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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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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신이 된 역사 인물: 당현종, 이백, 악비, 주희, 마테오 리치 _ 박경석

다양한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조상신을 떠받드는 숭배자의 지위에 있었지만, 각 업종의 조상신 숭배에서 모든 설정을 주도하는 주체는 조상신이 아니라 숭배자들이다. 조상신은 숭배자들이 주관적으로 인정한 산물일 뿐이다. 교조주의(敎條主義) 같은 것은 없다. 그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거나 인정하기만 하면 그 조상신이 바로 조상신이 된다. 그래서 같은 업종이라고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다른 조상신을 섬기게 되고, 또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조상신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이 맞는 것이다.


이제까지 관우(關羽), 노반(魯班), 공자(孔子), 노자(老子), 유비(劉備), 장비(張飛), 제갈량(諸葛亮), 강태공(姜太公), 주문왕(周文王), 관중(管仲), 손빈(孫臏) 등, 역사상의 ‘위대한 인물’을 자신의 업종과 관련해 신격화하고 이를 조상신으로 섬기는 까닭과 내력을 살펴보았는데, 조상신의 설정에는 숭배되는 조상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이미지가 반영되어 있다. 상술했듯이 ‘조상신은 숭배자들이 주관적으로 인정한 산물’이기 때문이고,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이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각 업종의 조상신은 ‘신령스런’ 역사적, 문화적 존재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가 농축되어 있는 하나의 ‘문화코드(문화를 통해 일정한 대상에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의미)’이다. 우리가 중국의 ‘행업신(行業神)’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행업신’을 통해 중국의 핵심적인 ‘문화코드’를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 중국과 중국인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되면 그들과 보다 잘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호에 이어 역사상의 실존인물들이 조상신으로 선택되어 숭배되는 사례를 살펴보겠다. 역시 가급적 우리가 들어 알만한 역사상의 인물들을 골라보았다.


• 당나라 현종(唐玄宗)


당현종3.jpg


당나라 현종 이융기(李隆基)는 당나라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시절의 황제이다. 우리에게는 양귀비(楊貴妃)와 관련해 잘 알려져 있는데, 조상신의 세계에서는 양귀비가 등장하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이삼랑(李三郎)이나 당명황(唐明皇)이라고도 부르는데, ‘이삼랑’은 그가 셋째 아들이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고, ‘당명황’은 그의 시호(諡號)인 ‘지도대성대명효황제(至道大聖大明孝皇帝)’에서 유래한 것이다.


당나라 현종을 가장 적극적으로 섬긴 업종은 연극, 무용, 음악을 망라해 지금의 연예계 종사자에 해당한다. 중국에서는 ‘이원업(梨園業)’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섬기는 조상신은 매우 다채로웠는데, 청대(淸代) 이후에는 ‘노랑묘(老郞廟)’를 지어놓고 ‘노랑신(老郞神)’을 섬기는 풍습이 지극히 성행했다고 한다. ‘노랑(老郞)’이 누구인지는 지역에 따라 달랐으나 가장 많은 경우 당현종을 지칭했다.


전통시기의 연예인들이 당현종을 숭배한 까닭은 그가 연기, 무용, 음악을 훈련시키는 ‘이원교방(梨園敎坊)’을 창설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연예기획사’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직접 무대에 올라 연극을 했고 이를 가르치기도 했다고 한다. 그가 연극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이 그를 ‘폐하’라고 부르기 불편했으나 그렇다고 상하의 체통을 무시할 수도 없어, 남자를 높여 부르는 ‘노랑(老郞)’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西安 교외의 唐代 梨園 유적지


물론 이상의 이야기에는 사실도 있고 전설도 있다. 현종이 장안(長安, 지금의 西安)에 ‘이원교방’을 설립했고, 음악이나 가무를 좋아해 ‘이원’에 나가 직접 지도했다(그래서 여기에서 배운 자들을 ‘皇帝弟子’ 또는 ‘梨園弟子’라고 함)는 것은 사실이다. ‘노랑’이라는 칭호는 이런 사실에서 끌어와 ‘노랑신(老郞神)’과 연결시킨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밖에 지역에 따라 서커스단(雜技業)과 찻집(茶業)도 당현종을 조상신으로 숭배했다. 서커스는 같은 연예계 종사자라는 차원에서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찻집의 경우에는, 찻집에서 작은 규모의 공연을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 이백(李白)


이백은 주지하듯이 당나라를 대표하는 ‘낭만파’ 시인으로서, 두주불사의 애주가로 유명하다. 이에 걸맞게 지역에 따라 술집(酒店)에서 이백을 조상신으로 섬겼다. 하지만 술을 만들고, 유통하고, 판매하는 업종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섬겼던 조상신은 술 빚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고 전해지는 두강(杜康)이었다. 이밖에 술과 관련해서는 서왕모(西王母)의 ‘요지(瑤池)’에서 술심부름을 하던 동자(童子)였다가 세상으로 쫓겨났다고 전해지는 주선동자(酒仙童子) 유영(劉伶)이 있다. 중국에서는 이들 이백, 두강, 유영을 대표적인 ‘술꾼’(三大酒仙)으로 여기고 있다.


• 악비(岳飛)


악비는 남송(南宋)의 장군인데 단순히 명장이라는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외세의 침입에 맞서 끝까지 분투하였으나 부패한 정권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에 많이 회자되었다. 따라서 군사 관련 종사자들이 악비를 조상신으로 선택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직업 군인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섬겼던 군신(軍神)은 조상신 가운데 최고의 스타이고,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장으로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관우(關羽)였다. 악비는 관우보다 지위가 낮은 군신으로서, 관우와 짝을 이루어 숭배를 받아왔다. 특히 중화민국시기에 들어 군벌(軍閥)들이 주도권을 잡고 혼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무예를 숭상하는(尙武) 분위가 고조되면서, 관우와 악비를 결합시켜 함께 숭배하는 일이 성행하였다. 우선, 국가정책으로 무묘(武廟)를 관우+악비의 ‘관악묘(關岳廟)’로 개편하고 ‘관악합사(關岳合祀)’를 진행하였다. 경찰이나 군인 등 무력을 사용하는 업종에서도 관우와 악비를 합쳐 제사를 지냈다.


이밖에 ‘보표업(保鏢業)’이라 불린 사설경호업체에서도 악비를 조상신으로 섬겼다. ‘표사(鏢師)’라 불린 직원들은 무예를 익히고 무덕(武德)을 숭상하였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다하여 나라에 충성한(精忠報國) 악비를 섬길 만한 조상신으로 떠올렸을 것이다.


• 주희(朱熹, 朱子)


주희는 성리학을 성립시켜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사상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상가이다. 공자 이래의 유학을 집대성하고 유학의 두 번째 버전을 성립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공로를 높이 평가해 주자(朱子)라고도 부른다.


주희를 조상신으로 섬기는 업종은 종이를 취급하는 지업(紙業)이다. 이들이 주희를 조상신으로 섬기는 까닭은 주희가 저명한 문화인이기 때문이다. 종이가 문화용품에 속하기 때문에 대표적인 문화인을 조상신으로 섬긴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엽적이고 부수적이다. 지업 종사자들이 보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섬겼던 조상신은 채륜(蔡倫)이었다. 그 이유는 채륜이 종이 제조법을 발명하였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인 과정이 『후한서(後漢書)』 「채륜전(蔡倫傳)」에 뚜렷이 기록되어 있다.


이밖에, 글자를 쇠나 돌에 새기는 일을 하는 ‘각자업(刻字業)’에서도 주희를 조상신으로 섬겼다. 이는 주희가 원래 금석전각(金石篆刻)을 다루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복건(福建) 천주(泉州) 전암촌(田庵村)에서는 집성촌의 시조인 홍영산(洪榮山)이 주희에게서 직접 금석전각을 배웠다고 하여 주희를 조상신으로 섬겼다. ‘각자업’에서는 주희 이외에도 ‘문화와 교육의 신’이랄 수 있는 문창제군(文昌帝君)을 조상신으로 섬기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인문성(人文性)’이라는 공감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 주원장(朱元璋)


주원장은 승려 행색으로 비렁뱅이 짓을 하던 처지에서 명나라 초대황제(明太祖)의 지위에까지 오른 전형적인 난세의 영웅이다. 국내에도 번역되어 있는 오함(吳唅)의 『주원장전(朱元璋傳)』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의 일생을 흥미롭게 전하고 있어 일독을 권한다.


주원장을 조상신으로서 가장 중히 여긴 업종은 걸인들이었다. 걸인들은 매우 조직적으로 수많은 조상신을 섬겼는데, 가장 보편적으로 섬긴 조상신은 범염(范冉)이었다. 그는 『후한서(後漢書)』에 ‘가난하지만 기개가 높은 선비’로 기록되어 있다. 걸인들이 범염을 조상신으로 선택한 것은 그가 자기들과 별반 차이 없이 곤궁하기 그지없었지만, 뜻은 궁핍하지 않아 기개가 높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걸인들은 춘추전국시기의 공자가 후한시기의 범염에게서 쌀을 빌렸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말하자면, 공자는 ‘있는 사람’, 즉 걸인들이 구걸하는 대상을 대표한다. 그런데 이전에 자신의 조상신이 이미 ‘있는 사람’에게 빌려준 식량이 있으니, 이제 걸인이 구걸하는 것은 이전에 빌려주었던 것을 갚으라고 독촉하는 정당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걸인들에게 조상신은 상처 난 자존심을 치유해주는 존재였다.


범염에 이어 걸인들이 가장 많이 섬긴 조상신이 주원장이었다. 그 내력은 주원장이 어려서부터 매우 가난했고, 너무 가난해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지만, 절에서도 쫓겨나 비렁뱅이 시주를 받으러 다녔다는 이야기에 유래한다. 여기까지는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파생된 다양한 전설들이 걸인들 사이에 떠돌았다. 예컨대, 주원장이 걸식이 잘 되지 않자 소뼈를 두드리면서 구걸하는 소리를 외쳤고 다른 걸인들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주원장이 위기상황에서 일정기간 걸식을 하면서 지낸 적이 있는데 나중에 황제가 되었을 때 동료 걸인들이 찾아오자 구걸하는 것을 승인해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모두 사실이 아니지만, 황제의 권위에 빗대어 자신의 심리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이밖에, 주원장은 소흥(紹興)에서 은박지(錫箔紙)를 만들어 팔던 ‘석박업(錫箔業)’ 종사자들이 조상신으로 섬겼다. 은박지는 주로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태우는 지전(紙錢) 내지 제물로 쓰이는데, 주원장으로 인하여 소흥에서 은박지 제조업이 크게 발달했기 때문이다. 전설에 따르면, 주원장이 북벌을 할 때 군비가 부족하자 책사(策士)인 유기(劉基)가 민간에서 제사 지내면서 축적해 놓은 은을 빌려 쓰고 북방을 평정한 후에 갚자고 건의하였다. 그러나 북방을 평정한 후에도 국고가 부실해 갚을 길이 없자 유기가 또 건의하였다. 제사를 지내면서 은을 저장해 두는 것은 존숭의 뜻을 표하는 것인데, 귀신은 저승에 있으니 어찌 이승에 있는 백은(白銀)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은박지를 만들어 상환하는 것이 낫다. 은박지는 이미 제사에 사용하는 물건이니 귀신에 득이 되고, 저렴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 상환 부담도 덜 수 있다. 주원장이 건의를 받아들여 많은 죄수를 끌어다가 은박지를 만들게 했다. 이때부터 소흥에 은박지 업체들이 많아졌고, 업자들은 주원장을 조상신으로 섬기게 되었다.


북경에서 산매탕(酸梅湯, 매실로 만든 새콤달콤한 음료, ‘烏梅湯’이라고도 함)을 파는 사람들도 주원장을 조상신으로 섬겼다. 이유는 주원장이 역병을 치유하는 산매탕을 만들어 큰돈을 벌었다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역사서에는 없다. 역사소설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퍼졌던 것으로 보인다.


• 마테오 리치(利瑪竇, Matteo Ricci)


마테오 리치는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신부로서 1583년 중국에 들어와 1610년 북경에서 사망할 때까지 전도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던 선교사이다.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선교해야 한다는 그의 전략은 많은 중국인으로부터 공감을 얻었고, 마테오 리치는 기독교 교리와 함께 유럽의 근대문명을 중국에 전해 주었다. 당시 중국 사람들은 같은 유럽인이라도 무역에 종사하던 상인들은 ‘번이(番夷)’라고 부르며 천시했으나, 문화 활동에 종사한 선교사들은 ‘서양인’이라고 불렀다.


마침내 마테오 리치는 조상신으로 숭배되기도 하였다. 상해의 시계 관련 종사자들이 그를 조상신으로 섬겼다고 한다. 서양식 시계가 마테오 리치 등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중국에 전래되었고, 시계 기술자들이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마테오 리치는 자명종 시계를 만력제(萬曆帝)와 광동 총독에게 전해준 적이 있다. 마테오 리치는 여러 업종의 조상신 중에 유일한 서양인이다. 여타 지역에서는 ‘장인(匠人)들의 영원한 조상신’ 노반(魯班)을 섬기는 경우가 많았다.


마테오리치



【중국 행업신 이야기 동업자들의 세속화된 신성 13

 

박경석 _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blog.sina.com.cn/s/blog_ec69f3610102vs13.html
梨園 : 李喬, 『行業神崇拜 : 中國民衆造神史硏究』, 北京出版社, 2013.8, 381쪽.
마테오리치 : 李喬, 『行業神崇拜 : 中國民衆造神史硏究』, 北京出版社, 2013.8, 2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