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테마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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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문화가 되다, 톈진의 거우부리 _ 손승희

여행 중 특정 지역에서 그 곳의 특색 음식을 찾아 먹는 즐거움은 여행의 묘미 중의 묘미이다. 가히 요리의 천국이라고 불릴만한 중국을 보면 도시의 수만큼이나 가는 곳마다 저마다의 특색 음식들로 넘쳐난다. 톈진에는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꼭 먹게 된다는 거우부리(狗不里)가 있다. 일종의 만두인데 톈진의 특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밀가루 반죽으로 얇게 빚어서 각양각색의 소를 넣어 만드는 만두. 출출할 때 한두 개로도 가볍게 시장 끼를 속일 수 있고, 어떤 것으로 소를 넣어도 특별히 맛이 없을 수 없는 그 신뢰성 때문인지 만두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음식 중의 하나이다.   
 

‘거우부리’, 이름도 독특한 이 만두는 톈진의 전통식 만두로, 1858년 함풍(咸豐)년간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니 그 역사의 장구함에 놀라게 된다. 만두가 특별하면 얼마나 특별할까 생각하겠지만 거우부리의 특징은 그 겉모습에 있다. 일반적으로 만두는 만두피에 소를 가득 넣고 오므리는 과정에서 무심한 듯 큰 주름 몇 개가 잡히게 마련이다. 그런 반면 거우부리는 고운 주름이 동일한 간격으로 자잘하게 잡혀있는 것이 특징이다. 투박하게 두어 번 꾹 찍어 만든 주름이 아니라 마치 꽃을 연상시키듯 정성스럽게 잡은 촘촘한 주름이다. 그 제작 과정은 상당히 엄격하여 주름은 최소한 15개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졸깃졸깃하면서도 입에 착 달라붙는 만두피의 감칠맛 또한 일품이다. 어떻게 150년도 넘게 전통을 이어가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맛이다. 거우부리는 한 통에 여러 개 담겨 나오기도 하지만 정통 거우부리는 한 통에 한 개씩 담겨져 나온다. 만두의 팔자’치고는 상당히 호사스러운 대접이 아닐 수 없다. 지름이 한 6-7센티쯤 되는 거우부리 한 개의 가격이 25-35위안, 우리 돈으로 4, 5천 원 정도이니 만두 값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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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우부리는 톈진에서 만두의 일반명사로 쓰이기도 하지만, 실은 거우부리’ 상호의 고유 브랜드이다.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이 중국 방문 때 맛보았다 하여 더욱 유명해진 상하이 난샹(南翔)의 만두나 1993년 뉴욕타임지가 선정한 세계 10대 음식점 중 하나라는 대만의 딩타이펑(鼎泰豊)의 만두도 맛있지만, 필자에게 거우부리는 더욱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거우부리에 담겨진 재미난 이야기 때문이다. “왜 만두 이름에 개를 의미하는 구(狗)’자가 들어가 있을까?” 중국어를 몰라도 한자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의문을 갖게 마련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고 하는데,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이야기는 이렇다. 
 

거우부리를 창시한  사람은 고귀우(高貴友)로, 1831년(청 도광11년) 그의 아버지가 40세에 얻은 귀한 아들이었기 때문에 그가 활발하고 무탈하게 잘 자라라는 의미에서 거우즈(狗子)’라는 아명으로 불렀다고 한다. 우리말로 하면 강아지’인 셈이다. 우리도 이름을 천하게 지으면 저승사자가 볼 때 사람이 아닌 줄 알고 저승사자 명부에 올리지 않아 장수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고귀우는 14살이 되던 해에 톈진의 한 만두집에서 점원으로 일했는데, 머리가 좋고 손재주가 있어 주방장으로부터 만두 만드는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한 3년쯤 일하다가 독립하여 스스로 덕취호(德聚號)라는 만두집을 열게 되었다. 고귀우는 부지런했고 무엇보다 만두 빚는 솜씨는 최고였다. 만두집의 경영은 매우 잘 되었고 그가 빚은 만두를 먹으려는 사람들로 덕취호는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얼마나 바빴는지 고귀우가 만두를 빚을 때는 손님들이 말을 걸어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손님의 말에 일일이 대꾸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강아지가 만두 팔 때는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狗子賣包子, 不理人)”고 하게 되었고, 이것이 오래되어 입에 붙다보니 줄여서 거우부리’ 즉, “강아지가 아는 체 않다(狗不理)”로 변한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덕취호라는 원래의 상호보다는 거우부리’를 더 많이 불렀고, 그것이 거우부리 만두가 탄생하게 된 유래이다. 
 

스토리 자체가 흥미로울 뿐 아니라, 거우부리는 2011년 국무원이 발표한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거우부리의 전통 수공제작 기술’로 그 이름을 올렸다. 중국에서는 이와 같은 전통브랜드를 중화노자호(中華老字號)’라고 부른다. 중화노자호는 전통적으로 전승되어 온 상품이나 기술, 서비스를 옹유하고 있는 기업으로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국가의 명품 브랜드이다. 그러나 노자호는 단지 오래된 기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각 지역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상징한다. 사실 노자호의 전통적인 경영방식은 현대적인 경영방식과는 차이가 있어 지금과 같은 무한 경쟁사회에서는 결코 효율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자호는 중국인의 역사로서, 문화로서, 뿌리로서 보호되고 있는 것이다. 노자호는 2006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중국 상무부로부터 모두 1,128개의 상호가 비준된 바 있다. 
 

하긴 어디 노자호 뿐이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매년 5월 10일을 중국 브랜드의 날(中國品牌日)’로 지정하고 올해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는 중국 정부가 국가 브랜드 발전을 고도로 중시하며 향후 국가 전략 중의 하나로 삼겠다는 의미이다. 특히 중국이 역사와 전통을 기반으로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여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국가 이미지 홍보와 기업 브랜드의 이미지 부각에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자호의 보호와 육성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한국도 2009년 1월에 한국 국가브랜드위원회를 설립하고 한국만의 국가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데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이미지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억지로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국가적으로도 이미지가 필요하겠지만 그런 거창한 이미지 혹은 브랜드만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지역별로 고장별로 혹은 작은 마을일지라도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크고 작은 기억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것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여기에 이들이 공유하는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는 쉽게 잊히지 않은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될 것이다. 거창한 것보다 작은 것에서도 의미를 만들고, 그곳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일지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공감하게 만드는 능력, 그것이 곧 스토리텔링의 힘이 아니겠는가. 톈진의 거우부리처럼 말이다. 
 

톈진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한국의 인천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필자의 일종의 직업병이다. 그 규모로만 따진다면 톈진이 인천의 몇 곱절은 될 터이니 중국인들이 불쾌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톈진의 중국에서의 입지나 인천의 한국에서의 입지를 생각하면 이내 수긍이 가지 않겠는가. 양자가 모두 수도의 관문으로서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고, 개항 후 근대 문물이 가장 먼저 당도했던 선진 도시였지만 늘 수도와 연관 지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더욱이 국가의 도시발전 전략에 의해 톈진에도 신구가 개발되고 인천에도 송도 신도시가 들어서 있지만, 두 도시의 원도심을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는 역사와 전통에도 불구하고 엇비슷하게 낡고 특색 없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역사와 전통의 실체라는 것도 톈진의 9개국 조계지와 인천의 차이나타운 외에는 별반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알더라도 무심코 지나쳐버릴 수 있는 수많은 기억들에 온기를 불어넣고 스토리를 얹는다면 톈진 혹은 인천만의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징진지(京津冀)의 개발이나 송도 신도시 건설에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톈진이나 인천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고 이에 걸맞게 자리매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톈진의 거우부리가 톈진의 대표 문화브랜드가 될 수 있다면 인천 시민들의 소소한 이야기들도 인천의 지역 문화, 인천의 대표 문화브랜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섞어본다.



손승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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