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의 ‘사드(THAAD)’ 배치 발표에 반발하며 중국 정부가 이른바 ‘한한령’을 발동한지 어언 1년이 지났다. 사실 필자에게 ‘한한령’이 대단히 흥미로운 이유는 중국의 보복 조치가 무엇보다 문화 영역에서 집중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최근까지 중국과 갈등을 빚었던 프랑스(2008년), 일본(2010, 2012년), 몽골(2016년) 등 국가들에 대해 중국 정부는 다양한 보복 조치를 감행하면서도 적어도 문화 영역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은 문화(한류)를 핵심적인 보복 수단으로 선택했을까? 그리고 중국 정부는 이를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이제 중국측의 입장에서 ‘한한령’의 효과를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1세기에 진입하면서 외국문화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정책 기조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문화정체성과 관련된 이른바 ‘문화안보론’이고, 다른 하나는 소프트파워 강화를 통한 종합적인 국력의 신장이었다. 우선 2004년 중국 정부는 문화안보를 정치안보, 경제안보, 정보안보와 함께 국가 4대 안보전략으로 확정했다. 문화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거론한다는 것은 중국 정부가 심각한 문화적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팡옌푸(方彦富)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중국 정부는 2001년 WTO 가입을 계기로 시작된 서구 자본주의 문화의 대량 유입을 중국 민족문화의 생존과 발전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다른 한편 중국 정부가 소프트파워 강화를 위해 시급히 해결하고자 했던 과제는 우선적으로 국가 이미지 개선과 관련된 것이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의 경제 규모는 2010년을 기점으로 세계 2위로 도약하면서 소위 G2로 부상했다. 그러나 2009년 봉황망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국제 이미지가 긍정적이라고 답한 비중은 전체의 4.4%에 불과했다. 이처럼 중국에 대한 국제 사회의 부정적 이미지는 중국이 장차 선진국으로의 진입하는데 심각한 장애요소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가 막대한 비용을 지원하면서 중국 문화상품의 해외진출을 독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의 두 가지 대외문화정책의 목표를 중심으로 ‘한한령’이 가져온 결과를 평가해 보자.
우선 중국의 문화정체성 혹은 문화주체성 측면에서 ‘한한령’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중국 정부의 ‘한한령’은 한류콘텐츠에 대한 완전한 봉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적지 않은 한류콘텐츠의 중국 진출이 취소 혹은 연기되기도 했지만, 최근까지도 정상적으로 추진되기도 했다. 더구나 ‘한한령’에도 불구하고 한류콘텐츠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이 크게 줄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2017년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의 조사에 의하면 전반적으로 정치ㆍ외교적 이슈와 한류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분리되어 있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검색 추이도 이전과 거의 동일한 수준을 보였고, 중국의 공식적인 매체가 봉쇄되자 오히려 불법 유통 경로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경향도 보였다. 이러한 사례는 과거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한국 정부의 봉쇄 정책을 연상시킨다. 한국의 강력한 봉쇄정책에도 불구하고 당시 일본 대중문화는 ‘밀수’와 ‘표절’의 형태로 끊임없이 한국에 들어왔고 또 광범위하게 유통되었다.
그렇다면 경제적 측면에서는 어떨까? 중국의 보복 조치가 한류콘텐츠에 집중된 만큼 한국의 관련 업계가 가장 많은 타격을 받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좀 더 거시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 우선 콘텐츠산업에서 한국의 대중 수출은 2015년 약 14억 달러로 전체의 26.6%에 달하며, 중국의 대한국 수출액의 8배에 달한다. 그러니까 ‘한한령’으로 양국의 콘텐츠산업 무역이 타격을 받을 경우 한국의 손실이 중국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콘텐츠산업 무역을 장르별로 살펴보면 한국 콘텐츠의 대중국 수출액 가운데 방송은 5%, 음악(공연)은 7%, 영화는 1%에 불과하고, 절대다수인 73%를 차지하는 것은 게임산업이었다(2015년 기준). 그런데 ‘한한령’은 게임산업에 관해서는 특별한 제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한령’에도 불구하고 2016년 말 한국의 콘텐츠산업 매출액은 전년대비 5.7%가, 수출액은 전년대비 8.3%가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2017년에도 수출액은 8.5%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론은 ‘한한령’이 한국의 콘텐츠산업 전반에 막대한 타격을 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소프트파워, 특히 중국의 국가이미지 제고하는 차원에서 ‘한한령’은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지난 2017년 아산정책연구원은 대단히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내놓았는데, 우선 가장 눈에 띠는 것은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일본보다도 낮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이 북한을 제외하고 일본에 대해 가장 낮은 호감도를 보였고, 특히 최근 위안부 합의와 소녀상 문제로 일본과의 갈등이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한국인의 대중국 정서가 얼마나 악화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한한령’ 전후를 비교해 보면, 한국인이 중국을 경쟁상대로 인식한 것은 38%에서 52.7%로 상승했고, 신뢰도는 39.7%에서 18.8%로 하락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과 중국 중 향후 한국에 더 중요한 나라로 중국을 선택한 비율은 56.9%에서 39.7%로 하락했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대외문화 전략적 측면에서 ‘한한령’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화안보의 측면에서 중국 정부가 중국 내 한류 확산을 억제하고자 했던 것이라면 ‘한한령’은 효과적인 정책 수단이 되지 못했다.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도 콘텐츠산업과 관련된 한국 기업의 손실은 불가피하지만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한편 중국의 국가이미지 개선 차원에서 보자면 ‘한한령’은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미래의 한중 관계 전망과 관련하여 훨씬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을 협력 상대가 아니라 경쟁 상대 혹은 위협적인 상대로 간주하기 시작했으며, 향후 한국에 더 중요한 나라로 중국보다는 미국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러한 결과는 1년 전만 해도 완전히 반대의 상황이었다. 아마도 중국 정부 역시 이러한 결과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한령’을 통해 본 중국의 대외적 문화정책은 묘한 딜레마에 봉착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전히 ‘문화’를 직접적인 국가 이익과의 관계 속에서 인식하고, 한편으로는 외국 문화의 진입에 대한 제재를, 또 한편으로는 자국 문화의 해외진출을 공격적으로 독려하는 문화정책은 국제사회에서 또 하나의 ‘패권’으로 인식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문화가 소프트파워의 중요한 자원으로 간주되는 것은 힘(power)을 행사하는 방식의 차이, 즉 강제나 유인과 같은 하드파워의 방식이 아니라 상대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바를 원하게 만들도록 끌어들이는 소프트파워의 방식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한령’은 문화를 하드파워의 방식으로 사용함으로써 소프트파워의 근본적인 목표, 즉 사람의 마음을 끄는 힘을 얻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한령’은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선택할 수 있는 적절한 정책 수단은 아니었다. ‘한한령’이 언제쯤 해소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한한령’이 남겨 놓은 또 다른 과제를 해결하는 데 훨씬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문화는 결국 사람의 마음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권기영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 중국학술원 중국교육센터장
* 이 글은 '아주경제'와 인천대 중국학술원이 공동 기획한 『아주차이나』 [仁차이나 프리즘] 8월 31일에 게재된 것을 수정한 것임.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