주소, 소재지는 나의 공책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7월 말 초원을 다시 찾아 나는 정해진 수속을 밟아 나갔다. 먼저 공안국에 들러 민가거류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앞으로 나에게 1년간 숙소를 제공하기로 한 쥐마홍이 나를 맞으러 나왔다.


악수향 공안국 문 앞에서 바투르(44, 몽골인 택시 기사)와 나는 다섯 시간을 꼬박 기다렸다. 그 사이 일하다 신분증을 잃어버린 쥐마홍은 호구부 원본을 가지고 왔다. 드디어 철조망을 두를 문이 열리자 나 혼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었다. 공안국 안으로 들어가자 군복을 입은 젊은 경관 원()이 자오수로 온 이유를 이것저것 묻더니 서류를 작성해 나갔다. 2월에 수속에 관한 자문을 다 받았고, 이리주 공안국의 방법과 직원과 과장이 확인까지 했으므로 나는 일이 마무리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드디어 향 공안국의 직인을 찍으려는 순간 경관은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고개만 끄덕이던 그는 결국 직인을 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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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수 천산 목장

   

자오수 현의 보국대대(報國大隊)로 가서 대대장을 만나시오. 연락을 해 놓았소. 근무 시간이 있으니 빨리 가시오.”


2월에 이 부서 저 부서를 돌며 부질없이 보낸 시간이 불현듯 떠올랐지만 조바심에 택시를 타고 달렸다. 보국대대 정문에 다다라서 대대장을 만나고자 전하니 역시 군복을 입은 장교 한 명이 나와 쪽문으로 나를 맞아들였다. 그리고 자오수에 온 이유를 하나하나 물었고, 나는 그 동안 여러 관공서를 다니며 했던 그 대답을 그대로 들려줬다.


유목민들의 문화를 공부하려는 겁니다.”


반 시각 가량 별로 결과 없는 이야기를 하다 그는 나를 다시 현 공안국으로 보냈다.


보국대대장은 지금 없소. 가서 출입경관리대장을 만나시오.”


나는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우겼지만 힘이 없었다. 지금까지 여기 저기 관공서를 오가며 일이 제대로 된 적이 없다. 그렇지만 그 말을 따를 수밖에. 현 공안국으로 다시 택시를 몰아 도착해 안전검사를 통과하니, 군복이 아닌 경찰복을 입은 아저씨 하나가 검사대 뒤편에서 기다리다 대뜸 말했다.


출입국관리대장은 오늘 없습니다. 당신이 여기에서 머무르며 연구하는 것은 위법입니다.”


나는 주 공안국이 알려준 수속대로 일을 처리하고 있다고 맞섰다. 주 공안국 담장자의 이름과 전화번호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단호했다.


여행은 가능하지만 민간인 집에서 머무는 것은 안 됩니다.”


나도 버텼다.


출입국관리대장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어떤 규정인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는 뜻밖의 말을 했다.


내가 대장이오.”


거짓말 한 거예요? 대장은 오늘 없다고 했잖아요.”


내가 대장이오.”


수없이 수속을 물어보고 확인을 받고 하는 겁니다. 왜 말을 뒤집는 겁니까?”


당신이 말을 잘 못 이해한 것 같소. 우리는 말을 뒤집지 않았소.”


나는 주 공안국의 샹()의 휴대폰으로 수없이 전화를 시도했지만 그녀는 내 전화는 받지 않고 단지 대장과만 통화했다. 대장의 말은 이랬다.


당신이 한국인이라 말을 잘 못 이해한 듯한데, 예전에도 샹은 향 공안국의 명령만 따르라고 말했답니다. 여기서 관광을 할 수는 있지만 다른 활동은 못합니다.”


화가 나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격렬하게 심정을 토로하고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다만 공안이 집단적으로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나는 갑니다. 그렇지만 어린 후배에게 거짓말은 시키지 마세요. 그녀()은 당신들의 명령을 받았기에 말을 바꾼 거잖아요?”


공안과 싸워서 될 일은 없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쥐마홍에게 전화를 했다. 공안국에서 연구행위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그도 내 상황을 이해했다. 그러다 한밤중에, 중국어를 잘 하지 못하는 그를 대신해서 딸이 전화를 걸어왔다.


가시더라도 아버지가 집에서 식사는 한 번 하고 가시래요.”


호의에 답하는 것이 예의라 생각하고 아침 일찍 바투르와 함께 쥐마홍의 집으로 차를 달렸다. 얼마간 달렸을 때 전화가 왔다. 현 공안국이었다. 연구 행위를 할 수 없으며, 연락이 안 될 경우 학교로 전화를 할 것이고, 관광만 가능하며, 이것은 선생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는 등등 익히 들은 이야기였다. 공안이 불쑥불쑥 전화를 걸어오면 감정을 통제하기 어렵다.


내 안전은 내가 책임집니다. 지금껏 중국에서 여려 사고를 겪었지만 공안은 도움을 준 적이 없습니다. 나는 관광을 하고 있으니 제발 다시 전화하지 마시오.”


쥐마홍은 악수 향에 있는 토방 별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채취가 금지된 설련雪蓮 한 뿌리를 건네며 그가 말했다.


가방 깊숙이 넣게. 채취는 불법이야. 있은 거 다 줄 수도 있지만 검문에 걸리면 큰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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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


설련 한 뿌리를 가방에 찔러 넣고 차를 마시는 차에 꺽다리 공안 셋이 예고도 없이 방문으로 들어와 핸드폰으로 녹화를 시작했다.


공원국 선생이오?”


그렇습니다만, 앉으세요.”


아닙니다, 서 있겠습니다.”


차를 마시고 있으니 밖에서 기다리든지 같이 차를 마시면 안 되겠소?”


안됩니다. 규정입니다.”


그럼 좀 떨어져서 있으면 안 되오?”


“1.5미터를 유지하는 것이 규정이오.”


그런 규정은 누가 만들었소? 한 번 봅시다.”


규정을 보여줄 의무는 없소.”


공안이지만 군복을 입는 보국대 대원들의 태도는 무례함을 넘어 심각하게 위협적이었다.


차 한 잔 마시고 갈 것이오. 나는 여기서 머무는 것도 아니고 대화만 하는데 뭔 규정을 어겼다는 거요. 당신들은 공안이기 이전에 성인이요. 아이들 앞에서 이런 행동을 해도 되오?”


민가에서 민간인을 함부로 만날 수 없소. 우리 입회하에 가능하오.”


더 이상 이 집에 있다가는 주인을 곤경에 빠트릴 수 있었다. 분노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밖으로 나갔다. 나는 딸 디다르에게 줄 용돈을 좀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다시 요구했다.


아주 사적인 일이 있소. 잠깐만 거리를 좀 벌려주시오.”


그들은 있지도 않은 규정을 반복했다.


“1.5미터가 규정이오.”


용돈 몇 푼을 쥐어주지 못한 차에 그들이 핸드폰을 계속 디밀자 나는 한국어로 욕설을 하며 대들었다.


찍지마라, ***들아. 나도 찍겠다.”


(아마도 한국 드라마의 영향인 듯) 그들은 욕설을 바로 알아들었다.


욕한 것 알고 있소. 바로 구글 번역기로 확인하고 대가를 치르게 하겠소.”


중국어로 바꿔서 경고했다.


민가에서 이 따위 행동을 하는 것이 공안인가? 이건 가택을 침입한 강도짓이다. 베이징에 당신들이 한 행동을 제소할 것이다.”


허망한 공갈에 불과했다. 그들은 그저 명령을 받아 행동하는 이들일 뿐이다. 집 대문에서 그들의 상관이 팔짱을 끼고 수하들의 활약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쥐마홍에게 말했다.


내가 있으면 당신에게 해만 될 뿐입니다. 갑니다. 앞으로 연락 못해도 용서해 주세요.”


바투르의 택시를 타고 다시 자오수 현으로 달렸다. ‘공안이 어떻게 내가 그곳으로 가는 것을 알았을까?’ 한참 가다 차에서 내려 담배를 피는 차에 바투르가 나직이 말했다.


, 당신 핸드폰이 추적당하고 있어. 오늘 내 핸드폰으로도 확인 전화가 왔더라구.”


그렇구나, 핸드폰이 추적당하고 있었구나(나중에 안 일이지만 택시 회사는 차내를 비추는 CCTV 자료를 매일 공안국에 제출하고 있었다! 그러니 공안국은 나라는 인간을 대충 파악한 셈이다.)


얼핏 들으면 이는 하나의 사소한 해프닝일 뿐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할 거리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인류학적 촉수를 들이대면, 이 짧은 일화 안에 앞으로 전개해나갈 변경 이야기- 즉 인간과 환경과 제도와 기술이 복잡하게 얽힌 서사-의 실마리가 거의 다 들어 있다. 나는 미미한 연구자일 뿐이며 소수민족의 독립을 지지하는 인사는 더욱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인식되고 해석되는나는 나 자신의 실체와는 별개다. 서부 변경 끄트머리에서 일어난 일은 독립적인 듯하지만 동서남북 국경 내부의 정치경제와 연성경성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앞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나하나 전개해 나갈 것이다.


변경에서 바라본 중국 2




공원국 _ 작가 / 중국 푸단대 인류학과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